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파 갈등의 역내 확산 차단하고
걸프 왕정의 안보 공포 해소가 관건
인남식 < 국립외교원 교수 >
오스트리아 빈 현지시간 1월16일. 이란 핵협상 ‘이행일(implementation day)’이 선포됐다. 중동 현대사의 새로운 장이 열린 날이다. 작년 7월 타결된 ‘포괄적 공동행동계획’에 따라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이란의 초기조치 합의 이행을 최종 확인한 날이다. 확인과 동시에 미국, 유럽연합(EU), UN의 3중 경제제재는 일제히 해제 절차에 돌입했다. 금융제재가 풀림에 따라 이란은 해외에 묶여 있던 1000억달러의 자산을 되찾고, 자유로운 석유 수출에 본격 나설 수 있게 됐다.
곧 정상적인 투자가 이뤄지고, 금융이 활성화하면 이란이 역내 패권국가로 부상하는 것은 시간문제다. 중동에서 이란에 필적할 만한 잠재력을 지닌 나라는 없다. 8000만명의 인구, 막대한 석유 및 천연가스, 페르시아 제국의 유산, 교육열과 과학기술 수준 그리고 호메이니 혁명 이후 지금까지 서방의 혹독한 제재에도 체제를 존속시켜왔다는 자존심 등은 역내 어떤 국가와도 비견할 수 없는 힘의 근원이다. 36년간 갇혔던 거인이 기지개를 켜며 세상으로 나서는 모양새다.
새 판의 단초다. 이웃 걸프 왕국들은 아연 긴장했다. 혁명으로 팔레비 왕조를 몰아냈던 이란의 혁명 사상이 걸프를 건너 자국 왕실을 뒤흔들 조짐 때문이다. 올초 시아파 지도자 전격 처형 등을 통해 상황반전을 꾀하고 있지만 판을 되돌리기는 쉽지 않았다. 이 와중에 이란은 더욱 과감히 치고 나갔다. 자국 영해에서 표류하던 미국 해군 함정 두 척과 미군 열 명을 하루 만에 전격 귀환시켰다. 스파이 혐의로 수감 중인 미국인 네 명도 풀어주기로 했다는 소식은 이란 내 최고지도자도 미국과의 관계 개선을 지지하고 있음을 방증한다. 수년 전만 해도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사우디아라비아를 필두로 일부 걸프 국가들과 이스라엘 등은 이란 견제에 적극 나서서 힘의 균형을 맞추려 할 것이다. 이란을 끌어들인 미국 및 국제사회에 대한 불만도 공공연히 드러낼 가능성이 높다. 이 맥락에서 우려스러운 것은 최고조에 달한 사우디·이란 간 종파 갈등의 역내 확산이다. 시아파를 견제하는 수니파의 진영논리가 급속히 퍼질 경우 가장 득을 보는 세력은 시아파 궤멸을 주장하는 IS(이슬람국가)다. 어쩌면 왕국의 일부 수니파 인사들이 미국 및 국제사회에 대한 불만을 나타내며 차제에 극단주의 단체를 지원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
다시 미국의 역할이 중요해졌다. 이란에 대한 압박과 관여전략으로 핵협상 타결을 이뤄낸 미국은 이제 사우디를 비롯해 걸프 왕정국가들에 대한 전방위적 외교에 나설 때다. 이란의 부상이 예상되는 이 시점에서 미국은 걸프 왕정을 위무해 안보 위협의 공포를 경감해줘야 한다. 이란과 사우디를 중재해 평화적 공존과 협력 구도를 제시해야 한다. 그래야만 인류의 해 퓽?IS나 알카에다 등을 공동의 위협으로 규정, 공조 기반을 이끌어낼 수 있다. 1979년 이전 이란, 사우디, 이스라엘, 터키가 반(反)소련을 기치로 공존하던 시절로 돌아갈 수 있지 않을까. 어려운 시기를 외교적 해법으로 잘 돌파할 수 있다면, 어쩌면 역설적으로 이 시점이 중동 평화의 새로운 계기가 될 수도 있다.
물론 이행일이 끝은 아니다. 전체 합의 이행 단계로는 절반 지점에 불과하다. 전체 기간으로 따지면 10년 가까이 더 이행여부를 지켜봐야 한다. 그 과정에서 위험 변수가 한둘이 아니다. 미국 대선, 이란 총선, IS 극단주의의 분탕질, 수니파의 집단 저항, 러시아의 돌발행동 등 협상을 뒤흔들 요인이 산적해 있다. 그러므로 새 장은 아직 백지 상태다. 해피엔딩으로 귀결될지, 골 깊은 갈등으로 치달을지 결론은 미정이다. 이란과 걸프 및 미국 등 국제사회의 치열한 수싸움과 외교력에 달렸다. 바야흐로 외교의 시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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