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무드에 따르면 유대인들은 만장일치를 비정상적으로 여긴다. 만장일치로 이뤄진 판결은 통과되지 않고 보류된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는 반대로 만장일치가 미덕이라는 관념이 오래전부터 존재해 왔다.
사회 심리학자들은 응집력이 강한 조직일수록 의사결정을 내릴 때 구성원 간 갈등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만장일치를 이루려 하는 편향인 ‘집단사고(groupthink)’를 경계한다. 집단사고는 리더와 다른 의견이 있더라도 말하지 못하는 자기 검열 현상을 초래하기 때문이다. 요즘처럼 경쟁이 치열해지고 불확실성이 가중되는 위기 시기에 기업들에 단 한 번의 잘못된 의사결정은 치명적인 피해를 끼치게 마련이다.
‘넛지(Nudge)’ 공동저자인 캐스 선스타인(Cass Sunstein) 하버드대 로스쿨 교수는 조직의 편향적 의사결정을 극복할 수 있는 방안으로 ‘레드팀(Red Team)’ 기법을 꼽는다. 역사적으로는 오래된 개념이지만 해외에 비해 아직 한국에서는 그 중요성이 부각되지 않은 의사결정 기법에 속한다.
레드팀은 ‘악마의 대변인(Devil’s Advocate)’에 그 뿌리를 둔다. 냉전 시기를 거치는 동안 군대에서 모의 군사훈련을 할 때 아군을 블루팀, 적군을 레드팀으로 불러온 데서 나온 말이다. 현재 레드팀은 군사·국방은 물론 일반 기업, 정부, 로펌, 미디어, 스포츠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되고 있다.
레드팀에는 세 가지 기능이 있다. 첫째, ‘시뮬레이션’을 통해 상황을 미리 예측한다. 둘째, ‘취약점 발견 과정’을 통해 되짚어보기를 실행한다. 경쟁사의 관점을 가진 레드팀과 기존 전략팀인 블루팀 간 경쟁을 통해 전략의 취약점을 찾아내 완성도를 높인다. 이는 스스로 문제점을 찾아내는 데 도움을 줄 뿐더러, 경쟁사의 대응 및 그에 대한 역대응 전략에까지 대비할 수 있다. 셋째, ‘대체 분석’을 통해 새로운 통찰을 제공한다. 조직 내 주류적인 관점으로부터 벗어나, 기존 가설을 공격하고 기업 전략에 새로운 관점을 제시한다. 투자 결정이나 전략을 한 번 결정하면 바꾸기 어려운 사업일수록, 투자 규모가 클수록, 혹은 정보가 핵심 자산으로서 보안의 취약성에 따라 그 피해가 치명적일수록 레드팀의 위력은 더욱 커진다.
레드팀의 효과를 가장 크게 본 기업이 바로 듀폰이다. ‘포천’이 선정한 500대 기업 가운데 최장수 기업인 듀폰은 지난해 12월 다우케미컬과 합병한 이후 통합 회사의 가치가 약 1300억달러, 연 매출 900억달러에 이르는 세계 2위 화학 업체로 부활했다. 듀폰은 오래전부터 사업 재편과 관련한 의사결정에 앞서 레드팀을 적극 활용해왔다. 9·11테러, 카트리나 태풍, 글로벌 금융위기 등의 위기에 봉착할 때마다 글로벌 기업 가운데 가장 신속히 대처할 수 있었던 것은 레드팀 덕분이다.
레드팀을 성공적으로 도입하기 위해선 구성원이 중요하다. 내부 인력 중심이되, 최근 경쟁사에서 이직한 사람일수록, 창의적이거나 주어진 정보를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는 회의론자일수록 훌륭한 레드팀 일원이 될 것이다. 때론 엉뚱하거나 새로운 시각을 받아들이는 개방적이고 능동적인 자신감도 필요하다. 또한 고정관념을 피하기 위해 업무의 독립성을 확보해주되, 주기적으로 팀원을 교체할 필요도 있다. 특히 국내 기업은 레드팀 구성원에 대한 출신 부서의 영향력을 배제하는 부분에 신경 써야 한다.
하지만 가장 핵심적인 관건은 의사결정자가 레드팀의 결과물을 존중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레드팀의 결과물을 형식적 혹은 일회용으로 생각한다면 위기를 예측하고도 대비하지 못할 수 있다. 더욱이 레드팀은 의사결정 과정의 잘못을 지적하는 등 최고결정권자의 자존심 문제로 연결될 공산도 있다.
쓴소리도 겸손하게 받아들여 그 결과를 실행 부서로 이관하는 최고 의사결정권자의 겸허한 용기가 필수적이라는 사실은 자명하다.
세상에 완벽한 기법은 존재하지 않는다. 레드팀 또한 마찬가지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어느 조직이든 조직 편향을 피해야 한다는 것이다. 경영학의 대가인 피터 드러커도 “만장일치는 조직 건강의 위험 신호”라며 “올바른 결정은 반대되는 의견이나 다른 관점의 충돌에서 생성된다”고 조언한다. 레드팀 도입 여부를 떠나, 불확실성이 고조되는 위기 상황일수록 경영자는 자신과 다른 관점의 의견도 겸허히 경청하는 자세로 편향을 극복해 나가는 것이 전제돼야 할 것이다.
김은정 < LG경제연구원 연구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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