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군주 폐하께서 1년 동안을 아라샤 국기 밑에 아라샤 병정의 호위를 받으시고 지내신 것은 (중략) 지금은 대군주 폐하께서 다시 조선 대궐로 환어하셔서 조선 국기가 다시 한 번 대군주 폐하 앞에 서게 되었으니 (하략)’
열강의 각축 속에 조선의 운명이 풍전등화와 같던 구한말. 우리나라 최초의 민간신문인 독립신문은 1897년 3월 1일자 ‘론셜(지금의 사설)’에서 고종의 환궁 소식을 이렇게 전했다. 1895년 일제에 의해 ‘국모 시해’라는 만행을 당한 고종은 신변의 위협을 느껴 이듬해인 1896년 2월 극비리에 경복궁을 나와 러시아 공사관으로 거처를 옮겼다. 우리 역사는 그것을 가리켜 ‘아관파천(俄館播遷)’이라고 한다. 한 나라의 국왕이 자국 땅 안에서 외국 공관에 피신해 나랏일을 본 이 사건은 역사의 치욕으로 남아 있다. 지금으로부터 꼭 120년 전 이맘때 일이다.
‘아관’은 러시아 공관을 이른다. ‘아’는 ‘아라사(俄羅斯)’의 첫 글자를 딴 것이다. 독립신문 기사에 보이는 ‘아라샤’가 당시 러시아를 가리키던 우리말 표기였다. 줄여서 ‘아국(俄國)’이라고도 했다. ‘파천(播遷)’이란 임금이 도성을 떠나 다른 곳으로 피란하는 일을 말한다. 그러니 ‘아관파천’이란 말은 ‘임금이 러시아 공관으로 피신함’이란 뜻이다. 조선왕조실록에는 1864년 고종 1년 이후 러시아를 한자로 ‘俄羅斯’로 기록했다고 한다(위키백과). 동아일보가 1922년 1월 22일자에서 당대의 문장가인 김윤식 선생의 부고를 전하면서 ‘아관파천’을 언급한 것을 보면 오래전부터 이 말을 썼음을 알 수 있다.
러시아는 20세기 초 일제시대 때 나온 신문에서는 ‘아라샤’란 표기로 쓰였으며 달리 로서아(露西亞), 또는 나선(羅禪)이라고도 했다. 지금은 아국이나 아라사, 로서아, 나선 따위의 말은 사어화해 일상적으론 거의 쓰이지 않는다. ‘아관파천’ 같은 역사적 사실을 가리키는 말로나 남아 있을 뿐이다. 그것은 우리말의 생성, 소멸 과정이 담긴 우리말 변천사이기도 하다.
따로 표기법이 있을 리 만무한 당시에는 외국의 인명, 지명을 옮길 때 한자를 빌려 적었다. 그것을 취음어라고 한다. 우리말에는 이런 게 꽤 많다. 외래어 표기를 실제 발음에 가깝게 적는다는 지금과 같은 방식은 1986년 외래어표기법이 제정된 뒤 비로소 자리를 잡았다. ‘아관’이 러시아공관을 뜻하게 된 배경에는 이런 곡절이 담겨있다.
애초에 중국에서 러시아를 ‘俄羅斯’로 옮겨 적고 이를 [어뤄쓰]라 읽었다. 러시아가 중국에서 [어뤄쓰]로 불리게 된 데는 다소 엉뚱한 사연이 있다. 17세기 러시아는 중국과 교역을 위해 접촉을 시도했는데, 이때 통역을 맡은 게 중간지대에 있던 몽골인이었다. 이들은 당시 러시아를 나타내는 ‘로스(Ros)’의 첫 글자 R 발음을 제대로 하지 못 했다. 그래서 모음을 하나 추가해 ‘오로스(Oros)’라 불렀다고 한다. 이로 인해 중국에는 이들이 ‘어뤄쓰(俄羅斯)’라는 나라로 알려진 것이다.(김호동 서울대 동양사학과 교수 ‘중앙유라시아 역사기행’)
어찌됐건 이 취음 한자를 우리가 다시 한국 한자음으로 읽은 게 ‘아라사’다. 일본에서는 러시아를 ‘露西亞’로 음역해 썼는데, 마찬가지로 이를 우리 한자음으로 읽은 게 ‘노서아’이다. 우리는 개화기 때 중국과 일본의 취음어 두 가지를 다 받아들여 썼다. 지금도 사전에서 러시아를 가리키는 우리 취음어로 아라사와 노서아를 함께 다루고 있는 것은 그런 까닭이다.
(☞ 다음 회에 계속)
홍성호 한국경제신문 기사심사부장 hymt4@hankyung.com
배시원 쌤의 신나는 영어여행 - It's beyond my control
살다보면 넘사벽(넘을 수 없는 사차원의 준말)을 느낄 때가 정말 많습니다. 예를 들어 도저히 내 힘으로는 불가능하다고 느낄 때, 영어로 It’s beyond my control이라고 할 수 있답니다. 영화 [위험한 관계(Dangerous Liaisons)]에서 ‘존 말코비치’가 ‘미셀 파이퍼’에게 이별을 고할 때 남긴 비겁한 변명(?)의 명대사로도 유명한 이 표현은 미드 [위기의 주부들(Desperate Housewives)]에서는 물론 일상생활에서도 자주 접할 수 있는 표현입니다.
또 우리말로 ‘말로 형언할 수 없는’이라는 표현을 beyond description 혹은 beyond expression이나 beyond words라는 말로 나타낼 수 있습니다. 그럼 오늘은 ‘(한계를) 뛰어넘어 저 너머로’의 뜻을 가진 beyond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우선 This is beyond the pale이란 말이 있습니다. 우리말로 ‘도리에 벗어나는 일이야’ 혹은 ‘상식에서 벗어난 행동’이나 ‘용인할 수 없는 일’ 정도로 번역할 수 있는데 여기서 pale은 ‘창백한’이란 형용사가 아니라 ‘울타리나 경계’를 뜻하는 명사입니다. 언제나 그렇지만 반드시 단어는 예문 속에서만 외워야 합니다.
이 외에도 beyond belief(믿을 수 없을 정도로), beyond measure(몹시, 대단히), beyond one’s depth(이해할 수 없는, 능력이 미치지 못하는), beyond doubt(의심의 여지없이) 등등 beyond를 가지고 정말 멋진 표현을 만들 수 있습니다. It’s beyond a joke라고 하면 ‘웃을 일이 아니라 심각한 일이야’라고 말할 수 있으니 절대 beyond를 그냥 문법책에 나오는 전치사라고 무시하면 안 됩니다~!!!
끝으로 영화 [토이 스토리(Toy Story)]의 주인공 ‘버즈 라이트이어(Buzz Lightyear)’의 명대사로 유명한 ‘To infinity and beyond(무한한 공간 저 너머로)’라는 표현은 지치고 힘들 때마다 학생들에게 그리고 저에게 긍정의 에너지를 가져다주는 정말 멋진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안 된다 하지 말고, 아니다 하지 말고, 긍정적으로…’ 이런 마음으로 새학기를 시작한다면 반드시 원하시는 목표를 이룰 것이라 생각합니다~!!!
기회가 되면, Beyond Silence라는 영화를 한 번 꼭 보세요~!!!
정말 ‘침묵을 넘어선’ 깊은 감동을 느낄 수 있을 거예요~^^*
■ 배시원 선생님
배시원 선생님은 호주 맥쿼리대 통번역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배시원 영어교실 원장을 맡고 있다. 고려대 등 대학과 김영 편입학원, YBM, ANC 승무원학원 에서 토익·토플을 강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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