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크 아탈리 지음 / 양영란 옮김 / 책담 / 256쪽 / 1만5000원
[ 김보영 기자 ]
‘인상파의 아버지’라 불리는 프랑스 화가 마네가 1865년 아카데미살롱에 출품해 입선한 ‘올랭피아’는 드러누운 나부(裸婦)를 그린 그림이다. 비스듬히 누운 여인의 발치에는 검은 고양이가 보인다. 곁에 선 흑인 하녀는 여인이 선물 받은 것으로 추정되는 꽃다발을 들고 있다. 시인 보들레르는 엄청난 논란을 일으킨 이 그림을 당시 현대적인 작품의 상징으로 꼽았다. 단순히 벗은 여체를 그려서가 아니라 목에 두른 검은 리본 때문이었다. 쾌락(나체)과 죽음(검은 리본)이 피할 수 없는 존재임을 암시했다는 것이다.
‘오래된 것, 구시대적인 것과 대조를 이루는 새롭거나 우리 시대적인 것.’ 18세기 디드로의 ‘백과전서’에 등장하는 ‘모던(Moderne)’이라는 표제어의 첫 문장이다. 현대성을 의미하는 모더니티는 한 사회가 미래에 대해 품고 있는 개념을 지칭하는 용어다. 미래에 대해 상상하고 소망하는 敲?아니라 거부하는 것까지 뭉뚱그려져 있다는 점에서 모더니티의 역사를 짚어 보는 것은 의미가 깊다. 프랑스의 대표적 석학 자크 아탈리가 《인류는 어떻게 진보하는가》에 모더니티의 발달사를 한데 담은 이유다.
최초의 모더니티 개념을 발명한 것은 히브리와 그리스 민족으로 알려져 있다. 두 민족은 각각 이집트의 억압과 트로이 전쟁 등 다른 민족과의 갈등을 겪으며 모더니티에 눈을 뜬다. 이들은 시간을 주기적·순환적으로 반복되는 ‘원’의 형태가 아니라, 앞으로 뻗어나가는 ‘선’의 형태로 처음 인식했다. 한 사회에서 모더니티를 지칭하기 위해 과거와 현재, 미래에 대한 구분은 필수적이다. 소포클레스의 비극 ‘안티고네’에서 볼 수 있듯 이 시대의 진보는 인간 찬미를 의미했다.
4세기부터 14세기에 이르는 약 1000년 동안은 신앙 지향적 모더니티가 서구를 지배한 시기다. 기독교 교회와 봉건적·군사적 엘리트들이 신앙 지향적 모더니티 보급의 주역이었다.
금속활자 인쇄술이 1468년 유럽에 처음 도입됐을 때 교회는 성경의 보급이 원활해져 신성로마제국이 부활할 것으로 믿었다. 직접 성경을 읽은 사람들이 교회의 성서 해석을 비판하리라는 것은 예상 밖이었다.
신앙 지향적 모더니티가 무너지고 이성 지향적 모더니티로 넘어가게 된 계기다. 봉건적 모더니티를 조롱한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가 출간되고 ‘신구논쟁’이 벌어지는 등 굳건했던 교회의 아성이 점차 흔들리기 시작했다.
19세기 유럽은 내연기관과 자동차, 전화와 비행기, 영화 등 신기술이 현란하게 등장한 무대였다. 시장과 민주주의를 제도적 규범으로 삼고 이성을 궁극적 목표로 삼은 이성 지향적 모더니티의 세계가 펼쳐졌다. 니체가 등장해 이성 지향적 모더니티에 환멸을 표하기 전까지의 일이다.
이 책에서 모더니티의 역사를 되짚는 것보다 가치있는 통찰은 2030년의 모더니티를 예측해보는 작업이다. 아탈리는 모더니티의 미래를 일곱 가지로 분류한다. 이성 지향적 모더니티가 극에 달한 ‘하이퍼 모더니티’와 이전 시대의 모더니티에 조금씩 수정을 가한 비(非)·복고지향·민족지향·생태지향·신정정치지향 모더니티 등 5개 모더니티, 그리고 대안적 모더니티다.
아탈리는 하이퍼 모더니티에 맞닥뜨린 미래 사회에서 이에 대적할 수 있는 가장 가능성 높은 모더니티로 대안적 모더니티를 꼽는다. 타인의 행복을 자신의 삶의 조건으로 삼는 이타주의에 기반을 둔 모더니티다. 계몽주의적 개념보다 덜 교만하면서도 민주주의를 수호할 수 있고, 문화의 다양성과 개인의 자유를 보장해준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김보영 기자 wing@hankyung.com
[한경닷컴 바로가기] [스내커] [한경+ 구독신청] ⓒ '성공을 부르는 습관' 한경닷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