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장미

입력 2016-02-22 17:40  

권영설 논설위원 yskwon@hankyung.com


얼마 전 사망한 이탈리아 작가 움베르토 에코가 쓴 《장미의 이름》은 추리소설로도 역사소설로도 걸작이다. 원제목은 ‘수도원의 살인 사건’이었는데 출간하면서 ‘장미’라는 단어를 넣어 제목을 바꿨다. 에코는 생전에 “제목은 독자를 헷갈리게 하는 것이어야지, 독자의 사고를 통제하는 것이어서는 안 된다”고 했다. 중세의 비밀결사 종교조직인 ‘장미십자기사단’을 연결할 수도 있지만 그저 중세를 상징하는 뜻으로 봐도 될 것이다.

역사적으로 장미 하면 영국의 장미전쟁(1455~1485)이 떠오른다. 왕위계승을 놓고 두 가문이 벌인 전쟁인데 랭커스터는 붉은 장미를, 요크는 흰 장미를 문장(紋章)으로 하고 있었기 때문에 장미전쟁이라 불리게 됐다. 결국 양가가 결혼으로 화해하면서 튜더왕조가 탄생했다. 이때 양가의 장미를 합해 새로 ‘튜더 장미’를 만들었다. 이후 장미는 영국의 국화가 됐다.

로마에서는 전쟁에 승리한 군대가 개선할 때 군중이 발코니에서 장미꽃잎을 뿌렸다. 또 장미가 영원한 생명을 뜻한다고 여겨 장례식에서도 쓰고 묘지에도 심었다. 클레오파트라가 장미를 특히 좋아했던 것은 역사적 사실이다. 그녀는 장미향수를 사용하고 목욕도 장미꽃을 가득 뿌린 욕탕에서 했다. 연인 안토니우스가 장미향으로 자신을 오래 기억하도록 하기 위해 궁전과 내실 곳곳에 장미를 가득 장식했다고 한다.

꽃은 단기간 피었다 지는 속성 때문에 가장 아름다울 때를 기념하는 선물로 자주 쓰인다. 특히 러시아 등 추운 지방 사람들은 꽃이 귀해 축제와 기념일에 꽃선물을 많이 한다. 꽃을 선물할 때는 보통 홀수 송이로 선물하는데 그 이유는 선물하는 사람을 더해 짝을 채운다는 의미다.

장미를 소재로 한 예술작품이 많다. 그림은 말할 것도 없고 음악에서도 단골 소재다. 러시아의 국민가요 ‘백만송이 장미’는 여배우의 사랑을 받기 위해 전 재산으로 장미를 사서 광장에 가득 채워놓은 화가의 얘기다. “백만송이, 백만송이, 선홍빛 장미 백만송이/(중략)당신이 창문가에 서게 되면/얼마나 부자길래 여기에다? (중략) 그러나 그의 인생에는 남아 있었네/꽃으로 가득 찬 광장이.”

프랑스 샹송을 대표하는 가수 에디트 피아프의 ‘장밋빛 인생’에선 인생 최고의 순간을 장밋빛이라고 노래한다. “그가 나를 품에 안고/가만히 속삭일 때/나에게는 인생이 장밋빛으로 보여요.”

졸업시즌인데도 수요가 크게 없어 장미가 작년의 반값에 팔리고 있다는 보도다. 취업을 못한 대학생이 졸업식에 갈 마음이 나겠는가를 생각하면 씁쓸할 뿐이다.

권영설 논설위원 yskwo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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