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의 발전은 상속·증여제도 발달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상속과 증여는 출생에 따라 부(富)가 세습된다는 점에서 비난받을 소지가 있다. 하지만 또 다른 시각에서 보면 상속·증여는 자식에게 더 많은 것을 물려주고자 하는 부모의 마음을 세금제도와 연계해 더 열심히 경제활동을 하도록 유도하는 긍정적인 효과가 있다.
물론 부모라고 무조건 자식에게 이득이 되는 재산만 물려주는 것은 아니다. 자식에게 물려줄 재산을 만드느라 절대 물려주지 말아야 할 부담을 지게 하는 경우도 있다. 그 첫 번째가 바로 노후생활비다. 100세 시대에 은퇴 후 약 40년을 사는 데 드는 생활비 준비는 필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 보험개발원 조사에 따르면 노후에 필요한 최소 생활비(월 196만원) 마련에 어려움을 느끼는 은퇴 예정자가 100명 중 무려 84명에 달한다.
두 번째로 부모가 자녀에게 물려주지 말아야 할 것은 의료·간병비다. 흔히 은퇴하면 소득이 감소하므로 자연스럽게 생활비도 줄어들 것으로 착각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늘어나는 의료간병비가 소득 감소에 따라 줄어든 소비를 초과하는 경우가 많다.
결국 부모가 제대로 노후생활비와 의료비를 준비하지 않으면 자식들에게 재산을 물려주는 게 큰 의미가 없다. 이런 실수를 범하지 않으려면 자식에게 물려줄 재산을 챙기기에 앞서 자신이 처한 장수 리스크와 건강 리스크에 대비해야 한다. 연금과 같은 평생소득은 이제 노후준비의 필수 목록이다. 자신의 은퇴 전 소비 수준을 감안해 적정한 평생소득을 유지하려면 국민연금 외에도 퇴직연금, 개인연금 등을 함께 준비하는 것이 현명하다. 국가에서도 이를 권장하기 위해 연금저축과 퇴직연금에 납입한 금액이 연 700만원 이하인 경우 세액공제 혜택을 주고 있으니 적극 활용해보자.
이런 평생소득과 함께 언제 발생할지 모르는 의료비를 보장할 수 있는 상품도 준비해둬야 한다. 연금으로는 큰 수술 등으로 인한 고액의 병원비를 감당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더 저렴한 보험료로 가입하고 싶다면 조금이라도 젊었을 때 자신의 건강상태, 생활습관 등을 고려한 보장상품을 선택해야 한다.
최소한 노후를 대비한 앞가림은 끝내고 난 뒤 자식에게 물려줄 재원을 만드는 것이 현명한 상속의 순서가 아닐까.
최은아 < 삼성생명 은퇴연구소 책임연구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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