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배달된 보도자료를 찬찬히 읽다가 뭔가 어색한 부분을 발견했습니다. 처음 읽었을 땐 잘 몰랐는데, 아무래도 이상해서 꼼꼼히 보니 첨부한 사진에 밑줄을 그은 부분이 눈에 띄었습니다.
정부가 지난해부터 내수 및 수출 진작 차원헤서 벌이고 있는 ‘케이-세일데이(K-Sale Day)’를 영어로는 맞지만, 한글로는 ‘케이-걸스데이’라고 적어놓은 것입니다. 이걸 보며 ‘보도자료를 작성한 사무관이 걸그룹인 걸스데이를 좋아하는구나’라는 생각이 들며 이른 아침부터 조금은 기분이 좋아지기도 했습니다.
오타는 낼 수 있습니다. 공무원도 사람인지라 실수도 당연히 할 수 있습니다. 다만 실소 뒤에 찾아온 생각은 정부부처가 작성한 자료에 오타가 어느새부터인가 부쩍 잦아졌다는 겁니다.
실제로 지난해 초엔 관료로선 상상하기 힘든 엄청난 오타가 산업부 보도자료에서 발견되기도 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을 ‘박근혜 통령령’이라고 쓴 보도자료가 나왔습니다. 악의는 없었을 겁니다. 틀림없는 오타일 텐데, 행정부 직원이 행정부 수반의 직책을 공식문서에 이상하게 적은 해프닝이었습니다.
지난해 6월 보건복지부가 낸 보도자료는 국민들을 불안하게 만들기도 했습니다. 메르스로 전국이 난리가 난 상황에서 메르스 확진자가 나오거나 거쳐간 병원 24곳을 전격 공개하면서 일부 병원 소재지와 상호를 잘못 기재해 배포한 것입니다. ‘서울 성동구’에 있는 성모가정의학과의원을 ‘경기도 군포시’로 잘못 썼고, 여의도성모병원은 영등포구가 아니라 실재하지도 않는 ‘여의도구’로 표기했습니다. 메르스 일일 브리핑 자료를 내면서 숫자가 잘못돼 수도 없이 정정자료를 배포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정부 부처의 자료 오타들이 ‘세종시 리스크’라고 보는 관료들도 많습니다. 왜 그런지 한번 살펴보죠.
정부 부처의 보도자료가 나오는 방식은 대개 다음과 같습니다. 부처의 조직엔 대변인실이 있는데, 모든 보도자료를 대변인실에서 만드는 건 아닙니다. 각 실과 국, 그리고 그 밑의 과에서 보도자료가 탄생합니다. 각 과가 벌이는 사업들이 많고 그 업무는 해당 국에서 근무하는 공무원이 가장 잘 알기 때문입니다.
통상 보도자료는 해당 과의 사무관이 초안을 작성합니다. 사무관이 만든 초안은 과장을 거치고 국장과 실장의 결재를 받습니다. 이런 과정이 통과한 뒤에야 대변인실로 넘어오고 대변인실의 사무관-과장-국장(대변인)이 난해하게 작성된 건 아닌지, 오타는 없는지 확인하는 과정을 거칩니다. 이 과정이 모두 끝난 후에야 정부의 공식 보도자료로 탄생이 됩니다.
이렇게 여러 단계의 과정을 거치는데도 어처구니 없는 오타들이 걸러지지 않는다는 것은 쉽게 이해가 안됩니다. 관료를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는 사무관들이 오 만?내거나, 전국의 지명을 잘못 표기해도 과장의 승낙을 받고, 국장의 승인을 받아냅니다. 부처의 ‘입’이라는 대변인실로 보내져도 마찬가지입니다.
한 경제부처의 국장은 “사무관이 보고서나 보도자료를 써서 과장에게 결재를 받으러 가면 얼굴을 바라보며 빨간펜으로 고쳐쓰면서 교육을 하던 과거엔 상상도 못할 일”이라고 했습니다. 다른 부처의 B과장은 “국·과장이 서울 출장으로 자주 자리를 비우다 보니 아무래도 조직 분위기가 느슨해지고 대면보고도 줄어 어이없는 실수가 나오는 게 사실”이라며 “스마트폰으로 이메일을 통해 보고된 자료를 검토하면 오자가 눈에 띄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일종의 ‘세종시 리스크’가 보도자료 오타로 투영된 셈이죠.
이런 자아비판을 들으면서 한편으로는 충분히 그럴 수 있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박근혜 통령령’이나 ‘케이-걸스데이’를 발견해서 해당 과나 대변인실에 전달한 것도 저였는데, 기자인 제가 말해주기까지도 부처에 근무하는 그 누구도 몰랐으니까요. (끝) /hu@hankyung.com
한경+는 PC·폰·태블릿에서 읽을 수 있는 프리미엄 뉴스 서비스입니다 [한경+ 구독신청] ⓒ '성공을 부르는 습관' 한국경제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