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재혁 기자 ] 애플 창업자 스티브 잡스(1955~2011)의 삶을 그린 대니 보일 감독의 영화 ‘스티브 잡스’(21일 개봉)는 2년 전 나온 조슈아 마이클 스턴 감독의 ‘잡스’와 여러모로 다르다. ‘잡스’가 애슈턴 커처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잡스에 대해 알려진 사실들을 평면적으로 나열한 데 비해 마이클 파스벤더가 열연한 ‘스티브 잡스’는 타협을 거부하는 완벽주의자면서 혼외 친딸에 대해 깊은 속정을 지닌 인간 잡스를 조명한다. 에피소드의 선택과 집중을 통해 냉혈한으로 알려진 이면을 파고들어 잡스를 입체적으로 그려낸다.
영화는 세 번의 혁신적인 신제품 프레젠테이션 무대를 조명했다. 1984년 그래픽 기능을 강화한 컴퓨터 매킨토시, 1988년 고성능 컴퓨터 넥스트 큐브. 1998년 디자인을 획기적으로 개선한 아이맥을 발표하기 직전 40분간의 모습을 담아냈다. 알려진 대로 매킨토시와 넥스트 큐브는 호환성과 가격 문제 등으로 사실상 실패했고, 아이맥은 크게 성공했다.
잡스는 각 신제품을 발표하기 직전에 혼외 친딸 리사와 만난다. 실패한 두 상품 발표장에서는 리사 생모와의 불화를 통해 신제품 앞날이 순탄하지 않을 것임을 암시한다. 반면 아이맥 발표 때는 부녀가 극적으로 화해한다. 잡스는 리사에게 예전에 했던 모진 말이 진심이 아니었다고 고백한다. 상품 발표와 사생활을 결합한 장면들은 일과 개인적인 삶이 떨어질 수 없는 관계임을 강조한다. 사생활이 잘 풀리지 않으면 일도 성공할 수 없다는 의미다.
잡스의 의상도 신상품 성패를 예고하는 장치다. 실패작을 발표할 때 잡스는 정장 차림이다. 가식적이고 불편한 상황에서는 신제품이 실패한다는 암시다. 아이맥 발표 때는 자연스러운 캐주얼 차림이다.
잡스가 동료 기술자들을 혹독하게 다그쳐 성과를 내는 장면들은 혁신의 과정이 끊임없는 투쟁이라고 역설하는 듯하다. 그는 때로 독설을 퍼붓고, 주변 사람들을 적으로 만든다. 최측근인 마케팅 임원 조애너 호프먼(케이트 윈슬렛 분)과도 언쟁을 멈추지 않는다.
잡스는 컴퓨터가 마니아만을 위한 도구에서 벗어나 대중을 위한 상품이 되도록 이끌었다. 우리가 소통하고 관계하는 방식과, 영화와 음악을 보고 듣는 방식을 바꿨다. 삶을 혁신하려면 끊임없이 싸워야만 한다는 메시지가 영화에 담겨 있다.
유재혁 대중문화 전문기자 yooj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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