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당 8년 만에 정권 뺏겨
차이잉원 첫 여성 총통 탄생
[ 김동윤 기자 ]
지난 16일 치러진 대만 총통(대통령)선거에서 제1야당인 민주진보당이 8년 만에 정권교체에 성공했다. 2008년 집권한 국민당이 펼친 친중(親中)정책이 경제 상황 악화로 국민으로부터 ‘파산선고’를 받았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17일 대만중앙통신 등에 따르면 전날 치러진 대만 총통선거에서 차이잉원(蔡英文) 민진당 후보가 56.1%를 득표, 31.0%에 그친 주리룬(朱立倫) 국민당 후보를 가볍게 누르고 당선됐다. 두 후보 간 격차는 약 308만표로 대만 총통선거 사상 최대다. 민진당은 총통선거와 동시에 치러진 입법위원(의회의원) 선거에서도 113석 중 과반을 훨씬 넘는 60.1%를 차지해 행정부와 입법부를 동시에 장악했다. 대만 현지 언론과 정치 전문가들은 국민당의 마잉주(馬英九) 총통이 추진한 친중정책이 대만의 경제 활력 저하라는 ‘부메랑’이 돼 이번 선거 판세를 결정지었다는 분석을 내놨다.
성장 둔화가 8년 만의 정권교체로
역대 대만 선거의 핵심 이슈는 ‘중국’과 ‘경제’였다. 대만 경제의 성장세가 급속하게 쇠퇴하자 ‘경제 회생’ 문제는 선거 때마다 핵심 쟁점으로 등장했다. 중국은 대만 국민에게 정치적 이슈면서 동시에 핵심 경제 이슈였다. 이번 선거 역시 다르지 않았다.
2008년 정권을 되찾은 국민당의 마잉주 총통은 친중노선을 앞세워 대만 경제 회생을 시도했다. 국민당 정부는 2009년 이후 총 세 차례에 걸쳐 중국 자본의 대만 투자 허용 품목을 확대했다. 이 과정에서 2010년에는 대만과 중국 간 상품 무역의 관세·비관세 장벽을 철폐하는 ECFA를 체결했고, 2014년에는 서비스 분야 투자 장벽을 없애는 서비스 무역협정도 맺었다. 그 결과 대만은 전체 제조업의 97%, 서비스업의 51%, 공공건설의 51%를 중국 자본에 개방했다. 대만은 다른 외국 기업에 대해서는 법에 열거된 업종만 개방하는 ‘포지티브’ 방식을 적용했다. 하지만 중국 자본에 대해서는 법에 적시한 금지업종 외에는 모두 허용하는 ‘네거티브’ 방식을 적용하는 특혜를 줬다.
국민당 정부가 친중정책을 펼치자 대만 기업들은 중국 본토로 몰려갔다. 1991년 이후 지난해 11월까지 대만의 전체 해외 직접투자(FDI) 건수 5만5526건 중 75%가 대(對)중국 투자였다. 그 결과 대만은 세계에서 대중 경제 의존도가 가장 높은 국가가 됐다. 수출은 40%, 국내총생산(GDP)은 16%를 중국에 의존하고 있다.
분노한 젊은 층이 선거 판세 주도
대만과 중국 간 경제협력이 강화되자 국제사회에서는 ‘차이완(차이나+타이완) 연합군’에 대한 경계의 목소리가 높아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대만의 중국 ‘올인’ 정책은 중국 경제의 성장세 둔화 등으로 부메랑이 돼 돌아왔다. 2010년 10.63%까지 치솟았던 대만의 경제성장률은 2011년부터 2~3%대로 떨어졌고, 작년에는 0%대에 그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중국의 성장이 급속히 둔화한 후폭풍이 대만에까지 고스란히 전해진 것이다.
특히 폭스콘을 필두로 한 대만 대표 정보기술(IT) 기업들이 중국 본토로 생산기지를 속속 이전하면서 대만에서는 극심한 취업난이 발생, 20~30대 젊은 층 사이에서는 대만판 88만원 세대에 해당하는 ‘22k 세대’라는 자조적인 신조어가 등장하기도 했다. 대만 근로자들의 실질 임금도 10년째 정체되면서 “국민당 정부의 친중정책이 소수 대기업의 배만 불렸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박한진 KOTRA 타이베이 무역관장은 “경제난으로 대만 젊은 층 사이에 형성된 광범위한 반(反)중국 정서가 폭발적으로 표출됐다”고 평가했다.
■ 92공식(共識)
1992년 중국·대만 당국자가 홍콩에서 만나 합의한 ‘공통인식’을 이른다. 양측 모두 ‘하나의 중국’ 원칙을 받아들이되, 하나의 중국을 대표하는 정부가 어디를 말하는지는 각자 해석에 맡긴다는 것이다.
■ 22k 세대
저임금 노동에 종사하는 대만 청년층을 뜻한다. k는 1000을 의미하는 접두어로 대졸 초임이 2만2000(22k)대만달러(약 79만원)에 불과하다는 뜻이다. 대만 교육부가 2009년 갓 졸업한 대졸자를 고용하면 2만2000대만달러의 취업보조금을 준 데서 유래했으나 기업의 대졸 초임 가이드라인으로 변질됐다.
■ 차이잉원은
민진당 대표 취임 후 7차례 승리 이끈 ‘대만版 선거의 여왕’
차이잉원(蔡英文) 민주진보당 대표(59)가 지난 16일 치러진 대만 총통(대통령) 선거에서 당선됨에 따라 105년 대만 역사상 최초의 여성 총통으로 이름을 올리게 됐다.
1994년 정계에 입문한 차이 당선인은 대만 정가에서 ‘선거의 여왕’으로 불리며 민진당의 부활을 이끌었다. 2008년 민진당은 3월 치러진 총통 선거에서 국민당에 참패한 데다 민진당 출신 천수이볜(陳水扁) 전 총통의 부패 스캔들까지 터지면서 창당 후 최대 위기를 맞았다. 차이 당선인은 당시 민진당 대표직에 취임한 뒤 이후 3년간 치러진 일곱 차례 선거에서 민진당의 승리를 이끌어냈다. 차이 당선인은 대만 국립 정치대 법학과 교수로 재직하다 1994년 리덩후이(李登輝) 전 총통 시절 대(對)중국 정책 자문위원을 맡으며 정계에 입문한 뒤 대륙위원회 주임위원(장관) 등을 역임해 행정 경험도 풍부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미혼인 차이 당선인은 타이베이에서 태어났지만 부친인 차이제성(蔡潔生)은 산악거주 대만 원주민인 파이완(排灣)족으로 분류된다. 부친은 부동산, 건설, 호텔 사업을 거느리고 있는 기업인으로 부인을 5명이나 두고 있다. 11명의 형제자매 중 막내딸인 차이 당선인은 본처가 아닌 장진펑(張金鳳)의 소생이다.
베이징=김동윤 특파원 oasis93@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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