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의 주인은 소비자
상품 구매는 투표 행위와 같아…소비자들 '1원1표'로 의사 표시
기업의 성장·퇴출 등 운명 좌우
사유재산제 흔들면 안돼
'소유의 평등도 경제민주화'란 주장, 재산 빼앗아 분배하자는 의미
전체주의 국가와 다를 바 없어
권혁철 < 자유경제원 자유기업센터 소장 >
“경제민주화는 불평등을 완화하고 경제 참여의 대등한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더 큰 경제 성장의 시대를 열어줄 열쇠가 될 것입니다.” 지난 11일 박원순 서울시장이 ‘경제민주화 특별시 선언식’에서 한 말이다. 2012년 대선 때 등장한 경제민주화가 한국의 정치권과 사회에서 다시금 뜨거운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오는 4월 20대 총선을 앞두고서다. 박 시장은 서울시의 모든 정책수단을 동원해 경제민주화를 구현하겠다고 밝혔고, ‘경제민주화의 전도사’로 불리는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대표는 재벌개혁 등 구체적 공약을 다듬고 있다고 한다. 국민의당의 이른바 ‘창당 1호’ 법안들도 공정성장, 격차해소 등 경제 适澧?주장으로 가득하다. 이에 질세라 원유철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국회 본회의장에서의 교섭단체대표 연설에서 경제민주화를 총 9회나 언급했다.
이렇듯 여야 모두 경제민주화가 마치 우리 사회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만병통치약이라도 되는 양 외치는 것은 표를 의식해서일 것이다. 경제민주화가 유권자의 표를 얻을 수 있는 좋은 소재라고 보기 때문이다. 하지만 경제민주화라는 용어는 경제학 교과서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으며, 실체가 전혀 없는 허상일 뿐이다.
경제민주화는 다분히 정치적 용어이며, 정부의 공권력을 이용해 기업, 특히 대기업의 활동을 통제하겠다는 것이 핵심이다. 그 결과는 기업가 정신의 마비와 경제의 퇴보일 것이다. 경제민주화란 말 그대로 ‘경제+민주주의화’를 뜻한다. 다시 말해 경제영역에 정치용어인 민주주의를 접목한 것이다.
이 말을 그대로 풀어보면 이런 의미가 있다. 민주주의는 국민이 주인이라는 뜻이고, 민주주의의 기본은 1인1표 원칙에 따라 자신의 의사를 표명하는 것이며, 다수의 득표를 하는 자가 승리하게 돼 있다. 이런 민주주의 원칙을 경제에 접목해보자.
경제에서는 소비자가 주인이다. 그리고 주인인 이 소비자들은 시장에서 1인1표가 아닌 1원1표의 방식으로 자신의 의사를 표명한다. 자신이 갖고 싶어 하는 상품을 구매하는 행위가 곧 투표행위인 셈이다. 이런 소비행위를 통해 소비자들은 매일매일 어떤 기업이 우수한 기업이고, 어떤 기업의 상품과 서비스가 확대돼야 하는지, 또 어떤 기업은 퇴출돼야 하는지를 투표하고 있는 것이다. 다른 무엇보다도 소비자주권이 우선시되고, 주인인 소비자 뜻에 따라 결정이 이뤄지는 것이 곧 경제민주화라고 할 수 있다. 이렇듯 경제민주화가 소비자주권의 강화라는 의미라면 문제될 것이 없다.
그런데 현재 한국에서 경제민주화를 주장하는 사람 대부분은 소비자주권 강화의 경제민주화가 아닌 다른 경제민주화를 내세우고 있다. 몇 가지 버전이 있지만, 간략하게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우선, 노동자가 기업의 주인이 되고 이들이 민주적 방식으로 기업 경영을 하는 것이 경제민주화라는 주장이다. 즉, 한 기업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이 기업을 공동으로 소유하고 기업 운영과 관련한 모든 결정은 이 기업을 공동으로 소유하고 있는 노동자들이 1인1표의 방식에 따라 이뤄지도록 하는 것이다. 이것이 이른바 ‘자치기업(self governing enterprise)’ 버전이다. 이와 비슷한 주장으로는 “사장을 노동자가 선출해야 한다. 주식회사는 원래 주인이 없는 기업이므로 얼마든지 노동자 또는 종업원들이 경영권의 주체일 수 있으며 스스로 사장을 선출할 수 있다”는 주장도 있다.
자치기업 버전은 수십 년 전 동유럽의 유고슬라비아에서 시행됐다가 실패한 실험의 복사판이다. 실패한 가장 큰 원인은 투자 부진이었고, 이 투자 부진을 일으킨 근본 원인은 바로 자치기업이라고 하는 제도 자체에 있었다. 한 기업이 경영을 잘해서 이익이 발생했고, 이 이익을 축적했다가 투자해 새로운 기업을 하나 세웠다고 가정해보자. 이렇게 해서 새로 설립된 기업의 주인은 누구인가? 자치기업 이념에 따르면 해당 기업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주인이 된다. 즉, 이 기업을 설립한 기업의 노동자들이 주인이 아니라 새로 설립된 기업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주인이 된다는 말이다. 투자한 기업의 노동자들은 주인의 자리를 빼앗기는 대신 통상적인 이자율을 얻는 것에 만족해야만 한다. 새로운 투자를 할 이유가 있을까?
