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인터뷰] 염재호 고려대 총장 "한 학기 8주에 끝내는 유연학기제 시행…교육계 고정관념 깨야"

입력 2016-02-28 18:14  

취임 1년, 파격적인 실험 쏟아내는 염재호 고려대 총장

만난사람 - 이재창 부국장 겸 지식사회부장

인문·사회과학과 IT 접목한 미래융합대학 설립
남미는 잠재력 큰 시장…5년내 학생 500명 유치
서울 9개 사립대와 강의공유·학점인정 추진할 것



[ 윤희은 기자 ] 염재호 고려대 총장(사진)은 거침이 없었다. 총장 취임 뒤 성적장학금 폐지와 ‘3무정책’(상대평가·시험감독·출석체크 폐지) 도입, 논술전형 폐지 등 파격적인 실험을 계속해온 염 총장은 “일류 인재를 키우기 위해선 기존 틀을 깨야 한다”며 새로운 구상을 쏟아냈다. 취임 1년(27일)을 맞아 한국경제신문과 한 인터뷰에서다. 한 학기를 8~10주에 끝내는 유연학기제 시행과 미래융합대학 설립, 창업 지원을 위한 ‘개척마을’ 신설, 토론 전용 교육관 건립, 서울시내 9개 사립대와의 상호 학점 인정 등은 염 총장이 추진하거나 계획하고 있는 또 다른 실험들이다.

▷취임 이후 지난 1년은 성적우수 장학금 폐지와 3무정책 도입 등 파격적인 실험의 연속이었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파격이 아니라 정상화라는 표현이 적절할 것 같습니다. 그만큼 한국 교육이 비정상적이었다는 방증입니다. 선진국엔 성적우수 장학금 제도가 없습니다. 3무정책도 마찬가지죠. 문제의식을 갖고 정상화한 것입니다. 일류 인재를 키우기 위해선 과거의 틀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유연학기제를 도입한 취지가 궁금합니다.

“유연학기제는 이번 학기부터 시행합니다. 모든 학생이 한 학기에 16주를 채워 강의를 들어야 한다는 고정관념은 깨야 합니다. 유연학기제가 적용되면 3월에 신청해서 4월 말이나 5월 초면 학점을 이수할 수 있고, 그때부터 해외에 나가 인턴십이나 연수를 받을 수 있습니다. 교수들은 연구할 시간을 갖게 됩니다. 학점이 부족하면 여름·겨울방학에 채우면 됩니다. 교양과목으로만 운영돼온 계절학기 수업에 전공과목도 넣을 겁니다. 대학은 24시간, 365일 가동해야 합니다.”

▷미래지향형 단과대학을 구상하고 있는데 핵심 내용은 무엇입니까.

“앞으로 5년간 주요 15개국의 일자리 수백만개가 사라지고 대신 200만개의 새로운 일자리가 생긴다는 다보스포럼 보고가 있었습니다. 중요한 건 새로운 일자리가 IT를 토대로 한 것이라는 점입니다. 엔터테인먼트 기술과 보안, IoT, 스마트그리드 등 미래 먹거리에 대비하려면 과학기술과 인문·사회과학을 융합하는 게 필요합니다. 미래융합대학은 이런 미래를 준비하기 위한 것입니다. 각종 엔터테인먼트사업에서부터 스포츠, 인문, 디자인 등 IT와 융합할 수 있는 분야는 무궁무진하죠. 이미 10여차례 논의를 거쳤고 다음달 말께 초안이 나올 겁니다.”

▷국내 최초의 토론 전용 교육관을 구상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100개의 토론실과 100개의 자기학습실을 갖춘 5층 규모의 건물을 올해 착공해 2018년 완공할 예정입니다. 소그룹별로 토론하고 자기학습을 할 수 있는 공간입니다. 학교가 강의를 듣는 곳이라는 고정관념은 버려야 합니다. 요즘엔 집에서 동영상 강의를 듣고 학교에 와서 토론하는 ‘거꾸로교실’이 선호되고 있습니다. 이런 거꾸로교실을 가장 잘 반영한 공간이 SK미래관입니다.”

▷고용 없는 성장 시대에 취업난은 더 심각해질 것으로 예상됩니다.

“고려대는 2012년부터 3년간 3000명 이상 대학 중 최고의 취업률을 유지했습니다. 하지만 이젠 취업에만 매달릴 게 아니라 창업으로 눈을 돌려야 할 때입니다. 기업 인력 자체가 포화상태인 데다 산업자동화로 사람을 필요로 하지 않는 영역도 많아졌습니다. 해답은 창업인데, 고용에 익숙해진 학생들이 갑자기 창업에 적응하긴 쉽지 않습니다. 정부가 나서야 합니다. 창업을 하고 싶은데 방법을 모르는 사람, 창업했다가 실패한 사람을 모아 대학에서 일하며 1~2년간 직업훈련을 할 기회를 줘야 합니다. 일종의 지식재충전소 개념이죠. 이들에게 1년간 3000만원을 연봉으로 지급한다고 가정하면 3000억원만 있으면 1만명에게 이런 혜택을 줄 수 있습니다.”

▷학생들 사이에서 창업하려는 움직임이 있지만 대학의 창업 지원이 미흡하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고려대는 이미 4년 전 창업에 대해 집중 강의하는 ‘캠퍼스CEO’ 프로그램을 개설했고 다수의 대학에 비슷한 프로그램을 전파하는 등 인정을 받았습니다. 저는 학생들이 창업에 대해 갖고 있는 막연한 두려움을 해소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구상한 것이 컨테이너 박스 30~40개로 구성한 청년창업센터 ‘드림팩토리(개척마을)’입니다. 이곳에서 학생들이 창업과 관련한 브레인 스토밍도 하고, 다양한 아이디어를 내놓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아이디어가 있는 학생 모두에게 24시간 개방됩니다. 상반기에 착공해 여름방학엔 선보일 계획입니다.”

