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문화사 '콕 찌르기'] 미국 사업·독일 군인·영국 공직자 '존경', 21세기 직업 급변…자기 적성을 찾아라

입력 2016-02-29 07:00  

장원재 박사의'그것이 알고 싶지?' (8) 급변하는 21세기 직업세계


청소년기 가장 큰 고민 중의 하나가 진로와 적성입니다. 어떤 직업을 가지고 어떤 인생을 살아가야 하나, 내가 진정 좋아하는 일이 무엇일까, 잘할 수 있는 일이 있을까, 하고 싶은 일이 너무 많아 혹은 아무 것도 없어 걱정이다, 같은 고민이지요. 단기적으로는 특성화 고등학교나 대학의 학과를 선택해야 하는 문제가 있고 장기적으로는 인생 전체가 걸려있다고 생각하니 고민의 크기가 엄청납니다. 고민의 크기를 키우는 요인은 또 있습니다. 누구에게 조언을 구하거나 과학적 분석, 예컨대 심리검사나 적성검사를 하더라도 정답이 뚜렷하게 떠오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초기 선택, 즉 청소년기에 진로를 결정하면 나중에 경로를 바꾸기가 쉽지 않고, 직업을 바꾸더라도 상당한 시간과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는 고정관념도 심리적 압박으로 작용합니다.


소망과 적성이 다르다?

누구든 ‘성향’이나 ‘적성’을 가지고 있는 것은 확실합니다. 사람의 성격유형을 16가지로 나누는 MBTI 테스트도 있고 현실주의자, 이상주의자, 낭만주의자, 휴머니스트, 실천주의자 성향 등 다섯 갈래로 성격을 구분하는 검사지도 있습니다. 각각의 성향에 어울리는 직업군도 분명하게 존재합니다. 그런데 본인의 소망이 적성과 다른 경우가 문제가 됩니다. 갈등이 생기는 것이지요. 법륜 스님은 최근의 저서 <행복해지고 싶지만 길을 몰라 헤매는 당신에게>에서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하고 싶은 일이 여럿인 경우, 예를 들어 화가를 할까 수도생활을 할까 망설이는 경우, 고민을 할 필요가 없다. 하나를 하면 다른 하나를 아예 포기해야 하는 것이 아니다.

절에 들어와 불상제작이나 단청그리기, 절집 인테리어 등 자신의 재능을 발휘하면 된다. 요리를 할까 수도생활을 할까 고민하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절밥을 짓는데 재능을 발휘하면 된다. 선택이란, 하나를 취하고 다른 하나를 버리는 것이 아니다.’ 역선택도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화가를 주업으로 하면서 종교화를 그릴 수도 있고 요리사를 주업으로 하고 육류를 쓰지 않는 베지테리언 요리를 개발하면 됩니다.

부두노동자이자 철학자였던 에릭 호퍼(1902-1983)의 견해도 진로 때문에 번민하는 청소년들이 참고할 만합니다. ‘한 사회의 성격을 가늠하는 방법 가운데 하나는 야망과 재능이 어느 분야로 몰리는지를 보는 것이다. 사회에서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업적은 무엇인가를 보는 것이다.’ 호퍼는, 어느 분야로 가야 가장 큰 사회적, 경제적 보상을 받을 수 있을 것인가, 라는 고려가 청소년들의 직업선택에 결정적 요인으로 작용한다고 말하면서 20세기 초반에 활약한 영국의 정치가이자 역사학자인 G. 로우즈 디킨슨의 말을 인용합니다. ‘미국에서는 사업을 해야 사람들의 존경을 받고 독일에서는 군인, 프랑스에서는 지식인, 영국에서는 공직 생활이 추앙을 받는다.’

철학자가 사업가 “왜 안돼?”

에릭 호퍼에 따르면 19세기 중반 이후, 산업혁명과 과학혁명으로 세계사적 변환이 일어났습니다. 인류의 생활패턴과 세계관 자체가 바뀐 것이지요. 사회구도가 급격하게 변하면 자기 적성과 무관하게 진로를 잡은 사람들이 늘어납니다. 사업가들이 존경을 받던 미국에서는 다른 직종으로 가야 할 사람들이 사업분야에 많이 뛰어들었습니다. 그 전 시대였다면 학자나 성직자, 작가, 예술가가 되었을 사람들 중 상당수가 철도, 광산, 유정을 비롯한 각종 산업분야에서 자기의 운명을 개척했습니다. 역설적이지만, 이렇게 자리를 ‘잘못’ 찾은 사람들이 사업에 활력을 주고 혁신을 일으켰으며 본래는 자기들 분야가 아닌 활동영역에서 그들 나름의 방식을 깊이 새겼습니다.

‘프로메테우스와 같은 개혁성과 추진력으로 미국의 사업을 이끌고 간 사람들은 기존의 사업가가 아니라 시인과 철학자의 성향을 타고난 사람들이었다. 철학자의 기질이 있으면서 사업의 길로 뛰어든 사람에게 모든 행위는 매한가지이기 때문에, 철학자가 여러 사상을 합쳐 일반화시키듯이 제강소, 광산, 공장 등을 하나로 합병한다.’ 혁신과 진화는 이렇듯 ‘사업가다운 사업가’가 아니라, ‘엉뚱한 곳에서 진로를 찾은 사업가’들로부터 시작된 경우가 많습니다. 반대의 경우도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문학, 예술, 철학을 중요시하는 프랑스에서는 ‘사업가 성향의 지식인’이 출현하는 것이지요. 이런 사람들에게 지식이란 그 자체에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어떤 구체적이고 또렷한 결과물을 만들어내기 위한 준비작업일 것입니다.

평생 배워야 하는 시대

기술개발은 사회의 모습을 바꿉니다. 시대가 변화하면 이전까지의 직업적 경험과 숙련도는 빠르게 가치를 잃어버립니다. 예를 하나 들어보지요. 갓을 만드는 일은 고도의 전문성을 필요로 하는 일입니다. 하지만, 갓을 쓰는 사람들이 없어지면 갓을 만드는 장인들의 전문성은 그 가치가 급격하게 하락합니다. 사회가 변화하면서 전문성을 활용하고 싶어도 활용할 수 없게 된 분야는 과거에도 있었고 앞으로도 많을 터입니다.

미래학자들은 21세기야말로 직업의 소멸 생성이 가장 활발하게 일어날 인류사 최대의 변혁기라고 예측합니다. 지금 전성기를 누리는 직업 중에도 가까운 미래에 사라질 일들이 적지 않다는 뜻입니다. ‘젊어서 배운 것으로 평생을 경영한다’는 말은 이미 성립불가입니다. 우리는 지금 ‘평생을 두고 배워야 하는 시대’로 가고 있습니다.

따라서, 여러분에게 필요한 것은 ‘이러이러한 일을 꼭 하겠다’는 마음보다는 ‘내 본질과 적성을 살펴보겠다’는 자세가 아닐까 합니다. 직업이 생성소멸하고 시대가 변해도, 본인의 장점을 살리는 길은 분명히 존재할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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