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공장' 거듭나는 멕시코] 미국 맞닿은 'FTA 허브' 멕시코…세계 5위 차 생산국 넘봐

입력 2016-01-12 17:38  

위기를 희망으로 바꾼 나라들
(5) 외국 제조업체 몰리는 멕시코

47개국과 FTA 체결
낮은 인건비·물류 이점…글로벌 자동차업체 투자 몰려

강력한 개방정책 '효과'
에너지·금융·통신 등 외국인 진입장벽 낮춰
신용등급 'A3'로 높아져



[ 나수지 기자 ] 독일 자동차업체 아우디는 2008년 미국 테네시강변에 여의도 크기만 한 땅을 샀다. 북미지역에 공장을 세울 때 이 땅을 활용하려는 의도에서다. 폭스바겐 닛산 제너럴모터스(GM) 등 자동차 공장이 밀집해 있는 이 지역에 아우디도 진출해 북미지역 영향력을 넓히겠다는 계산이었다.

4년 뒤 아우디는 계획을 바꿨다. 2012년 아우디가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인 Q5를 생산할 공장 위치로 점찍은 곳은 멕시코 수도 멕시코시티에서 동쪽으로 차로 두 시간 정도 떨어진 산호세 치아파였다. 아우디는 올해부터 이곳에서 연간 15만대의 차량을 생산할 계획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아우디의 선택은 달라진 멕시코의 위상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것”이라며 “47개 국가와 자유무역협정(FTA)을 맺은 멕시코가 세계 최대 자동차 시장인 미국과 가깝다는 이점을 활용해 글로벌 자동차업체의 공장을 빨아들이고 있다”고 분석했다.


도요타 GM 기아차 등 투자 발표

기아자동차는 2014년 8월부터 멕시코 누에보레온주에 짓고 있는 북미 제2공장을 오는 5월부터 가동할 계획이다. 여섯 번째 해외 공장으로, 연간 30만대를 생산할 계획이다. 기아차는 약 500만㎡ 부지를 무상으로 받고 5년간 법인세(약 30%)를 면제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도요타자동차는 10억달러(약 1조2100억원), GM은 50억달러를 투자해 공장을 새로 짓겠다고 했고, 르노닛산연합과 다임러AG는 공동으로 10억유로(약 1조3200억원)를 들여 내년부터 연간 30만대의 자동차를 생산할 수 있는 공장을 짓고 있다.

자동차 기업의 멕시코행이 늘면서 멕시코는 2014년 12년 만에 자동차 생산량에서 ‘중남미 경제 라이벌’인 브라질을 앞질렀다. 멕시코의 자동차 생산량은 전년 대비 9.8% 늘었지만, 브라질은 15% 감소한 결과다. 세계 자동차 생산량 순위에서 멕시코는 2010년 9위에서 2013년 8위, 2014년 7위로 올랐다.


멕시코 정부는 현재 건설 중인 공장들이 대부분 생산을 시작하는 2020년에 세계 5위 자동차 생산국으로 성장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외부평가도 크게 다르지 않다. 시장조사업체 IHS는 2020년 멕시코가 자동차 생산량 기준 세계 6위에 오를 것으로 전망했다.

가전, 컴퓨터, 항공우주 제조업 등 부가가치가 높은 제품의 생산도 활발하다. 멕시코 중부 할리스코주 과달라하라는 IBM 휴렛팩커드(HP) 인텔 지멘스 등의 생산공장이 자리잡고 있다. IBM과 인텔 지멘스는 이곳에서 제조공장과 디자인센터를 함께 운영한다. 과달라하라가 멕시코의 ‘실리콘밸리’로 불리는 이유다. 미국 컴퓨터제조사 델과 애플 하도급업체로 유명한 대만 훙하이정밀(폭스콘) 등도 멕시코 공장에 투자를 늘리고 있다.

