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그리샴 원작의 ‘펠리칸 브리프’는 1993년 영화화돼 큰 관심을 모았다. 미국 연방대법관들이 잇따라 살해되고, 그 이면의 엄청난 음모를 법대생 다비(줄리아 로버츠)가 파헤친다는 내용이다. 새삼 이 영화를 떠올린 것은 최근 앤터닌 스캘리아 미 연방대법관이 갑작스런 심장마비로 타계한 뒤 음모론이 돌고 있기 때문이다. 부검 없이 전화로 사망선고가 내려진 점 등이 근거다. 물론 그럴 리야 없겠지만 발표된 것과 다른 사실이 있다면 엄청난 스캔들이 될 것이다
연방대법원(Supreme Court)은 워싱턴DC 1번가에 있다. ‘견제와 균형’이란 삼권분립의 상징이다. 연방대법관은 건국 초기 6명으로 출발했지만 1869년이래 9명이다. 230여년간 100여명만 거쳐간 영예로운 자리다. 영국처럼 호칭부터 ‘Justice(정의)’다. 대법원장은 ‘Chief Justice’로 부른다.
연방대법관은 대통령이 지명하고 상원의 청문회 및 동의를 거쳐 임명된다. 사망, 자진 사퇴 외엔 종신직이다. 탄핵·기소도 가능하지만 그런 사례가 없다. 상고허가를 받아 넘어온 연간 100여건의 사건만 재판한다. 한국 대법관들이 사건의 홍수에 치이고, 임기 6년(연 ?가능) 뒤에 전관예우 구설에 오르는 것과는 천양지차다.
연방대법원은 미국 사회가 극심한 혼란에 빠질 때마다 사려 깊은 판결문으로 중심을 잡아왔다. 워터게이트 사건에서 ‘대통령도 법 위에 있지 않다’고 전제한 것이 대표적이다. 표현의 자유, 낙태, 총기규제 등 난제들도 마찬가지였다.
대법관들의 논리는 무릎을 치게 할 때가 많다. “외설을 정의할 순 없지만 보면 안다”(포터 스튜어트), “편의라는 새로운 권리를 발명하지 말라”(윌리엄 랜퀴스트), “극장에서 ‘불이야’라고 거짓 소리칠 자유까지 인정할 순 없다”(올리버 웬델 홈스), “모든 논쟁 뒤에는 누군가의 무지함이 있다”(루이스 브랜다이스)….
하지만 오점도 없지 않다. 1856년 노예제를 용인한 것은 ‘연방대법원의 자해행위’로 남아있다. 정치 성향에 따라 5 대 4로 갈리는 판결이 늘어나고 있다. 이 때문에 스캘리아 대법관의 타계가 미국에서 초미의 관심사다. 후임자에 따라 보수 대 진보의 5 대 4 구도가 뒤집힐 가능성도 있어서다. 오바마 대통령은 임기안에 임명할 태세이고, 공화당 대선주자들은 차기 대통령에게 넘기라고 주장한다.
스캘리아 대법관은 소수의견을 자주 낸 것으로도 유명했다. ‘언어의 연금술사’란 별명을 얻을 만큼 아름다운 판결문도 많이 남겼다. 사법제도 역시 그 나라 수준을 보여준다.
오형규 논설위원 oh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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