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권인구 200만·도장 4000곳…'가라테 짝퉁' 소리는 옛말
태권도 선수가 TV광고 톱모델
삶의 규범 가르치는 대안교육…지덕체 강조하는 무도 일깨워
K팝과 어울려 한글배우기 열풍…삼성·CJ 등 후원 줄이어
[ 유정우 기자 ] 지구촌 구석구석을 파고드는 ‘원조 한류’의 기세가 무섭다. K팝, K푸드를 넘어서는 글로벌 태권 열풍이다. 세계 최초의 프로태권도 리그(멕시코)가 인기 스포츠로 떠오르는가 하면, 초·중·고교 정식과목으로 채택하려는 움직임(폴란드)까지 일고 있다. 지덕체(智德體)를 강조하는 태권철학과 가족 중심의 현지 문화가 시너지를 일으킨 ‘태권 신드롬’이다. ‘코리아 프리미엄’의 핵으로 떠오르고 있는 글로벌 태권열풍의 현장을 가봤다.
“재패니즈(일본인) 태권도 말인가요?”
지난 1일 멕시코의 멕시코시티 시내 소칼로 광장. 한 시민에게 “가라테를 아느냐”고 묻자 단박에 이런 답변이 돌아왔다. 1970년대 ‘코리안 가라테’로 일본 가라테의 ‘짝퉁’ 취급을 받던 태권도가 멕시코의 국민 스포츠로 자리잡으면서 생긴 변화다. 멕시코 전역 4000여곳에서 성업 중인 태권도장에선 한국어 구령에 K 价?흘러나오는 풍경이 흔하다. 멕시코시티에서 만난 태권도 사범 아드리안 곤살레스는 “멕시코에선 태권도 선수가 TV광고의 톱모델이 될 정도로 태권도인의 위상이 높다”며 자랑스러워했다.
◆문대원 사범 제자만 5만여명
수련자가 200만명에 달하는 멕시코 태권도의 인기 비결은 생활 속까지 깊이 파고든 독특한 수련체계 덕분이다. 대다수 태권도장이 ‘무도(武道) 정신’과 ‘지덕체’를 강조하면서 삶의 규범을 가르치는 일종의 대안교육기관으로 자리잡은 것이다. 수련 과정이 엄격하고 까다롭다 보니 태권도 자체가 ‘명예’의 상징처럼 됐다.
단증을 따려면 19세 미만 학생은 학교 성적이 평균 80점 이상 돼야 한다. 성인은 태권도의 태동, 태극기와 구령(한글) 등은 물론 한국 역사를 주제로 논문을 제출해 심사를 통과해야 자격을 준다.
이런 제도가 정착한 데는 ‘멕시코 태권도의 창시자’로 불리는 문대원 사범(73)의 역할이 컸다. 그에게 배운 유단자가 전체 멕시코 유단자(10만여명)의 절반가량인 5만여명. 태권도 수련을 통해 문제아가 모범적인 사회인으로 바뀌는 사례가 잇따르면서 태권도와 태권인에 대한 굳건한 신뢰가 쌓였다.
문 사범은 “태권도는 세계인이 공유하는 한국의 문화적 유산”이라며 “태권도에 내포된 홍익인간의 정신과 우리 무예의 우수성을 알려 뿌리를 튼튼히 하는 게 100년 뒤 태권도의 가치를 높이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우 ??구령에 ‘빅뱅’ 음악까지
태권도의 사회·문화적 위상이 높아지면서 K팝과 한식, 한글 등과 결합한 ‘코리아 프리미엄’도 커지고 있다. 한국국제교류재단 조사에 따르면 현재 멕시코에서 K팝을 즐기는 인구는 약 15만명. 5년 새 5배가량 늘었다. 태권 수련자의 90% 이상이 10~20대라는 점도 K팝과 태권도의 결합이 더 큰 폭발력을 가져올 것이란 기대를 품게 하는 대목이다.
더욱이 ‘발차기’ ‘지르기’ 등 한국어 수련 구호는 K팝과 어우러져 한글 배우기 열풍에도 한몫하고 있다. 올해 멕시코의 한국문화원이 운영하는 세종학당의 한국어 강좌에는 정원 650명에 1300여명이 몰렸다. 지난해보다 지원자가 두 배가량 늘었다.
장치영 주멕시코 한국문화원장은 “태권도의 위상이 멕시코의 국민 스포츠처럼 높아지면서 한국 문화 전반으로 관심이 확대되고 있다”며 “최근 K팝 열풍에 힘입어 한글을 배우려는 젊은 층이 급증하고 있는 만큼 K팝과 태권도, 한글과 한복(패션) 등 상호 시너지를 낼 수 있는 다양한 융합 콘텐츠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고 말했다.
◆TK 프로리그 ‘인기몰이’
종주국 한국을 따라잡을 정도로 성장한 ‘경기력’도 열풍에 힘을 보탰다. 멕시코는 1975년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제1회 태권도세계선수권대회에 출전해 종합 3위를 기록한 이후 각종 국제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올렸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선 사상 처음으로 금메달 2개를 획득해 전국적인 태권도 열풍을 태동시켰다. 각종 CF의 주인공을 태권도 선수들이 도맡았을 정도다.
프로 리그도 인기다. 세계 최초로 2011년부터 ‘TK(Taek-Kwon)5’란 이름으로 열리고 있는 멕시코 프로태권도 리그는 6명이 한 팀을 이뤄 전자호구제가 아닌 판정제로 승부를 가린다. 접촉만 하면 점수를 얻는 전자호구제 때문에 ‘발 펜싱’이란 지적을 받고 있는 올림픽 태권도와 달리 박진감이 높아 인기다. 최근에는 삼성과 CJ 등 현지에 진출한 한국 기업들의 후원이 줄을 이으면서 더욱 활기를 띠고 있다.
한국인 지도자에 대한 선호도도 높다. 2010년부터 세계태권도평화봉사재단(총재 이중근)을 통해 매년 4명씩 봉사단원이 파견됐는데 이 가운데 3명이 현지 사범으로 정착했다. 그중 임대현 씨(32)는 올해로 3년째 멕시코 베라크루스주 태권도 대표팀 코치로 활약 중이다. 지난해 11월 파견된 이혜림 씨(24)도 봉사활동 중 ‘러브콜’을 받아 베라크루스체육회에 취업했다.
멕시코시티·베라크루스=유정우 기자 seeyou@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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