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과학기술 50년 '퀀텀점프' 기대한다

입력 2016-01-26 17:37   수정 2016-01-27 05:02

"KIST 설립서 시작된 과기연구소
무에서 일군 10위권 경제력 밑거름
미래 50년 대도약의 기틀 다지길"

이희국 < (주)LG 고문·국가과학기술연구회 융합연구위원장 >



지난해 1000만 관객을 모은 영화 ‘국제시장’이 돌풍을 일으킨 것은 이 영화가 한국 현대사의 고단함과 아픔을 생생하게 보여줬기 때문일 것이다. 세계 최빈국이던 한국이 불과 50여년 만에 선진국 반열을 넘보게 된 과정을 살아온 많은 이들의 인생사와 닮은 이야기는 감동을 준다. 특히 필자의 눈길을 사로잡은 장면을 되돌아보게 된다.

영화의 주인공이 돈을 벌기 위해 가야 했던 베트남에서 전쟁이 한창이던 당시, 한국은 참전의 대가로 미국 존슨 행정부에 ‘과학기술분야 종합연구소’ 설립 지원을 요청했다. 전쟁의 상흔이 가시지 않은 헐벗은 국토, 수출기반이라고는 가발과 갑오징어가 전부였던 우리가 당장의 배고픔을 참으며 가지려고 한 과학기술연구소의 설립은 후손들에게 훨씬 나은 미래를 줘야겠다는 절실함의 표현이었다.

그렇게 서울 홍릉에 터를 잡은 한국 최초의 과학기술연구소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은 국가 기간산업의 기틀 마련, 산업기술 발전이라는 막중한 책무를 맡으며, 과학기술 한국 50년의 시작을 알렸다. 1971년에는 대덕연구단지가 세워졌고, 오늘에 이르러 국가과학기술연구회 소관의 25개 출연연구소가 각 분야 연구에 매진하고 있다. 국가발전과 궤를 함께한 이들 출연연구소의 대표적 성과들은 세계 10위권에 올라선 국가경쟁력의 뿌리를 보여준다. 반도체 강국의 씨앗이 된 디램(DRAM) 메모리 개발, 세계 최고 정보통신강국으로 발돋움하게 해준 부호분할다중접속(CDMA) 기술 상용화, 우주시대를 연 우리별 인공위성과 나로호의 성공, 한국형 원전 수출 등의 결실은 자랑할 만한 업적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최근 세계적인 저(低)성장 기조의 고착과 중국의 거센 추격 등으로 대표되는 외부 환경은 ‘대한민국호(號)’의 여정이 쉽지 않을 것임을 예고한다. 국내 사정도 여의치 않아 정체된 수출과 부진한 경제성장, 심각한 청년실업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가장 빠르게 진행되는 고령화 등은 시급한 대응이 필요하다. 각 경제주체들이 각고의 노력을 기울여야겠지만 필자는 공공 연구개발(R&D)의 역할 변화도 강조하고 싶다. 과거와는 달리 대학의 연구역량이 몰라보게 신장했고, 민간기업의 연구개발 역량도 크게 향상된 지금 출연연구소는 차별화한 R&D를 수행해야 한다.

우선 연구성과가 사업화로 이어지는 사이의 간극, 즉 ‘죽음의 계곡’을 극복하는 것이 필요하다. 지난 10여년간 소위 ‘추격형 혁신’에서 탈피해 ‘선도형 R&D’가 필요하다는 명제 아래 원천기술 개발에 집중해 왔지만, 기업이 활용할 수 있는 연구성과는 많지 않았던 게 사실이다. 민간의 수요를 반영한 현실성 있는 연구기획이 선행돼야 하고 산업계와의 긴밀한 苾쨉?절실하다.

둘째, 차별화된 산업계 지원 역할이다. 중소기업에는 기술적 한계와 애로사항을 극복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성장이 정체된 현재 주력산업의 이후를 내다보는 새로운 분야에서의 도전적인 연구도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기후변화, 재난대응, 고령화와 질병 극복과 같은 국가 아젠다의 해결이 국책연구기관으로서 출연연구소의 본분이 될 것이다. 국민의 안전·행복에 기여할 사회 문제와 인류의 미래를 위한 도전과제의 해결이 과학 한국의 방향이다.

출연연구소들도 변화 의지를 보이고 있다. 지난해 발표된 정부의 R&D 혁신방안에 부응해 출연연구소들이 자발적인 개혁을 통한 성과 창출을 다짐하는 자리도 마련한다. ‘대한(大寒)에 얼어죽는 사람 없다’는 속담처럼 매서운 추위가 꺾이면 봄이 오기 마련이다. 50년 전 황무지에 ‘과학기술 입국’이란 희망의 씨앗을 뿌렸던 선배들의 열정을 이어받아 소중하게 가꿔온 출연연구소들이 새로운 50년을 위한 싹을 틔우리라 기대한다.

이희국 < (주)LG 고문·국가과학기술연구회 융합연구위원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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