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운동권 패러다임에 사로잡힌 경제

입력 2016-02-16 17:30   수정 2016-02-17 05:39

'3만달러 벽' 넘지 못하는 한국 경제
기업 발목 잡는 정치와 과잉 규제 탓
시장친화 개혁해 경쟁력 제고 도와야

조명현 < 고려대 교수·경영학 chom@korea.ac.kr >



[ 김재일 기자 ] 한국 기업의 글로벌 경쟁력에 빨간불이 켜졌다는 소리가 부쩍 많이 들린다. 이런 부정적 인식의 출발점은 오랫동안 회자된 ‘넛 크래커’론이다. 중국 기업은 쫓아오고 일본 기업은 앞서가는데 한국 기업은 중간에 끼어서 서서히 경쟁력을 잃어 가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엔 한술 더 떠 중국 기업이 조선, 철강, 석유화학, 휴대폰 등의 분야에서 이미 한국 기업을 따라잡았고 다른 분야도 시간문제라고 한다. 상황이 이러니 현재가 단군 이래 가장 경제적으로 유복한 시절이고 앞으로는 내려갈 일만 남았다는 이야기마저 들린다.

그럼 과연 무엇이 한국 기업들의 글로벌 경쟁력을 약화시키고 있는가?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크게 한국 기업을 둘러싼 환경적 요인과 한국 기업 내부적 요인으로 나눌 수 있을 것이다. 첫째, 환경적 요인으로는 기업의 발목을 잡는 정치와 규제가 가장 대표적일 것이다. 얼마 전 친분 있는 미국 월스트리트의 유명 인사 한 명에게서 이런 말을 들었다. “세?여러 나라를 가보고 느낀 것은 결국 어떤 국가의 경제가 한 단계 도약하느냐 못하느냐는 당시 그 나라의 정치 수준에 달려 있다는 점이었다.” 이 말은 왜 한국 경제가 국민소득 3만달러에 안착하지 못하고 오히려 추락 가능성이 이야기되는가를 함축적으로 설명해 준다.

한국의 낮은 정치 수준이 야기하는 직접적인 폐해는 한국 기업들의 글로벌 경쟁력을 갉아먹는 규제의 양산이다. 이런 규제와 입법이 도처에 널려 있고 정말 황당한 것들도 많다. 대표적으로 최근에 이슈가 되고 있는 면세점 관련 ‘5년 한시법’을 들 수 있다. 정부가 5년마다 심사를 통해서 면세점 사업자를 선정하는 법인데, 최고 수준의 글로벌 경쟁력을 갖고 있는 한국 면세점 사업자의 경쟁력을 약화시키는 악법이다. 재벌 타파라는 1980년대 운동권 패러다임에 사로잡힌 시대착오적 정치권이 1분 만에 통과시켰다.

사업권을 언제 잃을지 모르는데 누가 장기적 관점에서 관련 투자를 하고 고용을 하겠는가? 어떤 업체들이 5년 뒤 무용지물이 될지도 모르는 매장에 거액을 들여 투자해 입점하겠는가? 한국과 경쟁 관계에 있는 중국 등의 국가에서는 지금 인수합병(M&A)을 통해 면세점 사업자들이 덩치와 경쟁력을 키우고 있는데, 한국 사업자들은 정부와 정치권 눈치만 보며 생존을 걱정하고 있다. 한국 사업자들의 경쟁력이 약화되고 사업장에서 고용 불안이 생기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잘못된 규제들을 하루빨리 시장친화적으로 고쳐 한국 기업의 글로벌 경쟁력 약화를 막아야 한다. 예를 들어 면세점 ‘5년 한시법’은 관세법을 즉시 개정해서 원하는 사업자는 모두 진입할 수 있도록 허가제가 아닌 등록제로 바꿔야 한다. 또 모호한 선정 기준으로 인해 심사에서 탈락한 면세사업자들에게도 재기의 기회를 주는 것이 공정할 것이다.

둘째, 한국 기업의 글로벌 경쟁력을 약화시키고 있는 기업 자체의 요인으로는 빠른 추격자(패스트 팔로어·fast follower) 전략으로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한 기업들이 기존 시장의 확대와 방어에 주력하다가 선도형 기업(퍼스트 무버·first mover)으로 도약하는 데 실기한 점을 들 수 있을 것이다. 기술 발전과 혁신이 빠른 속도로 이뤄지는 현재의 기업 환경에서 선도 기업으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개방성에 바탕을 둔 강력한 파트너십이나 M&A를 통한 핵심역량의 확보가 필수적이지만 한국 기업들은 폐쇄된 내부화를 통한 추격형 연구개발(R&D) 전략에 더 치중해 왔다.

중국 기업들의 추격이 턱밑까지 차온 현 상황에서 과거의 관성에 따른 빠른 추격자 전략으로는 더 이상 경쟁력을 높일 수 없다. 개방성에 바탕을 둔 선도형 R&D 전략과 유연한 조직을 만드는 데 노력을 집중해야 할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최근 삼성전자의 전략적 전환은 고무적이다.

이제부터라도 정치권, 정부, 기업 모두가 한국 기업의 글로벌 경쟁력 제고를 위해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 세대는 물론 후손들에게 경제적으로 더 나은 미래는 없을 것이다.

조명현 < 고려대 교수·경영학 chom@korea.ac.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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