또 현재 자신이 근무하는 기업을 키우기 위해 재투자한다고 할 경우도 마찬가지 문제에 부딪힌다. 재투자를 해 기업이 확대되고 이에 필요한 새 노동자가 들어오게 되면 새 노동자 역시 이 기업의 주인이 된다. 따라서 기존 노동자와 새 노동자가 차별 없이 이익배당 등 모든 것을 공동으로 나눠야 한다. 기업이 커져 새 노동자를 많이 채용할수록 기존 노동자의 몫이 줄어들 가능성도 커진다. 기업의 주인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기존 노동자들이 기업을 키우고 새 노동자를 고용할 유인이 사라져버린 것이다. 자치기업 실험은 그래서 철저하게 실패했다.
또 다른 버전은 경제민주화를 좀 더 광범위하게 보는 것으로 경제적 평등을 구현하는 것이 경제민주화라는 주장이다. 경제적 평등은 기회의 평등, 분배의 평등, 경영의사결정 참여의 평등, 소유의 평등을 말하며, 여기서 핵심은 바로 소유의 평등이라고 한다. 기업들의 자유로운 경쟁과 가격기구에 의한 자원 배분이라는 시장경제의 틀은 유지하지만, 소수 대자본가들이 기업의 의사결정은 물론 사회의 의사결정까지 좌지우지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소유의 평등이 이뤄져야만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생각해 봐야 할 것은 소유의 평등이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가다. 소유의 평등은 한국의 근본원칙 중 하나인 사유재산제도와는 절대 같이 갈 수 없다. 또 자유민주주의 국가와도 절대로 양립할 수 없다. 한국에 존재하는 모든 재산과 재화는 개인이든 단체든 혹은 국가든 소유주가 존재한다. 소유의 평등을 이루기 위해서는 이 모든 재산과 재화를 빼앗아서 다시 분배해야만 한다. 그렇게 평등하게 분배한다고 하더라도 시간이 지나면 부의 불평등은 또다시 발생할 것이고, 그러면 또다시 모두 빼앗아 다시 분배하는 과정을 반복해야 한다. 사람들의 재산을 강제로 빼앗아 분배하고 또다시 빼앗아 분배할 수 있는 국가는 이미 자유민주주의 국가가 아니다. 이런 국가는 전체주의 국가다. 따라서 경제민주화는 전체주의 국가로 가는 길을 닦는 것과 다를 바 없다.
■ 헌법 '경제민주화' 취지는 민간 주도의 효율성 극대화
‘경제민주화’ 조항이 들어간 1987년 헌법 개정 당시 국회 헌법개정안 기초소위원회 위원장을 지낸 현경대 전 국회의원의 설명에 따르면 본래 경제민주화는 정부 주도에서 민간 주도로의 전환을 의미했다. 즉 정부, 기업, 가계라는 경제주체 가운데 당시까지 정부 주도 운용에 치우쳤던 것을 기업과 가계라고 하는 민간부문 주도로 전환해 효율성을 극대화하고자 한 것이다. 시장과 기업에 대한 규제를 풀고, 기업과 가계의 선택할 자유를 한껏 풀어주자는 취지다. 그런데 작금의 경제민주화 핵심은 소비자주권을 부정하고, 기업활동에 대해 정부 규제와 통제를 강화하겠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대형마트나 기업형슈퍼마켓(SSM)이 성업을 이룬다고 하는 것은 곧 소비자들이 재래시장이나 골목상권이 아닌 대형마트나 SSM에서 구매하기를 원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정치권과 정부는 재래시장과 동네 슈퍼마켓을 살린다는 명분으로 대형마트와 SSM의 진출을 제한하고, 영업시간도 통제하면서 소비자주권을 짓밟고 있 ? 대기업의 출자총액을 제한하고 순환출자를 금지하며 중소기업 적합업종제도를 도입하고 일감몰아주기로 통제하는 등 민간기업의 활동에 촘촘한 족쇄를 채우고자 한다.
이런 것들이 지향하는 바는 경제적 평등이라는 평등주의 이념의 실현이다.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든 결과는 같다. 경제민주화 과정이 진행되면 진행될수록 대기업뿐만 아니라 기업 전체에 대한 규제도 강화될 것이다. 정치권에서는 대기업과 중소기업을 가르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중견기업과 영세 소기업을 다시 갈라 소기업 보호를 명분으로 중견기업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고 있다.
나아가 정부는 이제 개인의 일상생활에까지 규제의 범위를 확대하려 들 것이다. 경제민주화의 이름으로, 골목상권을 살린다는 명분으로 소비자의 소비방식을 규제하는 것은 그 전초전에 불과하다. 소비자주권 강화와 민간 주도의 경제운용이라는 지향점을 갖지 않는 경제민주화는 공생, 상생, 동반성장 등 그 어떤 미사여구를 붙인다 하더라도 결국엔 전체주의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권혁철 < 자유경제원 자유기업센터 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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