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시장서 고가정책 고수
환율 떨어져도 제품가 반영 안해
[ 임현우 기자 ]
해외 명품업체들이 유독 한국 시장에서 고가정책을 고수하며 ‘배짱 영업’을 한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고 있다. 해외에서 유통되는 상품을 독점 수입업체가 아니라 제3의 업자가 저렴하게 들여오게 하는 병행수입이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지만 제품 신뢰도나 사후서비스 등을 한층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21일 관세청에 따르면 명품 핸드백과 지갑은 수입 원가보다 두 배 이상 높은 가격에 팔리고 있다. 100만원을 넘는 고가 제품을 기준으로 수입 핸드백은 평균 85만7000원에 들여와 매장에서 179만3214원에 판매하며, 지갑은 평균 26만8000원에 수입해 62만5972원에 팔았다. 격차가 각각 2.09배, 2.34배에 이른다.
소비자교육중앙회가 유명 수입 핸드백과 지갑 49종의 국내외 오프라인 매장의 판매가격을 조사한 결과 41개 제품이 해외보다 적게는 3.9%, 많게는 56.3% 비쌌다. 코치 ‘키트캐리올토트’는 국내 평균가가 72만3600원지만 해외에선 평균 46만3019원으로 격차가 56.3%에 달했다. 해외에서 평균 137만7070원인 루이비통 ‘키폴45’는 국내에선 204만5000원으로 48.5% 높았고, 구찌 ‘디스코백’은 34.2%, 페라가모 ‘사피아노더블간치니월렛’은 27.8% 비쌌다.
한 명품업체 관계자는 “제조원가와 환율, 관세, 운영비 외에도 시장 규모나 특성 등을 반영해 글로벌 차원에서 전략적으로 가격을 결정하기 때문에 단순 비교하긴 어렵다”고 했다. 하지만 다른 나라와의 가격 차이가 이처럼 크게 벌어지는 것은 상식 밖이라는 비판이 적지 않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유럽에서 정품을 산 뒤 자국에서 되파는 ‘명품 재테크’는 물론 전문 구매대행업자까지 성업 중이다.
환율 변동, 원자재값 상승 등 인상 요인은 신속히 반영하면서도 반대의 경우에는 웬만해선 값을 내리지 않는 ‘이중잣대’도 자주 도마에 오른다. 정부는 지난해 8월 소비 진작을 위해 고가 가방, 시계 등에 적용하는 개별소비세 과세 기준을 완화했지만 명품업체들은 가격을 내리지 않고 세금 인하분을 고스란히 챙겼다.
당시 정부가 가격 인하 현황을 조사했지만 샤넬, 디올, 구찌 등은 자료 제공조차 거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정부는 두 달 뒤 과세 기준을 ‘원위치’시켰다. 연례행사 같은 가격 인상 탓에 자유무역협정(FTA) 효과도 찾아보기 힘들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명품업계 관계자는 “한국이 ‘패션 트렌드’에선 중심으로 부상하고 있지만 중국이나 일본보다 시장 규모가 작기 때문에 본사 입장에서는 핵심 시장으로 대우하지 않는 측면도 있다”고 말했다.
임현우 기자 tardi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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