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등 선진국과 달리 가격에 따라 부과하는 주류세
일단 정가 올린 뒤 할인…업계 '눈속임 마케팅' 관행도
우유 공급가 정해놓는 '연동제'
재고 남아돌아도 가격 못 내려
[ 강진규 기자 ] “마진을 없애고 50%까지 할인한다는데도 일본의 정가 수준이네요.”
서울의 한 대형마트에서 24일 열린 신년 와인 할인전을 찾은 대학생 김현수 씨(26)는 가격표를 본 뒤 그대로 매장을 빠져나왔다. 지난해 일본 유학 시절 즐겨 마시던 화이트와인이 할인 목록에 있는 것을 보고 매장을 찾은 참이었다. 그는 “일본에서 1900엔대인 저가 와인인데, 2만원에 팔면서 50% 할인가라고 하니 왠지 속는 느낌이 든다”고 말했다.
◆세계 최고 수준의 와인·맥주·콜라
소비자시민모임이 조사한 주요 13개국 대도시의 소비재 물가 비교에서 칠레산 ‘몬테스 알파 카베르네 소비뇽’(2011년산) 와인 가격은 3만8875원으로 세계 최고를 기록했다. 2위 대만보다 약 6000원, 3위 미국보다 1만5000원 높은 가격이다.
유난히 높은 와인 가격은 정부 중간상 소매상의 합작품이다. 수입 와인에는 관세, 주세, 교육세, 부가가치세 등이 붙는다. 이 중 통관 가격의 30%를 붙이는 주세가 가장 큰 문제로 꼽힌다.
주세는 가격에 일정 비율로 매기는 종가세 방식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종가세 방식은 한국 멕시코 터키 칠레 이스라엘 등 5개국에 그친다. 일본 등 대부분 선진국은 양과 알코올 도수에 따른 종량세 방식을 적용한다. 일본은 750mL 한 병당 5~6엔의 주세가 붙는다. 부가가치세도 5%로 국내보다 낮다. 종가세 방식을 채택한 이유는 서민 술로 꼽히는 소주의 알코올 도수가 높아서다. 종량세를 적용하면 소주 값이 오를 수 있다.
유통단계에서의 높은 마진도 문제로 꼽힌다. 통상 수입업체 20%, 도매상 20%, 소매상 30% 수준이다. 고마진을 붙여 팔 수 있는 것은 판매권을 보장받고 있어서다. 주류는 도매 면허를 가진 약 4000개의 도매상을 통해서만 납품된다. 특히 종합주류도매업 면허는 국세청이 매년 공고를 통해 모집하는 등 수를 제한하고 있다. 도매상들이 독과점적 지위를 이용해 높은 마진을 붙일 수 있는 구조다.
윤명 소시모 기획처장은 “매장 운영비 등을 과도하게 산정해 정가를 높이는 소매상의 관행도 문제”라고 설명했다. 일단 높은 가격표를 붙인 뒤 ‘80% 특가세일’ 등의 이름으로 소비자를 끌어모으는 ‘조삼모사식 마케팅’에 의존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수급과 무관하게 고정된 원유가격
수입 맥주도 와인과 비슷한 유통 과정을 거친다. 도매상을 통해서만 납품할 수 있고, 대형마트 등 소매점의 할인 마케팅도 치열하다. 이에 따라 하이네켄 밀러 등 수입 맥주는 13개국 중 한국이 두 번째로 비싸다. 주류업계 관계자는 “원가가 낮아 와인을 50% 할인 판매하거나 1만원에 맥주 4캔을 묶어도 손해를 보지 않는 구조”라고 전했다.
2013년 원유가격 연동제 도입 후 유통단계에서 가격 협상의 여지가 없어진 우유도 국내 가격이 해외보다 높은 대표적인 품목이다. 원유가격 연동제는 전년도 원유 가격에 생산비 증감분과 물가상승률을 고려해 가격을 결정하는 제도다. 가격 결정의 중요한 축인 수요 변동을 무시한 채 공급 요인만 반영하는 구조다.
연동제에 따라 한국의 원유 ㎏당 가격은 1099원으로 2위 중국(586.3원)의 2배에 육박한다. 박상도 한국 유가공협회 전무는 “우유 수요가 줄어들고 있지만 원유 공급가는 동결됐다”며 “원가가 높아 소비자가격을 내리기 힘들다”고 말했다.
해외에서는 이 같은 가격 규제는 사례를 찾기 힘들다. 세계적인 우유 과잉 공급으로 지난해 주요 낙농 선진국은 원유 수매 가격을 일제히 내렸다. 뉴질랜드는 ㎏당 원유 수매 가격을 2014년 582원에서 지난해 298원으로 인하했다. 같은 기간 미국도 570원에서 394원으로 내렸다.
◆유통구조·원가정보 등 가격 투명성 낮아
콜라·올리브오일 등의 가격도 한국이 상위권이다. 코카콜라는 1.5L에 2491원으로 13개국 중 2위다. 올리브오일(1만3192원) 가격은 세 번째다.
이처럼 가격이 고공비행하는데도 식음료 회사들은 제대로 된 설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코카콜라는 지난달에도 스프라이트 전 품목과 업소용 코카콜라 가격을 올렸다.
코카콜라 측은 “스프라이트 등이 경쟁사보다 저가에 팔려 정상화한 것일 뿐”이라며 구체적인 인상 요인에 대해서는 입을 닫고 있다.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 물가감시센터 관계자는 “음료회사들은 독점적 지위를 이용해 주요 원가인 당류 등의 가격이 하락하는데도 값을 올리는 사례가 적지 않다”고 말했다.
강진규 기자 jose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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