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름·대님 떼어내 입기 편하게…캐시미어·패딩 등 신소재 결합
'한복놀이' 즐기는 10~20대 겨냥…신규 브랜드 다양하게 등장
[ 임현우 기자 ] 서울 경복궁에서 최근 열린 ‘신(新)한복 패션쇼’. 고운 하늘빛 한복을 차려입은 남자 모델이 성큼성큼 런웨이를 걸어나왔다. 그런데 이 한복, 우리가 아는 그 한복이 아니었다. 저고리는 캐주얼 재킷에 많이 쓰는 네오프랜 소재였고, 바지에선 대님을 잘라내 발목을 훤히 드러냈다. 모자를 푹 눌러쓰고 운동화를 신는 ‘파격’도 더했다. 30대 신진 한복 디자이너 홍아영 씨의 작품이다. 홍씨는 “조선 《악학궤범》에서 영감을 얻어 ‘음악’과 ‘젊음’을 소재로 디자인했다”며 “세월의 흐름을 반영해 지금 시대에 자연스럽게 녹아드는 한복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한복이 ‘비싸고 불편한 옷’이라는 편견을 깨기 위해 치열하고 화려하게 변신하고 있다. ‘우리옷의 DNA’는 지키면서 현대적 디자인과 신소재를 결합한 신한복이 다양하게 등장하고 있다. 한복에는 절대 쓰지 않던 합성섬유, 스판덱스, 모피 등을 활용하는가 하면 양장 패턴을 과감하게 도입해 입고 벗는 과정을 간편하게 개선하는 추세다.
중견 한복 디자이너 황선태 씨는 캐시미어를 활용해 여유로운 선의 미학을 살린 신한복을 내놨고, 박선옥 씨는 패딩 원단과 가죽 소재를 한복에 접목했다. 서양 의복을 전공한 디자이너 정민경 씨는 저고리와 치마를 응용한 한복 파티드레스를 선보였다. 하늘하늘한 실크 소재에 비즈(beads:구슬 형태 보석)와 꽃 장식을 더해 신비롭고 몽환적인 느낌을 살렸다는 평가를 받았다.
한복 전문업체 돌실나이는 20대 여성을 겨냥한 새 브랜드 ‘꼬마크’를 내놓고 서울 삼청동과 인사동, 전주 한옥마을 등으로 매장을 늘려가고 있다. 저고리와 바지 위에 치마를 겹쳐 입거나 인조 모피를 활용하는 등 개성 있는 디자인으로 주목받고 있다.
파격을 추구하는 신한복이 쏟아지는 건 수요가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인스타그램 같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는 10~20대를 중심으로 한복을 입고 한옥마을을 여행하며 찍은 인증샷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한복을 입고 클럽에 모여 춤추고 즐기는 ‘한복 클럽파티’나 ‘한복 핼러윈데이’도 등장했다. 패션업계 관계자는 “한복을 일종의 놀이문화로 소비하는 젊은 층의 욕구와 맞물려 신한복이 주목받고 있다”고 설명했다.
국내 한복 시장은 연 1조원대 규모로 추산된다. 한복이 결혼식 같은 특별한 날에나 입는 옷으로 입지가 좁아진 탓에 고가의 맞춤한복 시장은 고전하고 있다. 하지만 저렴한 가격에 세련된 디자인을 갖춘 패션한복 시장은 다양한 신규 브랜드가 등장하면서 ‘희망적 신호’를 보이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인터넷 쇼핑몰 옥션에서 여성한복 매출 증가율(전년 대비)은 2013년 -12%를 기록했으나 지난해에는 14%로 돌아섰다.
한복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이런 옷을 한복으로 볼 수 있느냐’에 대해 이견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사실상 끊겨버린 한복에 대한 관심을 되살린다는 측면에서 신한복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한복 특유의 동양미와 구조적 미학은 해외 패션 디자이너들 사이에서도 관심을 끌고 있다. 도나 카란, 클로에, 마르니, 캐롤리나 헤레라 같은 유명 디자이너들은 한복을 재해석한 의상을 패션쇼 무대에 올린 적이 있다. 샤넬도 지난해 서울에서 연 패션쇼에서 한복 디자인을 차용한 옷을 내놓았다.
최정철 한복진흥센터장은 “한복을 입는 것을 어색해하는 인식이 한복을 ‘입는 옷’이 아니라 ‘보는 옷’에 가둬놓고 있다”면서 “한복을 ‘민족의상’에서 분리해 현대 한국인의 취향을 담아낸 ‘패션’으로 진화시키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임현우 기자 tardi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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