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보영 기자 ]
바둑은 오래전부터 사랑받아 온 게임이다. 논어(論語)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는 바둑을 두는 것이 낫다(以奕爲爲之猶賢乎己)”는 공자의 가르침이 나온다. 바둑이 춘추전국시대에 널리 보급됐음을 유추할 수 있는 구절이다.
가로·세로 각각 19줄의 좁은 반상이지만 그 위에서 펼쳐지는 수싸움은 변화무쌍하다. 바둑이 흔히 인생에 비유되는 이유다. 그만큼 공략이 어렵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포커나 블랙잭처럼 확률이 개입되지 않는 바둑은 두 대국자 모두 같은 반상을 들여다 보고 있기 때문에 양측에게 공개되는 정보가 같다. 영원히 지속되는 게임도 아니다. 돌을 순차적으로 놓다 보면 반드시 끝난다. 이렇듯 규칙이 쉽고 투명하지만 경우의 수가 어마어마해 최적의 전략을 도출하기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바둑을 두는 인공지능(AI) 프로그램이 이세돌 9단과의 대국을 앞두고 있어 화제다. 구글이 2014년 인수한 인공지능기업 ‘딥마인드’가 개발한 바둑 프로그램 ‘알파고’가 聆寬坪甄? 오는 3월 서울에서 10여년간 세계 바둑계를 평정해 온 이 9단과 대결을 펼칠 예정이다. 사람을 닮은 기계학습(머신러닝) 알고리즘이 ‘알파고’를 움직인다. 바둑기사들의 기보를 활용해 이기는 법을 익힌 뒤 스스로 게임을 하며 강화 학습을 하는 원리다.
이 9단은 “아직 인간이 위에 있다”며 “당연히 이긴다”는 입장이다. 구글은 알파고의 승리를 5 대 5로 예측하고 있다. ‘알파고’는 지난해 10월 이미 유럽 챔피언을 꺾었다. 첫수가 20개에 불과한 체스와 바둑의 복잡도는 비교할 수 없지만, 체스 세계 챔피언 게리 카스파로프도 IBM의 슈퍼컴퓨터 ‘딥블루’와 게임을 시작하기 전 승리를 자신했다. 첫 경기에는 이겼지만 1997년 개량 모델에는 졌다.
이번 대국은 시작하기도 전에 이미 인간과 기계에 대해 새로운 화두를 던지는 기념비적인 사건이 됐다. 승패를 떠나 세상에서 가장 복잡한 게임 중 하나인 바둑 분야에서 컴퓨터가 인간에게 도전장을 던졌다는 점에서다.
머신러닝의 발달로 기계는 모방을 넘어 스스로 학습한다. 기계가 얼마나 인간과 비슷하게 대화하는지 가려내는 ‘튜링 테스트’를 실시했을 때 컴퓨터를 사람으로 믿는 비율은 2008년에 이미 25%를 넘었다.
AI에 대한 재정의가 필요한 시점이라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다. 영화 ‘스타워즈’에 등장하는 휴머노이드 C3PO나 로봇 R2D2처럼 인공지능에 ‘모습’을 부여해 상상하던 시절은 다분히 순박한 시대였다. 기계가 처음 등장했을 때 사람과 기계의 구분은 명확했지만 빠르게 그 경계가 흐려지고 있다. 이제 코드의 집합으로 이뤄진 형체 없 ?소프트웨어가 사람처럼 사고하고, 사람을 넘어서는 시기가 오려고 한다.
‘파운데이션’ 등의 저서로 유명한 공상과학(SF) 작가이자 과학자였던 고(故) 아이작 아시모프가 1942년 ‘로봇 3원칙’으로 불리는 윤리 강령을 발표했을 때만 해도 사람들은 농담처럼 받아들였다. 영화를 추천하고, 최단거리를 찾아주는 ‘비서’ 역할을 하던 컴퓨터가 엄청나게 빠른 연산 능력과 판단력을 갖추고 자기복제를 통해 세를 넓혀간다. 창조자의 의도에 따라 디스토피아적 미래를 구현할 수 있는 AI의 미래상이 단지 웃음거리만은 아니라는 점을 ‘알파고’는 시사하고 있다.
김보영 기자 wi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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