‘FTA 허브’로 몰려드는 기업들

세계 최대 자동차 시장인 미국과 가까운 위치, 47개국과 맺은 FTA, 낮은 인건비, 정부의 투자지원책이 세계 기업들이 멕시코를 주목하는 이유로 꼽힌다.

미국 자동차 시장이 회복되면서 미국과 국경을 맞댄 멕시코의 이점이 커졌다. 미국의 신차 판매량은 글로벌 금융위기가 닥친 2008년 이후 매년 늘고 있다. 미국 자동차 정보 제공업체인 오토데이터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에서 팔린 신차는 약 1750만대로 2000년(약 1740만대) 판매 기록을 경신한 것으로 추정된다.

과거 미국과의 전쟁으로 영토까지 뺏기는 수모를 당했던 멕시코인들은 ‘하느님은 왜 멀리 계시고 미국은 왜 가까이 있습니까’라며 미국과 국경을 맞댄 운명을 탄식했지만,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 미국까지 수송하는 물류비를 아낄 수 있다는 점이 멕시코의 매력 요인으로 부각됐다. 멕시코 생산품은 육로를 통해 이틀에서 1주일 정도면 미국으로 옮길 수 있다.

멕시코가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유럽연합(EU)과의 FTA 등을 통해 47개국과 무역협정을 맺고 있다는 것도 강점으로 꼽힌다.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까지 발효되면 멕시코가 FTA를 맺고 있는 나라들의 경제 규모는 세계 국내총생산(GDP)의 약 60%를 차지한다. 기업이 ‘FTA 허브’인 멕시코에 공장을 세우면 다른 나라에 수출할 때 무관세 혜택 등을 받을 수 있다.

투자 유치 위해 경제개혁 추진

2012년 취임한 엔리케 페냐 니에토 대통령이 강력한 개방 정책을 추진하고 있는 것도 멕시코를 투자하기에 매력적인 나라로 바꾸고 있다. 페냐 니에토 대통령은 70년간 이어진 에너지분야 외국인 투자 제한제도를 폐지했다. 금융분야 진입장벽도 낮췄다. 과거엔 멕시코와 FTA를 맺은 국가의 금융회사만 멕시코에 법인을 세울 수 있었지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금융회사도 영업할 수 있도록 법을 바꿨다. 최저임금 제도 개선, 노동조합 투명성 확보, 여성 노동자 권리 보장 등의 내용을 담은 노동개혁법을 통과시켜 경제 체질도 개선했다.

‘가공업 수출 진흥제도(IMMEX)’도 시행 중이다. 멕시코에서 수입하는 모든 화물에는 16%가량의 부가가치세가 붙는다. 멕시코 정부는 자격요건을 갖춘 가공품 수출업체가 수입한 부품에 붙은 부가가치세는 18개월 동안 납부를 유예해준다.

페냐 니에토 정부의 개방·개혁 정책은 외부에서도 인정받고 있다. 국제신용평가사 무디스는 2014년 멕시코국가신용등급을 ‘Baa1’에서 ‘A3’로 높였다. 멕시코는 중남미에서 칠레에 이어 두 번째로 국가 신용등급이 ‘A’ 등급대로 오른 국가가 됐다.

능력 대비 낮은 인건비도 멕시코에 글로벌 자동차회사의 공장이 몰리는 데 한몫했다. 멕시코 자동차 공장 근로자의 하루평균 임금은 약 40달러다. 미국의 20~30% 수준에 불과하다. 임금 인상 속도도 빠르지 않다. 2003년 이후 멕시코 자동차업계 근로자 임금은 연평균 3.04% 오르는 데 그쳤다. 에두아르두 솔리스 멕시코자동차협회(AMIA) 회장은 “낮은 임금보다 중요한 것은 멕시코 근로자들이 잘 훈련돼 있다는 사실”이라며 “엘살바도르, 니카라과 등 멕시코보다 임금이 낮은 나라와 비교해 멕시코가 경쟁력이 있는 이유”라고 강조했다.

나수지 기자 suji@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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