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대왕이 노비의 남편에게도 출산휴가 주라고 지시했다
부정부패 수사는 영명한 고양이가 먹이를 취하듯 신속하게 하라
'그리스신화 정의의 여신 디케' 등 연설·회의서 예화·한자어 인용
일반 연설보다 오래 기억에 남아
[ 고윤상 기자 ] 김수남 검찰총장은 연설 또는 회의 석상에서 예화나 한자성어 등을 자주 동원한다. 취임 뒤 3개월 가까이 지났지만 인사말 등에서 예화를 빼놓은 경우가 거의 없다. 한 검찰 관계자는 “연설 내용은 기억이 잘 안 나는데 총장이 인용한 예화나 한자어는 기억날 때가 많다”고 말했다.
김 총장은 지난 15일 열린 ‘20대 총선 대비 전국 공안부장검사 회의’에서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정의의 여신 디케를 언급했다. 디케는 천으로 눈을 가린 채 한 손에는 저울을, 한 손에는 칼을 들고 있다. 당사자의 신분이나 지위에 관계없이 저지른 일만으로 공명정대하게 심판한다는 뜻이다. 김 총장은 “선입견을 버리기 위해 눈을 가린 정의의 여신 디케처럼 수사 대상자의 소속 정당이나 당락 여부, 지위고하를 떠나 범죄행위 그 자체만으로 판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앞서 지난 3일 확대간부회의에서는 세종대왕을 언급했다. 그는 “세종대왕이 노비의 남편에게도 출산휴가를 주라고 지시했다”며 “애민정신 없이 어떻게 이런 혁신이 가능하겠느냐”고 말했다. 취임사에서는 ‘레미제라블의 장발장’, ‘영명한 고양이’ 비유도 등장했다. 김기동 부패범죄특별수사단장은 지난달 김 총장의 ‘영명한 고양이’ 발언을 언급하며 “정성을 다해 충분히 수사하되 시기를 놓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지침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풀이했다.
김 총장의 연설에는 한자어도 자주 등장한다. 김 총장은 지난달 검사 전입식에서 ‘검찰’의 첫글자인 ‘檢’의 어원에 대해 설명했다. 그는 “‘나무 목(木)’ 변에 ‘여러 첨(僉)’자가 결합된 ‘살펴볼 검(檢)’ 자는 옛 관청에서 여러 가지 재물을 보관한 나무 상자에 혹시 없어진 것은 없는지 살펴보는 데서 유래했다”며 “실체적 진실을 찾기 위해 적극적으로 증거를 수집하는 ‘검사다운 검사’가 돼 달라”고 주문했다. 올해 신년사에서는 사요무실(事要務實:일에는 형식보다 실질이 중요)과 무실역행(務實力行:참되고 실속 있도록 힘써 실행함)을 언급하며 검찰의 수사력 강화를 강조했다. 한 검찰 관계자는 “김 총장은 대검 중수3과장과 서울중앙지검 3차장을 거치며 비자금 특별수사, 대기업 주가조작 사건, 미네르바 사건 등을 지휘해 특수수사에서 잔뼈가 굵었다”며 “자나 깨나 수사력 강화를 강조하는 것도 자신의 경험을 통한 조언 같다”고 말했다. 다른 검찰 관계자는 “총장 자리에 가면 책상에 항상 책이 한 권씩 놓여있다”며 “연설 때 쓰는 예화나 한자어는 평소 책을 읽으며 생각한 것 같다”고 했다.
전임 김진태 총장은 훈장 스타일로 후배들을 이끈 것으로 알려졌다. ‘정성을 다하면 문제가 해결된다’는 지론에 따라 세세한 것까지 챙길 것을 독려했다고 한다. 검사장 출신인 한 변호사는 “김 전 총장과 함께 일하면서 많은 것을 배웠다”고 술회했다.
김 총장은 검사가 되기 전 3년가량 판사로 일했다. 검사와 변호인은 물론 법정의 방청객까지 이해할 수 있도록 쉬운 예화를 들어가며 재판을 이끈 경험이 지금의 훈시 등 스타일에 반영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김 총장이 전임 총장과 차별화된 리더십으로 검찰의 역량을 어떻게 결집해 나갈지 주목된다.
고윤상 기자 ky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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