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Z Insight] '배려'의 경영학

입력 2016-01-29 07:00  

경영학 카페

기업은 사업 시작할 때 누가 어떤 영향 받을지를 먼저 생각해야



최근 세월호 유가족에 징병검사 통지서가 날아 들었다. 1997년생인 실종 남학생들에게 통지서가 일괄적으로 발송된 것이다. 아들 시신을 찾지 못해 여전히 가슴이 허전한 가족은 통지서를 손에 들고 밤새 울었다고 한다. 정부가 이렇게 무심할 수 있느냐면서 말이다.

병무청은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2014년 7월과 2015년 10월에 단원고와 국무조정실에 실종자 명단을 요청했다. 하지만 국무조정실은 개인정보보호법을 근거로 명단을 제공하지 않았다. 사망 신고가 되지 않아 통지서가 발송됐다지만, 정부도 병무청도 비난을 피할 수 없다. 사건 발생 2년이 지나도록 사고 피해자의 명단을 확인하지 못한 것은 참으로 궁색한 이유다. 통지서가 문제로 떠오르자 병무청은 국무조정실과 협의해서 명단을 확보했고 더 이상 통지서 발송을 막았다고 한다. 처음부터 할 수 있었던 일을 하지 않았다고 할 수 있다.

권력을 가진 조직이 일을 벌일 땐 다른 사람이 상처받지 않도록 적극적으로 배려해야 한다. ‘아무도 내게 알려주지 않았어요’, ‘제 소관은 아니잖아요’라는 말은 상처받은 사람에게 또 다른 고통?주는 행위다.

고대 유대인의 경전인 신명기는 최소한 자신의 행동이 상대방에게 해악을 끼치지 않도록 적극적으로 사고를 예방할 것을 강조한다. 예컨대 새집을 지은 집 주인은 옥상에 난간을 설치해 추락사를 예방하라고 가르친다.

미연의 사고를 예방하려는 사전조치 전통은 미국에서 다른 형태로 부활했다. 소송이 잦은 미국에서는 기업들이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노력을 다했다는 것을 증명하려고 다양한 안내 문구를 개발해 상품에 기재한다. 커피잔에 ‘내용물이 뜨겁다’고 적거나, 장난감 상자에 ‘장난감을 입에 넣으면 질식의 위험이 있다’고 적는 식이다. 때로는 이런 관례가 유머 소재가 된다. 필자는 젓가락 포장지에서 ‘젓가락을 코에 넣지 마시오’, 약병에서 ‘약을 입으로 드시오’라는 안내 문구를 보고 웃었던 적이 있다.

안타깝게도 한국에선 배려가 없는 것이 문제다. 진심 어린 배려가 아닌 면피용 안내 문구가 악용돼 문제를 일으키기도 한다. 올해 초 한 대형마트가 경품행사에서 수집한 고객 개인정보 2400여건을 보험사에 판매하고 수익을 챙겼다. 시민들의 공분을 사는 사건이었지만, 재판부는 무죄를 선고했다. 개인정보가 보험사 영업에 사용된다는 내용을 1㎜ 크기의 글씨로 알렸다는 이유에서다. 정작 판결을 내린 법관들은 1㎜짜리 글씨를 읽을 수 있을까?

법이나 규정은 사회를 유지하는 가치와 상식을 명문화한 결과로 보아야 한다. 관련 법이 없더라도 상식에 벗어나지 않게 행동해야 하고, 규정이 있다고 해서 이를 악용해서도 안 된다. 하물며 문구 하나를 이유로 상식에 벗어나는 행동을 해서는 더욱 안 된다.

얼마 전 한국과 일본은 위안부 협상을 타결했다고 발표했다. 협상 직전, 미국 캘리포니아주가 일본군의 강제 위안부제도 운영을 역사교육에서 다루겠다고 하는 등 일본을 향한 전방위 압박이 있었다. 상황이 불리한 것을 알아챈 일본은 그동안의 태도와 달리 적극적으로 협상을 시도했다. 갑작스러운 일본의 태도변화도 놀라웠지만, 그러한 협상에 신속히 대응한 우리 정부의 반응도 놀라웠다. 놀라움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협상 결과를 두고 논란이 이어지는 가운데, 일본 언론은 ‘최종적, 불가역적’이라는 문구를 거듭 강조했다. 아베 총리는 산케이신문을 통해 이번 협상을 끝으로 일본의 총리가 더는 한국에 사죄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했다. 심지어 협상의 목적이 일본의 다음 세대가 사과의 부담 없이 살기 위해서라는 뜻을 내비치니, 위안부 할머니의 상처받은 마음에 대한 배려는 처음부터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한국 사회는 어설픈 사과에 넘어갈 만큼 어수룩하지 않다. 지난해 말 간장을 만드는 기업의 경영진이 직원을 상습적으로 폭행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사원을 가족처럼 회사일을 내 일처럼’이라는 문구가 무색한 일이다. 요즘 소비자들은 이런 기업의 제품을 사지 않음으로써 의미 있는 응징을 한다.

정부는 국민을, 기업은 소비자를, 경영진은 직원을 의식해야 한다. 무서워하지는 않을지라도 함부로 여겨서는 안 된다. 새집을 지을 때 옥상 난간을 설치하는 마음으로, 정책을 추진하고 사업을 벌일 때 누가 어떤 영향을 얼마나 받을지 생각해보는 배려가 필요한 때다.

김용성 < IGM세계경영연구원 교수 >



[한경닷컴 바로가기] [스내커] [한경+ 구독신청]
ⓒ '성공을 부르는 습관' 한경닷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뉴스

    top
    • 마이핀
    • 와우캐시
    • 고객센터
    • 페이스 북
    • 유튜브
    • 카카오페이지

    마이핀

    와우캐시

    와우넷에서 실제 현금과
    동일하게 사용되는 사이버머니
    캐시충전
    서비스 상품
    월정액 서비스
    GOLD 한국경제 TV 실시간 방송
    GOLD PLUS 골드서비스 + VOD 주식강좌
    파트너 방송 파트너방송 + 녹화방송 + 회원전용게시판
    +SMS증권정보 + 골드플러스 서비스

    고객센터

    강연회·행사 더보기

    7일간 등록된 일정이 없습니다.

    이벤트

    7일간 등록된 일정이 없습니다.

    공지사항 더보기

    open
    핀(구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