▷남미 학생을 유치하기 위한 ‘라틴아메리카 프로젝트’는 진척이 있습니까.

“저는 남보다 빨리 미래를 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남미는 언제라도 새로운 시장으로 떠오를 수 있는 잠재력을 지닌 땅입니다. 과거 좌파혁명으로 교육시장 진출은 힘들었지만 최근 분위기가 바뀌고 있습니다. 브라질은 룰라 정권 이후 교육에 눈을 떴습니다. 고려대는 2020년까지 대학생 200명, 대학원생 300명을 유치할 것입니다. 최근 남미를 방문했을 때 각국의 교육책임자가 적극적으로 협력을 원했습니다. 한국이 새로운 교육모델이 될 수 있습니다.”

▷‘직업재설계 프로그램’을 구상 중이라고 들었습니다.

“일명 ‘3G스쿨’이라고 불리는 50~60대 전용 대학을 준비 중입니다. 3G의 ‘G’는 제너레이션(generation)의 약자인데, 평균수명이 80세 이상으로 늘어나면서 인간의 생애를 기존 2세대에서 3세대까지 고려하게 됐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3세대는 환갑(60세) 이후입니다. 이 이후에도 일하고 싶어하는 사람을 위한 재취업 전용 대학을 설립하고자 합니다.”

▷연세대와 한국외국어대 등 서울 지역 사립대 총장과 수시로 만나 협력방안을 논의하고 있는데 가시적 성과가 있습니까.

“‘거꾸로교실’ 방식의 대학교육이 일반화한다면 한 과목에 굳이 수십 명의 교수가 있을 필요가 없습니다. 최고의 강의를 하는 한 명만 있으면 되는 거죠. 최고의 강의를 하는 교수가 A대학에 없다면 B대학에서 듣는 것도 필요할 겁니다. 대신 B대학은 없거나 부족한 과목을 A대학에서 수강할 수 있도록 ‘기브 앤드 테이크’를 해야겠죠. 그런 의미에서 저는 대학 간 자유로운 학점교류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최근 대학 총장들과 이런 내용을 논의하고 있습니다.”

▷각종 실험을 하려면 자금이 필요한데 기부금 모집은 잘 돼갑니까.

“2014년에 비해 지난해 기부금이 20% 늘었습니다. 한 해 동안 22명의 본교 출신 기업인이 125억원 가까이 기부했습니다. 이렇게 거액의 기부금이 주로 회자되다 보니 상당수 졸업생이 ‘기부는 돈 많은 사람이 하는 것’이라는 고정관념을 갖고 있는 듯하더군요.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지난해 5월 도입한 KU프라이드클럽입니다. 가입하면 1만원씩 자동이체돼 기부금으로 들어오는 시스템이죠. 도입 10개월 만에 7000여명이 가입했고, 기부금도 8억원 가까이 됩니다. 이 돈으로 어려운 학생에게 생활비(30만원)를 주고 해외대학 교환프로그램 등에 참여할 수 있도록 돕고 있습니다.”

▷국제하계대학에 상당한 공을 들隔?있는데 성과는 어떻습니까.

“2004년 281명으로 시작했는데 현재 40개국 1600여명의 대학생이 참여하는 아시아 최고 프로그램 중 하나로 성장했습니다. 해외 명문 대학의 저명한 교수진을 파격적인 조건으로 초빙해 모든 수업을 현지에서처럼 영어로 진행합니다. 호응이 좋아 올해는 2000명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합니다.”

▷세종캠퍼스 개편안은 어떤 방향으로 추진해 나갈 계획입니까.

“고려대 세종캠퍼스는 충분히 좋은 프로그램과 높은 논문인용률을 지닌 캠퍼스입니다. 다만 전문성 강화 차원에서 인문대학을 없애고 글로벌비즈니스대학으로 통합해 실용학문 위주의 캠퍼스로 개편할 계획입니다. 또 1~2학년 학생은 전원 기숙사 생활을 하며 공부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할 예정입니다.”

염재호 고려대 총장은…

네 번의 도전 끝에 총장의 꿈을 이뤘다. 온화한 성품과 수준 있는 강의로 교수 시절부터 학생들 사이에 인기가 좋았다. 2002년 16대 대통령선거 때 대선후보 TV토론 사회를 봤고, 이듬해엔 본인의 이름을 단 시사토론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중앙인사위원회 인사정책자문회의 자문위원과 외교통상부 정책자문위원회 자문위원,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자문위원을 역임하는 등 정부 업무 경험이 풍부하다. 2011~2013년 국가과학기술위원회 위원을 맡아 미래창조과학부의 ‘창조경제’ 개념 정립에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2003羞壙?3년간 국제교육원장을 맡아 여름방학에 해외 유명교수를 초빙해 캠퍼스에서 강의하도록 한 ‘KU인터내셔널서머스쿨’을 기획, 고려대의 국제화에 기여했다. 기획예산처장 시절엔 ‘외국어 강의 40% 달성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이끌었다.

△1955년 서울 출생 △고려대 행정학과 졸업 △고려대 대학원 행정학 석사 △미국 스탠퍼드대 정치학 박사 △고려대 행정학과 교수 △고려대 국제교육원장 △한국연구재단 BK21 사업관리위원회 위원 △고려대 행정대외부총장 △국회 예산정책자문위원회 위원 △한국고등교육재단 이사장

정리=윤희은 기자 sou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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