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근대사 100년에 관한 성찰 『조용한 혁명-메이지유신과 일본의 건국』출판

입력 2016-02-02 15:24  

국내 저자가 메이지유신과 근대일본의 건국 과정을 중심으로 일본 근대사를 체계적으로 분석한 책이 처음 나왔다.
소명출판에서 나온 『조용한 혁명-메이지유신과 일본의 건국』이 그것이다. 저자는 국제지역학 박사인 성희엽 씨.서울대 화학과를 졸업하고 동북아국제대학원을 거쳐 부경대 대학원에서 일본 근대사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부산시청,기획재정부에서 근무하고, 동서대 대학원 일본지역 연구과에서 초빙교수로 강의하기도 했다.

일본뿐만 아니라 중국, 미국, 러시아 등 한반도를 둘러싼 4개 강대국의 근대사에 관해 국내 학자가 저술한 체계적인 역사책이 거의 없는 역설적인 상황에서 이 책의 출간은 매우 의미 있는 시도라고 볼만 하다.

이 책을 펼쳐보면 우선 방대한 분량의 사진자료가 눈에 띤다. 저자는 한 국가의 근대 역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나라의 역사지리에 관한 이해가 필수적이라고 생각했다. 메이지유신을 주도한 주요 지역(번)의 역사와 지리를 이해하기 위해 가고시마에서 센다이까지 25개 도시를 직접 탐방하고,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방대한 분량의 사진을 촬영해 실어 놓았다.

부록으로 일본근대사의 주요 연표와 도쿠가와 막부가 서양 국가들의 동향과 아편전쟁의 상황에 관한 일종의 정보보고서인 풍설서(風說書), 이 책이 대상으로 하고 있는 시기의 일본역사영화, 역사드라마에 자료도 수록했다.

이 책은 1700년대 후반부터 근대국가체제가 성립되고 서양 국가들과 체결했던 불평등조약이 완전히 개정되는 1900년대 초까지의 시기를 대상으로 했다. 1부 유신과 건국의 기원, 2부 유신혁명, 3부 건국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모두 800쪽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이다.

제1부에서는 사상적인 측면에서 메이지유신으로 이어지는 3가지의 정신적 기원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뒷날 황국사관의 정신적 토대가 되는 국학, 서구문명을 도입 발전시키는 양학, 오늘날 일본적 공공질서의 토대가 되는 고학 등이다. 국학(國學)은 1700년대 말 모토오리 노리나가가 체계화하고 그의 제자 히라타 아쓰타네에 의해 종교(신도)로 발전한다. 난학(蘭學) 혹은 양학(洋學)은 1774년 한의사였던 스기타 겐파쿠가 1734년 네덜란드에서 발간된 해부학 책을 번역한 『해체신서』의 간행을 계기로 본격적으로 발전한다. 일본의 독특한 유학(儒學)으로 발전하는 고학은 1700년대에 이토 진사이, 오규 소라이에 의해 체계적으로 발전한다.

저자는 이 시기에 일본에서 이처럼 다양하게 꽃피기 시작한 사상적 발전이 메이지유신에 어떻게 영향을 미쳤는지를 분석하고 있다. 국학과 유학을 설명하고 있는 2장, 4장은 처음 접하는 독자들에게는 좀 어려울 수 있는 내용이지만, 3장 근대성은 일본의 서양문명 도입과정을 쉽게 설명하고 있다.

이어 제2부는 1840년 중국에서 일어난 아편전쟁 이후 1868년 초 메이지유신까지 시기를, 주요 주제별로 서술하고 있다. 5장 혁명전야, 6장 유신, 7장 유신혁명 등 세장으로 구성됐다. ‘료마전’, ‘료마가 간다’, ‘언덕위의 구름’, ‘대망’, ‘진(仁), ’아츠히메‘ 등 우리나라에서도 유행했던 메이지유신과 관련된 일본 역사드라마나 역사소설을 한 번 쯤 본 적이 있는 독자들에게는 매우 익숙한 내용이다. 역사책인 만큼 이 시기 혁명적 사무라이들이 펼쳐가는 드라마틱하고 다양한 사건들의 인과관계와 역사적 교훈을 체계적으로 서술하고 있다. 이 때문에 영화나 드라마에서 이해할 수 없었던 의문들을 설명해 주고 있다.

제3부에서는 군사 쿠데타를 통해 메이지정부를 수립한 뒤, 정부의 주요 인물들이 22개월간 미국과 유럽 12개국을 공식 순방하는 이와쿠라사절단에서부터 1889년 메이지 근대국가의 수립, 유신 정부가 40여년에 걸쳐 서양 5개국과 1858년 체결한 불평등조약(관세자 주권 상실, 치외법권 인정)을 완전하게 개정해 가는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8장에서 12장까지 구성돼 있다. 건국의 구상에서 경제혁명, 군사혁명, 입헌혁명이 진행되는 과정을 체계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각 장의 1절에는 이를 주도해 나간 이와쿠라 도모미, 오쿠보 도시미치, 야마가타 아리토모, 이토 히로부미 등 주요 인물의 생애가 설명돼 있다. 기도 다카요시에 관해서는 2부 7장에 설명된다.

