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풍우 속 '뚝심샷' 불구 1.5m 파 퍼트 놓쳐 보기
스네데커에게 우승 내줘
안병훈·김시우 등 이어 '맏형' 최경주도 맹타 예고
'K브러더스' 부활 신호탄
[ 이관우 기자 ]
“그냥 하루 4000개씩 ‘쌔리’ 쳐봐요. 저절로 알게 될 거요.”
‘탱크’ 최경주(46·SK텔레콤)는 틈틈이 샷 비법을 물어오는 갤러리들에게 이렇게 말하곤 한다. 연습만 한 선생님은 없다는 얘기다. 그는 그렇게 했다. 비오는 날에도 하루 8시간씩 채를 휘두르고, 샌드웨지가 숟가락만 하게 닳을 때까지 모래를 판 연습기계가 ‘완도 촌놈’ 최경주다. 끈기 하나로 미국프로골프(PGA)투어 8승을 올린 최경주가 오랜 침묵을 깨고 우승 사냥에 다시 시동을 걸었다.
◆파 퍼트 가로막은 바람의 심술
최경주는 2일(한국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디에이고 토리파인스골프코스에서 끝난 PGA투어 파머스인슈어런스오픈에서 준우승을 차지했다. 최종합계 5언더파로, 우승자 브랜트 스네데커( 堅?middot;사진)에 딱 1타 모자랐다. 3라운드 선두를 지켰을 때면 100% 우승컵을 차지했던 전승 기록은 아쉽게 깨졌다. 이번 대회에서 그는 3라운드까지 공동 선두였다.
하지만 샷만큼은 경쟁자들을 압도했다. 폭풍우 속에서도 드라이버 정확도가 전체 1위(72.43%)였다. 아이언 정확도 역시 72.22%로 2위에 올랐다. 이날 바람은 무거운 빗물까지 머금고 초속 40m로 페어웨이를 때렸다. 둘레 4m짜리 나무 세 그루가 뿌리째 뽑혀 나뒹굴었다. 나상현 프로는 “바람의 영향을 피하기 위해 최경주는 스핀양을 최대한 죽여서 쳤다. 프로 22년차의 노련미가 돋보였다”고 평했다. 볼의 스핀양은 바람이 불수록 기하급수로 늘어난다. 훅 구질이나 슬라이스 구질은 2.5배까지 심해진다는 전문가들의 연구결과도 있다.
홀컵 주변에서 바람에 밀린 퍼팅이 탱크의 완전한 부활을 막았다. 대부분 짧았다. 1.5m짜리 14번홀 파 퍼트가 들어갔다면 연장까지 갈 수 있었다. 더 아쉬운 건 10번홀이었다. 홀컵 1㎝ 앞에 멈춰선 공은 움직이지 않았다. 바람과 젖은 그린이 힘차게 굴러가던 공에 브레이크를 걸었다. 평균 퍼팅이 41위로 뚝 떨어졌다.
‘지략가’인 스네데커는 ‘짧게 끊어치는’ 퍼팅으로 퍼터가 바람에 휘청이는 부작용을 피해갔다. 이날 경기에서 언더파를 친 선수는 스네데커(3언더)가 유일했다. 3라운드까지 우승 다툼을 벌였던 스콧 브라운(미국)은 15오버파를 치며 아마추어처럼 무너졌다.
◆기지개 켜는 ‘K브러더스’
최경주를 달라지게 한 건 절박함이다. 그는 2011년 5월 플레이어스챔피언십 이후 4년8개월간 우승하지 못했다. 준우승도 2014 ?6월 트래블러스챔피언십 이후 처음이다. 플레이어스챔피언십 우승으로 거머쥔 5년간의 PGA투어 자동 출전권도 올해로 끝난다. 우승을 해야만 다시 연장할 수 있다. 시즌 초반 우승하면 오는 4월 열리는 마스터스에도 참가할 수 있다. 그는 지난해 13회 연속 마스터스 출전을 이루지 못해 아쉬움을 삼켰다.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골프 대표팀 코치로 선임된 ‘맏형’의 선전은 해외에서 활약 중인 ‘K브러더스’의 활약에 자극제가 될 수 있다. 선수층도 두터워지고 있다. ‘대표선수’ 배상문(30)의 군 입대 이후 스타급 남자 프로골퍼에 대한 갈증으로 팬들의 관심은 유럽프로골프(EPGA)투어 신인왕 안병훈(25·CJ)에게 주로 쏠렸다. 그 기대감이 ‘특급 루키’ 김시우(21·CJ)에게, 다시 ‘어린왕자’ 송영한(25·신한금융그룹)에게로 확대될 즈음 백전노장이 귀환을 예고하고 있다.
마침 EPGA투어에선 재미 동포 다니엘 임(30)이 상위 10위권에 이름을 수시로 올리며 유망주로 등장했다. 아시안투어 퀄리파잉스쿨에서는 장이근(22)이 643명의 경쟁자를 누르고 수석 합격해 K브러더스 편대에 가세할 참이다. 여자프로골프의 그늘에 가려졌던 남자프로골프의 부활에 최경주가 ‘신호탄’이자 동시에 ‘경쟁자’ 역할을 하는 듯한 모양새다. 우승 한 번이면 최경주는 코치가 아니라 선수로 올림픽에 출전할 수도 있다. 최경주는 “올해엔 무슨 일이 있어도 꼭 우승하고 싶다”고 했다.
이관우 기자 leebro2@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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