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생조류-환경부, 가축-농림부, 가공육-식약처가 나눠 맡아
연구 총괄할 컨트롤 타워 부재
해외 발생 바이러스 수집 금지…시설 갖추고도 연구 못해
신종바이러스 전문가도 태부족
[ 박근태 기자 ] 지난해 5월 낙타에서 유래한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가 국내에서 발생하면서 한국은 두 번째로 많은 환자가 발병한 나라라는 오명을 뒤집어썼다. 최근에는 이집트숲모기가 전파하는 지카 바이러스가 중남미를 중심으로 확산하면서 보건당국에 비상이 걸렸다. 정부는 치명적인 인수공통감염병을 차단하기 위해 여러 부처가 참여하는 공동 연구를 추진하고 있다. 김범태 한국화학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지난 18일 서울 서초구 엘타워에서 열린 ‘인수공통감염병 다부처 공동기획 공청회’에서 “메르스, 지카 바이러스 등 신종 전염병이 급증하고 있지만, 국내 연구와 환경은 여전히 미흡하다”고 지적했다.
◆7100억원 쏟아붓고도 사후약방문
정부는 2009년 신종플루가 발생하자 이듬해 인수공통감염병에 대한 연구에 들어갔다. 정부가 2010~2014년 인수공통감염병을 포함한 감염병 연구에 투자한 금액은 7135억원에 이른다. 하지만 인수공통감염병에 대한 분류가 광범위하게 이뤄지다 보니 막대한 예산 지원에도 별다른 소득을 얻지 못했다.
과학기술정책연구원(STEPI)에 따르면 그동안 투자된 과제는 4000개가 넘는 반면 과제당 평균 연구비는 1억4000만원에 불과했다. 김 책임연구원은 “인수공통감염병에 대한 불분명한 분류체계를 명확히 하고 한정된 예산을 집중적으로 쓰지 않다 보니 제대로 된 성과가 나오지 않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부처 간 장벽이 높아 각 부처 관계자들도 컨트롤타워 필요성을 개진할 정도다. 국내에서는 야생조류 바이러스 연구는 환경부가, 닭과 오리 등 가축 바이러스는 농림축산식품부가, 이들 가공육에서 발생한 바이러스 연구는 식품의약품안전처가 나눠 맡고 있다. 전염과 변이가 빠른 감염병의 탐지·예방·방역을 포괄할 밑그림은커녕 사후약방문식 대책만 내놓을 뿐이다. 송창선 건국대 수의과대학장은 “살모넬라균만 해도 3개 부처가 맡고 있지만 부처 간 정보 공유가 잘 안 되고 있다”며 “인수공통감염병 분야만큼은 부처를 아우르는 컨트롤타워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해외 바이러스 열심히 수집하는 일본
시설은 있어도 정작 연구할 수 없는, 어처구니없는 상황도 벌어지고 있다. 현재 국내에는 생물안전 3등급 실험실(BSL-3) 시설이 전국적으로 39개나 갖춰져 있다. 하지만 정작 지카 바이러스 같은 치명적인 질병이 해외에서 발생해 이를 가져와 연구하려고 해도 감염을 우려해 허가가 나지 않는다는 게 연구자들의 설명이다.
반면 일본은 베트남을 비롯한 동남아시아, 중동 등지에서 감염병이 발병하면 후생성이 해당국에 연구비를 대고 대학 연구자들이 방학을 이용해 직접 현지로 가거나 검체를 받아와 연구를 진행한다. 일본은 사우디아라비아에서 메르스가 대유행하기 한 해 전인 2013년 이미 연구를 시작했다. 질병관리본부장을 지낸 이종구 서울대 의대 교수는 “일본은 국내에서 감염병이 발병하지 않아도 확산 가능성이 크면 바이러스를 직접 가져와 분석하는 선제적 풍토가 마련됐다”며 “연구자들이 사실상 정보기관이 수행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모기 전파 바이러스 전문가 사각지대
보건전문가들은 5~10년 간격으로 새로운 바이러스가 등장하고 있지만 정작 국내 전문가가 없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 올초부터 세계적으로 확산하기 시작한 지카 바이러스의 경우 국내 전문가가 아직 한 명도 없다.
국내 생명공학 전체 전문가 5만4289명 중 인수공통감염병 전문연구인력은 3.8%에 불과하다. 뎅기열과 지카 바이러스와 같은 플라비 바이러스처럼 지구온난화 영향을 많이 받는 바이러스는 기초연구의 사각지대나 다름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류왕식 연세대 생화학과 교수는 “박쥐와 모기는 향후 가장 강력하고 심각한 바이러스 매개자로 떠올랐다”며 “기초 연구를 포함한 전문가 양성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 인수공통감염병
동물과 인간 사이에 상호 전파되는 병원체에 의해 발생하는 질병. 고병원성 조 昰曠첨玲@? 사스, 에볼라, 신종플루, 메르스, 지카 바이러스 등이 해당한다. 사람과 관련된 질병은 120종에 이르며 30~40%가 국내에서 발병 가능한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박근태 기자 kunt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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