400년, 시간 거스른 문학의 성지…셰익스피어 숨결을 느끼다

입력 2016-01-11 07:00  

셰익스피어의 고향, 영국 스트라트포드


런던에서 두 시간 반 거리에 올해로 400주기를 맞는 셰익스피어가 나고 자란 도시 스트라트포드(Stratford)가 있다. 런던 근교의 소도시 중 하나로 400년 전의 문화와 건축들이 아름답게 잘 보존돼온 곳이다. 그중에서도 셰익스피어의 생가와 그가 다녔던 학교, 그의 무덤이 있는 교회, 그의 작품들을 연일 선보이는 극장 등 셰익스피어와 관련된 문화와 여행지가 잘 갖춰져 있다. 도시 전체가 셰익스피어를 위해 존재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고즈넉한 로열 셰익스피어 극장

스트라트포드에 도착해 가장 먼저 간 곳은 로열 셰익스피어 극장이었다. 셰익스피어 시대 극장 터를 발굴한 뒤 재현해 복원한 이 극장에서는 로열 셰익스피어 극단의 연극들을 볼 수 있다.

극장 건물 꼭대기에는 루프톱 레스토랑이 있는데, 이곳에서 먼저 점심을 먹었다. 각종 공연 포스터를 덕지덕지 붙인 오래된 붉은 벽돌과 깨진 벽들이 멋진 이곳은 또 하나의 공연장처럼 느껴졌다. 이 레스토랑의 테라스에서 내다보는 에이본 강과 전원적인 마을(처럼 느껴지는) 풍경은 달콤한 디저트처럼 아름다웠다. 백조가 떠다니고 강변에 앉아있는 泳宕湧?모습도 고즈넉하게 다가온다.

로열 셰익스피어 극장에서는 셰익스피어의 극만 올리는 줄 알았는데 다른 영국 작가의 극도 볼 수 있다. 우리가 본 것이 그중 하나였는데 ‘몰타의 유대인(The Jew of Malta)’이다. 16세기 영국의 극작가이자 시인이었던 크리스토퍼 말로의 작품이다. 말로는 셰익스피어에게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작가로 알려져 있으며, 셰익스피어의 두세 작품에 부분적 집필자였다는 얘기도 있다. 당시 그는 영국 엘리자베스의 밀정으로 활동하다 발각돼 숨어 지내며 셰익스피어의 이름으로 희곡을 써서 상연했다는 설도 있다.

셰익스피어 발자취 좇는 워킹투어

스트라트포드까지 런던에서 당일치기로 가는 여행자도 많다. 여행자들은 대부분 셰익스피어의 생가와 무덤이 있는 교회, 마을을 둘러보는 것으로 짧은 여행을 끝낸다. 하지만 어느 도시든 2~3일 정도는 머물며 그 도시의 낮과 밤을 겪고, 그 도시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일들을 누려 봐야 진가를 알 수 있다.

스트라트포드에서 가장 좋았던 경험은 단연 로열 셰익스피어 극장에서 연극을 본 저녁이었다. 연극을 보러 온 사람들의 표정, 셰익스피어 문학에 대한 그들의 엄청난 자부심과 사랑, 그 문학적 자부심을 극으로 계속 되살리는 최고의 노력들이 이 도시를 지배하고 있다. 오후에는 셰익스피어의 발자취를 좇는 워킹투어에도 참가했다.


셰익스피어가 살았던 16세기 당시의 모습으로 재현해둔 생가는 생각보다 훨씬 큰 저택이었다. 튜더 왕조(Tudor dynasty) 시대 서민들의 집이 모두 단층집이었던 데 비해 그의 생가는 2층 규모로 컸다. 이곳에서 15명이 넘는 대가족(그는 8남매 중 셋째였다)이 살았다고 한다. 셰익스피어의 아버지는 장갑을 만드는 장갑공으로 출발해 돈을 많이 벌어 나중에는 시장(市長)에 오른 입지전적인 인물이었다. 생가에 들어가면 만나는 첫 번째 방에서 가이드가 가리킨 돌바닥은 16세기 것 그대로라고 했다. 400년 전의 시간이 무색하게 다가온다. 생가를 둘러보고 정원으로 나오니 나무로 만들어진 야외 무대에서 두 명의 배우가 사람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사람들에게 좋아하는 셰익스피어의 작품이 있느냐고 물어본 뒤 그중 한 토막을 즉석에서 공연으로 선보였다. 우스꽝스럽고 위트 있는 표정으로 연기하는 젊은 배우와 나이 든 연기자의 호흡이 그럴 듯했다. 다음 여정이 없었다면 따스한 햇살 아래 벤치에서 한동안 앉아 그 정겨운 무대를 계속 보고 싶은 시간이었다.

도굴꾼 경계한 독특한 묘비명

마지막 행선지는 셰익스피어의 무덤이 있는 홀리 트리니티 교회(Holy Trinity Church). 그의 무덤뿐만 아니라 아내인 앤 해서웨이, 딸 수잔나와 사위 무덤까지 같이 있다. 자신뿐만 아니라 가족이 모두 교회 안에 묻힐 수 있었다는 것만 봐도 그가 얼마나 명성을 누렸는지 알 만하다. 교회 안에서 여행자들이 빠뜨리지 않고 보는 것은 셰익스피어 무덤에 새겨진 문구다.

“내 무덤의 돌을 파헤치지 마라. 이 돌을 건드리지 않는 사람에게는 축복이, 내 뼈를 옮기는 자에게는 저주가 있을 것이다”고 쓰여 있다.

자신의 무덤이 옮겨질까 두려워했던 그 근원은 무엇일까? 당시 불법적으로 시체를 파내 부장품을 팔아먹는 묘지 도굴꾼을 경계했기 때문이었겠지만, 죽어서라도 영원한 안식을 원했던 셰익스피어의 절절한 소망 때문은 아니었을까?

●여행팁

스트라트포드는 런던에서 북서쪽으로 160㎞ 정도 떨어져 있다. 자동차로 2시간30분 정도 걸린다. 이곳까지 운행하는 코치버스도 있다. 스트라트포드에서 숙소를 잡으려면 웰콤브호텔이 좋다. 18~19세기 초 영국 귀족의 컨트리맨션하우스였던 웰콤브호텔은 궁전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웅장한 대저택과 정원을 갖추고 있다. 호텔로 운영된 지는 80년이 넘었다.

객실 안은 고풍스러운 가구와 침구로 꾸며져 있고, 꽃으로 장식된 정원과 분수가 내려다보이는 전망이 뛰어나다. 호텔은 골프클럽과 함께 있어 골프를 즐기러 오는 사람도 많다.

스트라트포드(영국)=이동미 여행작가 ssummersu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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