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지역인문자원연구소 편찬/ 휴먼앤북스/ 928쪽/ 5만원
[ 송태형 기자 ] 서울 인왕산 자락 청운공원에 ‘윤동주 시인의 언덕’이 있다. 복각본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의 인기와 영화 ‘동주’의 흥행 등 올 들어 ‘윤동주 열풍’이 불면서 새롭게 주목받는 곳이다. 언덕 북쪽 가장 높은 곳에는 소나무 한 그루가 북한산을 바라보며 홀로 서 있다. 이른바 ‘윤동주 소나무’다. 윤동주에게 소나무는 어떤 의미였을까.
한국지역인문자원연구소가 편찬한 《소나무인문사전》에서 이런 궁금증을 풀 수 있다. 윤동주와 관련된 표제어는 ‘윤동주’ ‘윤동주 소나무’ ‘모란봉에서’ 등이다.
‘앙당한 소나무 가지에/훈훈한 바람의 날개가 스치고/얼음 섞인 대동강 물에/한나절 햇발이 미끄러지다.’ 시인이 평양숭실학교에 다니던 무렵 평양 신궁 참배 거부 당시의 풍경을 묘사한 시 ‘모란봉에서’의 첫 구절이다. 사전은 이 작품과 윤동주에 대해 이렇게 해설한다.
“소나무는 우리 민족의 슬픈 운명과 대조되는 티 없이 맑고 투명한 자연의 일부로 기능하고 있다.(…)그랬기에 선비의 소나무, 기개와 충절의 소나무, 조선의 소나무 가지는 어딘지 모르게 왜소하게 보일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이 앙당한 소나무를 바라보는 시인의 시선은 따뜻하기만 하다.(…) 윤동주의 맑고 시퍼런 정신, 충절과 기개는 ‘모란봉에서’의 소나무 이미지와 일치한다.”
《소나무인문사전》은 소나무에 대한 인문학적 종합 지식을 담아낸 사전이다. 편찬위원회는 문화예술, 인문역사, 생활, 생태, 지리, 자연유산 등 7개 항목으로 대분류를 나누고, 1447개의 표제어를 선정했다.
900여쪽 분량에 신경림의 ‘늙은 소나무’, 황동규의 ‘울진 소광리길’ 등 소나무 관련 현대시 70여편과 시조 20여편, 이규보의 ‘송화’ 등 한시 200여편,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 등 미술작품 100여편, 소나무와 관련한 고사(古事)와 설화, 전설, 역사적 인물, 천연기념물 소나무와 지방기념물 소나무, 노거수(老巨樹)와 북한의 소나무 등을 망라해 실었다. 고규홍 인하대·한림대 겸임교수, 고인환 경희대 교수, 박봉우 강원대 명예교수, 변영섭 고려대 교수, 이경식 작가, 전영우 국민대 교수, 하응백 문학평론가, 허균 한국민속미술연구소장 등 각 분야 전문가 10여명이 집필했다.
왜 소나무일까. 편찬위원장을 맡은 소설가 김주영 씨는 서문에서 “소나무는 한국인에게 ‘요람에서 무덤까지’란 말로 설명할 수 있다”고 했다. 과거 한국인은 소나무로 지은 집에서 태어나고, 생솔가지를 꽂은 금줄이 쳐진 집에서 지상의 첫날을 맞고, 사는 동안 소나무로 만든 가구나 도구를 사용하다가 죽을 때도 소나무 관에 들어갔다는 의미다. 현대에 와서는 치유의 목적으로도 소나무숲이 활용된다. 경북 울진 소광리 금강소나무숲(사진)처럼 전국 각처에 있는 소나무숲은 공해에 찌들고 일상에 지친 현대인에게 편안한 휴식 공간을 제공한다.
소나무는 한국인의 삶에 오래도록 각별한 영향을 미친 만큼 한국 정신문화와 인문학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클 수밖에 없다. 수많은 문학작품과 미술작품, 전설, 민담에 소나무가 자리하며, 애국가에도 남산의 소나무가 등장한다. ‘한 식물에 대한 한국 최초, 세계 최초의 방대한 인문사전’이 기획되고 편찬된 배경이다.
첫 표제어부터 곱씹을 만하다. ‘가랑잎이 솔잎더러 바스락거린다고 한다’란 속담이다. 자기가 훨씬 더 모자라면서도 오히려 상대방더러 모자라다고 나무라는 것을 비유해서 이르는 말이다.
송태형 기자 toughlb@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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