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계 강타한 '북한 광명성호 쇼크'] '스푸트니크 쇼크'로 수학·과학 교육 다 바꾼 미국

입력 2016-02-12 17:30  

아폴로 계획에 250억달러 투입

"소련에 뒤졌다" 엄청난 충격
케네디 "10년내 인간 달 착륙"
초·중등 기초학문 대대적 강화



[ 이호기 기자 ]
옛 소련(소비에트연방)은 1957년 10월4일 카자흐스탄의 한 사막에서 세계 최초의 인공위성인 스푸트니크 1호를 쏘아올렸다. 이전까지만 해도 과학기술 분야에서 소련을 압도하고 있다고 믿었던 미국의 충격은 대단했다. 미·소 냉전이 한창이던 당시 니키타 흐루쇼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은 “수소폭탄을 실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보유하고 있다”고 장담했다. 미국을 포함한 서방 국가들은 이를 ‘허풍’이라며 코웃음 쳤으나 스푸트니크 1호의 발사 성공으로 이 같은 위협은 현실이 됐다. 핵탄두를 장착한 미사일이 언제든지 미국 본토에 떨어질 수 있다는 공포가 미국 사회를 엄습했다.

미 의회는 정부 대책을 촉구하고 나섰다. 아이젠하워 정부는 1958년 7월 국가항공자문위원회(NACA)를 비롯한 관련 연구소를 통합해 대통령 직속 기구인 항공裡殮?NASA)을 발족했다. 그러나 소련은 1961년 4월 첫 우주비행사인 유리 가가린을 태운 보스토크 1호를 발사해 다시 한번 세상을 놀라게 했다. 그해 1월 취임한 이래 최대 위기를 맞은 존 F 케네디 미국 대통령은 5월 의회 연설에서 “10년 내 인간을 달에 착륙시키겠다”고 선언했다. 유인 달 착륙 프로젝트가 ‘아폴로 계획’이다. NASA는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 덕분에 우주 개발에 박차를 가할 수 있었다. 아폴로 계획에만 총 250억달러의 예산이 투입됐다. 당시 한 해 미 연방 전체 예산의 4% 규모로 현재로 환산하면 1660억달러(약 201조원)에 달한다. 마침내 1969년 7월21일 아폴로 11호를 탄 닐 암스트롱이 달에 첫발을 디뎠다.

이후 미·소 양국은 1972년 5월 불필요한 경쟁을 자제하고 우주 개발에 상호 협력하는 내용의 ‘미·소 우주협력협정’을 체결했다. 이를 바탕으로 1975년 7월 미국 아폴로 18호와 소련 소유즈 19호가 우주 공간에서 첫 도킹에 성공했다.

‘스푸트니크 쇼크’는 미국의 수학·과학 교육체계까지 바꿔놨다는 분석도 있다. 당시 초·중등 교육은 어려운 기초 학문보다 어린이의 창의성과 흥미를 중시하는 경향이 강했다. 제롬 브루너 하버드대 교수 등 교육학자들은 이 같은 분위기가 기초과학 발전에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이들의 주장에 따라 미국은 초·중등학교에서 수학·과학 교육을 대폭 강화하는 쪽으로 교육 과정을 개편했다.

이호기 기자 hgl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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