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문 물량 납기 어쩌나…2013년 악몽 재연"
현대아산 "개성공단에 320억원 투자했는데…"
[ 안재광/이지수/김보라 기자 ]
개성공단 입주 업체 성화물산의 김철영 대표는 10일 정부의 개성공단 전면 중단 소식을 듣고 망연자실했다. 2013년 약 5개월 동안 개성공단 출입을 못 해 입은 피해를 복구하느라 2년여간 고생했던 기억이 났기 때문이다. 이 회사는 개성공단에서 속옷과 아동복, 양말 등을 생산하고 있다. 생산 물량의 30% 정도를 개성공단에서 처리하고 나머지는 국내와 중국 공장에서 생산 중이다.
김 대표는 “2013년 개성공단 가동 중단 때 납기를 못 맞추거나 클레임(불량)에 걸려 바이어들에 물어준 비용과 설비를 다시 돌릴 때 투입한 비용 등 수억원을 날렸다”며 “작년에 간신히 가동률을 예전 수준으로 올리고 바이어를 뚫어놨는데 다시 이런 일이 생겨 눈앞이 캄캄하다”고 말했다.
◆“주문 물량 납기 차질 우려”
개성공단에는 현재 124개 업체가 입주해 있다. 생산비에서 인건비 비중이 높은 섬유업체가 약 58%로 가장 많다. 기계금속(19%) 전기전자(11%) 화학(7%) 등의 기업도 상당수다. 정부 고위관계자는 “개성공단 가동 전면 중단에 따른 기업들의 피해액은 약 1조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이들 기업 대부분은 개성공단 이외에도 국내와 중국 등지에 생산 라인을 보유 중이지만 공단 전면 중단 조치에 “큰 타격을 입을 것으로 우려된다”고 입을 모았다. 주문받은 물량의 납기를 맞추지 못 할 가능성이 있고 재고 물량은 나중에 판매하기도 어렵기 때문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의류회사 대표는 “개성공단에 투자한 건물과 토지에 대해서는 정부 보상금이 나오겠지만 영업을 못 해 입은 피해는 고스란히 업체가 감당해야 한다”며 “개성공단에서 생산되는 의류 재고는 유행이 지나면 못 쓰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하소연했다. 김철영 대표도 “기업하는 입장에서 공단 전면 중단은 사실상 공장 문을 닫으라는 소리”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입주기업 “피해 최소화 방안 마련해야”
개성공단기업협회는 정부 결정에 반발하며 재고해줄 것을 요청했다. 정기섭 개성공단기업협회장(SNG 대표)은 “정부가 피해를 최소화할 시간도 주지 않고 일방적으로 통보한 것은 부당하다”고 주장했다. 시간적 여유를 주고 통보했다면 원자재와 재고 철수를 통해 피해를 줄일 수 있었을 텐데 연휴 마지막 날 조치를 발표해 피해가 커졌다는 것이다. 정 회장 등 개성공단기업협회 임원 20여명은 이날 오후 2시께 남북회담본부에서 홍용표 통일부 장관과 만나 개성공단 가동 전면 중단 방침을 전달받고 대책을 논의했다.
중소기업중앙회도 논평을 통해 “정부는 124개 입주기업과 5000여개 협력업체의 피해를 최소화할 실질적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며 “북한도 남북경협의 상징인 개성공단의 미래를 살릴 수 있도록 책임감을 갖고 노력해주길 바란다”고 촉구했다.
일부 기업은 반복되는 ‘개성공단 리스크’를 미리 대비해 피해를 줄였다. 시계 및 주얼리 등을 생산하는 로만손의 김기문 회장은 “정부의 조치가 실망스럽기는 하지만 로만손은 개성공단 생산 비중을 크게 낮춘 데다 대체 생산을 할 수 있게 시스템을 갖춰놔 피해가 크지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현대그룹 “대북사업 피해액 2조원”
현대그룹 계열사인 현대아산도 당혹스럽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현대아산은 개성공단 총개발사업자로, 개성공단 내 숙박 및 복합상업시설인 송악프라자, 주유소, 건설 자재 공장 등을 운영하고 있다. 지금까지 총 320억원을 개성공단에 투자했다. 현대아산 관계자는 “비상회의를 소집하는 등 곧 대책 마련에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남북관계가 경색되면서 올해로 8년째 막혀 있는 금강산 관광도 재개를 기대하기 어려워졌다. 금강산 관광이 중단되면서 현대아산의 피해액은 이미 1조원을 넘긴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현대아산 사정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개성공단까지 전면 중단될 경우 개성공단 총개발권과 북한 사회간접자본 건설에 들어간 비용을 포함해 현대아산의 대북사업 관련 피해액은 총 2조원에 달할 것”이라고 말했다.
안재광/이지수/김보라 기자 ahnj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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