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희수 논설위원 mhs@hankyung.com
[ 문희수 기자 ] 글로벌 경제가 뒤숭숭하다. 주요 국가마다 주가와 환율이 연일 요동친다. 저(低)유가, 베네수엘라 등 자원 신흥국들의 위기, 중국 경착륙, 미국 경기 후퇴 조짐, 유럽 은행들의 도산 우려 등 온갖 악재들만 부각된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2011년 남유럽 재정위기에 이어 3차 위기설이 거론된다.
그렇지만 위기의 진단과 처방은 제각각이다. 저유가만 해도 외신이 전하는 일부 전문가들의 언급은 헷갈리기만 한다. 국제 유가가 올라야 세계 경제가 살아날 것이란 소리까지 들린다. 유가가 오르면 주요 증시가 상승하는 것을 두고 이런 말을 하는 모양이지만 엉터리 주장이다. 원인과 결과를 바꿔 말하고 있다. 이런 식이면 국제 유가가 배럴당 10달러대로 지금보다 훨씬 낮았던 1990년대의 세계적 호황을 설명할 길이 없다.
마이너스 금리도 그렇다. 돈을 더 풀어 투자와 소비를 끌어올려 경제를 살린다는 것이지만 유럽도 일본도 아무 효과가 없다. 오히려 유럽에선 주요 은행들이 수익성 악화로 도산 위기에 처했고, 일본은 주가 급락과 엔화 가치 급등으로 벌써 실패했다는 비판이 쏟아진 ? 그런데도 지금 같은 마이너스 금리로는 안 되니 금리를 더 내리라는 주문이 잇따른다. 실제 유럽중앙은행(ECB)과 일본은행(BOJ)이 내달 금리를 추가 인하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심지어 미국 중앙은행(Fed)이 거꾸로 다시 금리를 낮춰야 한다는 소리도 들린다.
지금의 혼돈은 돈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돈이 너무 많아서다. 조지 소로스 등 헤지펀드가 세계 최대 외환보유액을 가진 중국의 위안화 추가 절하에 대놓고 베팅하는 것은 풍부한 유동성이 뒷받침되고 있기에 가능하다. 엔화 가치가 되레 급등하는 비정상적인 흐름 역시 유동성 과잉의 산물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마이너스 금리를 더 내리면 상황을 더 악화시킬 가능성이 크다.
노벨 경제학 수상자인 마틴 펠트스타인 하버드대 교수는 재정정책으로 수요를 진작해야 할 것을 통화정책으로 풀려고 한다고 비판한다. 그보다는 국가부채 급증으로 재정을 늘릴 여력이 없어 돈을 푸는 통화정책에 기대왔지만, 끝내 한계에 온 것이라고 보는 게 옳을 것이다. 정부든 중앙은행이든 경제를 살리지 못한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있다.
세계적으로 구조조정이 없었다는 것을 상기하게 된다. 미국은 그래도 셰일혁명으로 오일업체 중심으로 구조조정을 했지만, 일본 유럽 중국은 없었다. 돈이 넘쳐 한계기업을 정리하지 못한 것이다. 한국도 다르지 않다. 번 돈으로 이자를 갚지 못하는 한계기업이 3000개를 넘어 돈을 풀어봐야 한계기업만 연명시킬 뿐, 정작 필요한 곳으로 흘러가지 않는다는 게 한국은행의 분석이다. 통화승수와 통화유통속도가 사상최저치로 계속 떨어지는 것도 그래서다.
한국 입장에서 보면 저유가, 저금리, 원화 가치 하락 등 1980년대 3저 호황 때와 같은 상황이다. 그런데도 경제가 살아나지 않는 것은 결국 기업들이 살아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아베노믹스가 위기에 처한 이유도 다르지 않다. 그런데도 정치권은 4월 총선을 앞두고 다시 경제민주화로 역(逆)주행할 태세다. 경제를 살려야 한다면서 경제를 망치고 있다. 엉터리 진단, 엉터리 처방이 위기를 키운다.
문희수 논설위원 mh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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