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국 치닫는 개성공단] 북한 "40분 안에 다 나가라"…짐싸던 직원들 허둥지둥 쫓겨나

입력 2016-02-11 22:22   수정 2016-02-12 09:03

북한, 군사작전 하듯 개성공단 폐쇄

남측 인원 280명 밤 11시 넘어 모두 귀환
"산처럼 쌓인 완제품 하나도 못 챙겨" 울먹
정부, 공단에 공급되는 전기·용수 차단



[ 이현동 / 김대훈 / 이지수 기자 ] 정부가 개성공단 가동 중단 방침을 밝힌 다음 날인 11일 북한이 기습적으로 공단 내 남측 인원 전원을 추방하고 자산을 동결하는 조치를 했다. 이에 따라 개성공단에서 물품 반출을 준비하던 남측 인원들은 이날 밤늦게 빈손으로 쫓기듯 모두 공단을 빠져나왔다. 이에 따라 개성공단은 영구 폐쇄 순서를 밟을 것으로 전망된다.

북한이 서해 군통신선과 판문점 연락채널을 폐쇄하는 조치를 내리면서 대화채널도 끊겼다. 남북 관계가 1991년 남북기본합의서 채택 이전으로 회귀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남북기본합의서 채택 이전 회귀

당초 이날 오후까지 파주 남북출입사무소(CIQ)를 통한 개성공단 출입은 원활하게 이뤄졌다. 기업들은 정부 방침에 따라 기업당 1~2명과 트럭 1~2대씩을 들여보내 원부자재와 생산품을 빼내는 작업을 벌였다. 12일에도 반출 작업을 하기 위해 이날 밤 일부 인원이 공단에 체류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북한은 오후 4시50분께 갑작스럽게 이들에게 ‘오후 5시30분까지 모두 나가라’고 통보했다. 이후 공단은 대혼란에 휩싸였다. 철수 방침이 각 업체 직원들에게 전달되는 데만 2시간이 넘게 걸렸던 것으로 알려졌다. 기업인들은 중요 문서를 파쇄하고 공장 내 전기 및 가스를 급히 잠갔다.

기업 자산을 동결하고 개인 물품의 반출만을 허용하겠다는 북한 방침에 따라 공장 설비는 물론 완제품을 놔둘 수밖에 없었다. 기업인과 정부 당국자, 공단 지원 인원 등 총 280명은 밤 9시가 넘어서야 공단을 빠져나와 247대의 차량에 나눠 탔고, 밤 11시5분께 파주 남측 CIQ를 통해 귀환할 수 있었다. 정부는 밤 11시53분부터 개성공단과 개성주민들에게 공급되는 전기와 용수를 모두 끊었다.

신발 위탁 가공업체 제이앤제이의 강성호 개성 법인장은 귀환 직후 파주 CIQ에서 기자들과 만나 “완제품이 산처럼 쌓여 있지만 거의 챙기지 못했다”며 “남겨둔 물품 대부분이 임가공 계약이기 때문에 계약 업체에 변상해내야 한다”고 울먹였다. 동우콘트롤 관계자도 “갑자기 통보를 받아 짐을 거의 챙기지 못했다”고 했다. 북측 CIQ를 통과하는 과정에서 큰 갈등은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업체들 “당장 부도날 수도”

북한의 개성공단 남측 인원 추방과 자산 동결 발표를 지켜본 개성공단 입주기업 관계자들은 큰 충격을 받은 모습이다. 입주기업 관계자들은 우리 정부가 철수 시한을 연장해주면 피해를 상당 부분 줄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기 때문에 더 큰 허탈감에 빠졌다.

정기섭 개성공단기업협회장은 이날 서울 여의도 鈒耐蓚泰上談맙【?긴급이사회를 열기 직전 북측의 발표 내용을 접하고 말을 제대로 잇지 못했다. 정 회장은 “개성공단 기업들은 절벽 위에 서게 됐다”며 “정부가 적절한 보상을 하지 않으면 소송도 불사하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개성공단에 입주한 한 의류업체 임원은 “2013년 개성공단 폐쇄 때 피해액이 1조566억원으로 추산됐지만 원자재와 영업권 손실이 빠져 있었다”며 “이번에는 피해가 더 크기 때문에 입주업체들이 ‘멘붕 상태’”라고 전했다.

다른 의류업체 관계자 역시 “완제품을 하나도 못 가져오고 맨몸으로 빠져나오다시피 했다”며 “어렵게 기업을 일궈왔는데 이제 모든 것이 끝났다”고 울분을 토했다. 중소기업중앙회 관계자는 “개성공단 외엔 별도 공장이 없는 100여개의 영세업체가 가장 피해가 클 것”이라며 “당장 이달에 부도 기업이 나올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파주=이현동/김대훈/이지수 기자 gra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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