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경제 불황에 물동량 줄어
BDI 사상 최저수준으로 추락
20년 안된 멀쩡한 배까지 폐선
작년 폐선가격까지 30% 급락
'울며 겨자먹기'로 배 해체해도
해운업계, 손에 쥐는 돈 줄어
[ 김보라 기자 ]
한진해운은 지난해 한진봄베이호 등 벌크선 2척을 외국의 선박 해체 전문회사에 넘겼다. 한진봄베이호는 주로 한국~유럽 항로에서 원목과 철광석 등을 실어나르는 배였다. 건조한 지 20년이 채 안 됐지만 손실만 쌓이자 한진해운은 눈물을 머금고 폐선 결정을 내렸다. 더 운항할 수 있지만 운항해봤자 손해만 보니 차라리 고철값이라도 받자며 ‘땡처리’를 한 것이다.
한진해운은 2014년에는 총 10척의 컨테이너선을 이 같은 방식으로 해체했다. 한진해운이 폐선 처리한 선박은 모두 1995~1997년에 건조해 앞으로 10년 이상 더 운항할 수 있는 배들이다.
해운 업체들 잇따라 폐선 나서
노후 선박 해체는 해운사들이 불황기에 하는 마지막 선택이다. 이 같은 상황에 내몰린 회사는 한진해운뿐만이 아니다. 전 세계 대부분 해운업체가 같은 처지다.
국내 업체 중에서는 현대상선이 지난해 현대유니버설호와 현대프라스페리티호 등 2척의 벌크선을 폐선했다. 주로 한국~호주 노선에서 철광석 등을 운반하던 배다. 해운업계 관계자는 “현대상선이 폐선한 2척 모두 1990년 지은 배로 앞으로 5년 이상 더 운항할 수 있었다”며 “현대상선이 비경제선이라고 판단해 해체 결정을 내린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국내 해운업계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구조조정을 거듭해가며 업황 개선을 기다렸다. 하지만 업황은 오히려 나빠지는 쪽으로 가고 있다. 화물선 업황을 나타내는 대표 지수인 발틱운임지수(BDI)는 지난 14일 사상 최저치인 383포인트로 떨어졌다.
컨테이너선 운임을 나타내는 상하이컨테이너운임지수(SCFI)도 450 근처에서 움직이고 있다. 두 지수 모두 1년 새 반토막이 났다. 업계는 현재 유가 수준에서 BDI가 최소 1500은 돼야 선박을 운항할 수 있다고 계산하고 있다.
선박 보유량이 핵심 경쟁력 중 하나인 해운업체가 폐선에 나서는 것은 앞으로도 상당기간 해운업황 개선이 어렵다고 보고 있어서다. 무엇보다 호황기에 대거 발주한 선박이 시장에 넘쳐나고 있다. 하지만 중국 경기 둔화 등의 여파로 세계 경제가 저성장 국면에 접어들면서 실어나를 화물은 턱없이 줄었다. 이 때문에 세계 곳곳에서 멈춰선 배가 2만척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폐선해도 쥐는 돈은 쥐꼬리
운임이 좀처럼 오르지 않자 폐선 조선소로 향하는 선박의 연령도 점점 낮아지고 있다. 선박의 평균 수명은 통상 30년. 세계 최대 해운협의회인 발틱국제해사기구협의회(BIMCO)는 해체되는 선박의 평균 연령이 2010년 29.5년에서 지난해 25.3년으로 급감한 것으로 분석했다. 해운업계 관계자는 “운임 하락으로 배를 운항할수록 적자가 나고 있다”며 “배 한 척당 하루 평균 3000~4000달러씩 손해를 보기 때문에 20년이 채 안 된 멀쩡한 배까지 폐선 시장에 쏟아져 나오고 있다”고 전했다.
암울한 전망이 이어지면서 올해 선박 해체량이 사상 최대를 기록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클락슨은 보고서에서 해운시장이 올해도 침체를 지속하면 폐선량이 사상 최대였던 2012년을 넘어설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공급 과잉으로 인한 불황기에는 선박 매각보다 해체를 택하는 편이 중장기적으로 나은 선택일 수 있다는 진단(김우호 한국해양수산개발원 해운해사연구본부장)마저 나오고 있어서다.
해운업체들은 선박을 폐기해 재무구조 개선에 나서고 있지만 고철값이 급락하면서 이마저도 큰 돈을 쥐기 어려워지는 추세다. 이달 들어 유조선과 벌크선의 폐선 가격은 각각 LDT(선박 해체를 위해 지급하는 선가 단위)당 292달러, 282달러를 기록했다. 2014년 평균 대비 30% 이상 하락했다. 해운업계 관계자는 “운항을 해도 적자고 울며 겨자 먹기로 배를 팔아도 몇 푼 못 건지는 최악의 상황이 오고 있다”며 “철 가격도 당분간 약세 전망이 많아 마음이 조급해진 선주들이 서둘러 선박 해체에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
[한경닷컴 바로가기] [스내커] [슈퍼개미] [한경+ 구독신청] ⓒ '성공을 부르는 습관' 한경닷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