마지막 장인 제12장에는 이 책의 결론에 해당하는 부분으로 유신과 건국에 관한 성찰이다. 이 책의 분량이 방대한 만큼 독자들은 문제의식에 해당하는 시작하면서의 제 1절과 결론에 해당하는 제12장을 먼저 읽어본 다음, 관심 있는 분야별로 읽는 것이 좋을 듯하다.

이 장에서는 유신과 건국을 주도해 나간 주체세력인 사무라이 혁명가(‘덴포(天保)기의 사무라이들’, 일본 연호 중 하나인 덴포기(1830-1844)에 태어나고 자란 청년 사무라이 혁명가)가 어떻게 형성되고, 정신적 각성을 하게 되며, 국가지도자로서 어떤 자질을 갖추게 되었는가를 설명하고 있다. 봉건체제에서 특권 계급으로 태어난 이들이 자신의 신분적 특권과 봉건질서를 해체하고 새로운 근대국가를 형성해가도록 한 정신적 원동력은 무엇이었던가를 분석하고 있다.

저자는 이를 시대정신(자주독립과 체제변혁)의 자각, 민족적 정체성(민족의식, 애국심)의 체감, 공적 사명감의 체득(천황제 중앙집권 국가의 건설) 등에서 찾고 있다. 시대정신의 자각은 1700년대 사상의 다양한 발전과 에도시대의 교육혁명이라고 불리는 교육의 보급에서, 민족의식의 각성은 대외적 위기 아래 국토순례와 에도, 나가사키, 오사카, 교토 등에서의 유학을 통해 찾고 있다.공적사명감의 체득은 외세의 위협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다이묘와 가신이라고 하는 봉건적 주종관계에서 탈피해 천황을 중심으로 하는 중앙집권적인 국가의 건설을 새로운 사명감, 큰 충(忠)으로 받아들이는 것에서 형성된다.

이처럼 이 책의 1,2,3부는 근대일본의 발전과정을 사상사, 변혁운동사, 제도사 측면에서 각각 분석하고 있다. 하지만 세 측면이 각각 연결되면서도 독립적인 내용으로 구성됐기 때문에 전체를 순서대로 읽지 않고 관심분야에 따라 각각 따로 읽어도 무방하다.

저자는 이 책에서 무엇을 말하고 싶은 것일까? 이것은 이 책의 ‘시작하면서-동아시아근대사의 거울, 일본근대사’에 잘 나타나 있다. 저자는 1800년대 중반 서구열강이 동남아시아를 식민지화하고 난 뒤 동아시아로 진출할 때, 이들의 군사? 경제적 침탈에 맞서 일본만이 유일하게 국가의 독립을 유지하고, ‘사무라이의 사회적 자살’이라고 불릴 정도로 봉건사회체제에서 근대사회체제로의 근본적인 국가개혁에도 성공한 요인이 무엇인가라는 의문을 오랫동안 가지고 있었다. 일본근대사를 동아시아 근대사의 거울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책은 일본근대사 연구를 통해 이 의문에 대한 해답을 스스로 찾아보려는 과정에서 탄생한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1800년대 중반 동아시아 국가들이 직면했던 ‘자주독립과 국가개혁’이라는 두 개의 시대적 과제에 당시 세계 최고의 강대국이었던 중국도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던 반면 일본은 어떻게 가능했던 것일까?

해답을 찾기 전에 저자는 우선, 일본의 근대 계몽사상가로 불리는 후쿠자와 유키치의 말을 빌려, ‘믿음의 세계에 거짓이 많고, 의심의 세계에 진리가 많다’는 화두를 던진다. 우리가 상식이라고 받아들이고 있고, 진리라고 믿고 있는 일본근대사와 한일관계사에도 오류가 많이 있을 수 있다는 점을 우회적으로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식민지강점에 대한 비판과 과거사문제를 중심으로만 일본근대사를 보는 좁은 시각 때문에 생기는 현상이다. 따라서 저자는 일본근대사를 이제는 서양의 침탈에 맞서 시대적 과제를 해결하면서 자립적으로 발전해가는 과정에서 볼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결론적으로 저자가 일본 근대사 100년을 비극적인 동아시아의 근대사를 비춰볼 수 있는 거울로 삼아 성찰함으로써 얻은 결론은 지극히 상식적인 내용이다. 제12장 마지막 문장에 나타나 있듯이, 그것은 “나라를 살리는 것도, 나라를 죽이는 것도 그 시대, 그 세대 국가지도자의 몫이다”라는 것이다. 국가지도자의 자질과 능력에 따라 국가의 운명이 바뀐다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중국, 미국, 러시아, 일본이라는 4대 강국과의 협력과 갈등 속에서 국가의 운명을 개척해가야 한다. 100년 전이나 100년 뒤나 이러한 지정학적 정치현실에서 벗어날 수 없다. 오늘 우리 정치 현실을 돌아볼 때 이러한 저자의 결론은 국가적 과제와 국민의 열망을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기는커녕 자기 당파의 문제도 해결하지 못하고 이합집산을 거듭하고 있는 정치 지도자들과 우리나라의 정치현실에 많은 시사점을 줄 수 있을 것이다.

김태현 기자 hyu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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