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에게 바친 '장인의 땀방울'…'리슬링 와인' 전설에 취하다

입력 2016-02-29 07:02   수정 2016-02-29 10:01

백포도주 명산지 독일 라인가우


잿빛 하늘이 감싼 백포도주의 고장. 독일 라인가우(Rheingau)는 안개 낀 포도밭을 소유한 수도원과 고성이 아름다운 이야기를 간직한 곳이다. 수세기 전부터 수도사와 귀족들은 이곳에서 포도주를 생산했다. 세월이 흐른 뒤 그들이 떠난 자리를 채운 이들은 포도주 양조자다. 옛날 방식 그대로 포도주를 담그며 전통의 맥을 잇는 장인들은 한 잔의 포도주를 내주며 비밀 같은 옛이야기를 시작한다.

제단에 바쳤던 신성한 포도주

프랑크푸르트 공항에서 서쪽으로 약 50㎞, 차로 한 시간쯤 달리면 세계적인 백포도주의 고장 라인가우가 나타난다. 독일 중서부 헤센(Hessen) 주에 속하는 곳으로, 백포도 품종 리슬링(Riesling)이 생산된다. 독일에서도 가장 고급 와인을 생산한다는 명성 그대로 라인 강을 따라 잎맥이 이어지듯 포도밭이 뻗어 있다.

라인가우의 명소는 독일 최대의 와이너리인 클로스터 에버바흐(Kloster Eberbach)다. 원래는 1136년 로마네스크와 초기 고딕 양식으로 지은 시토회 수도원이었다. 종교적인 역할은 18세기에 끝났지만, 수도원 재단의 관리 아래 옛 형태가 잘 보존돼 있다. 최근 타계한 움베르토 에코의 소설을 영화화한 ‘장미의 이름’을 촬영한 곳이기도 하다.

안으로 들어가 본관에 이르자 긴 회랑을 따라 예배당, 집회소, 포도주 저장고 등이 미로처럼 이어진다. 옛 수도사들은 매일 새벽 4시부터 일과를 시작했다. 중요한 일 중 하나는 종교의식에 쓰일 포도주를 담그기 위해 포도를 재배하는 것이었다. 수도원 안내자는 “12~13세기에는 이웃 지방까지 포도주가 잘 팔려서 수도원 재정에 보탬이 됐다”고 말했다. 현재는 헤센 주에서 포도밭을 소유하고 있으며 양조전문가를 영입해 전통을 잇고 있다. 예배당은 음악회나 결혼식 장소로 쓰인다. 수도사들만의 공간이었던 곳은 이제 시민과 여행자들에게 문을 열고 과거의 명성을 나누고 있다.

오래된 고성(古城)이 간직한 비밀

수도원을 나와 라인 강 상류로 가면 멀리 고성(古城) 슐로스 폴라즈(Schloss Vollrads)가 모습을 드러낸다. 클로스터 에버바흐와 함께 라인가우의 주요 유산으로 꼽히는 곳이다. 넓은 정원 안쪽에 저택이 보이고, 그 옆의 연못 한가운데 물 위로 솟은 듯 탑이 서 있다. 올려다 보는 관광객들의 눈에는 조용한 감탄이 배어 있다.

11세기부터 19세기까지 그라이펜클라우(Greiffenclau)라는 귀족 가문이 이곳에서 포도주를 만들어 귀족과 왕가에 납품했다. 하지만 이 가문의 28대 마지막 소유주는 1997년 부채에 쫓겨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후 성을 인수하게 된 은행은 포도주 양조를 이어갈 전문가를 찾았다. 그때 부임한 양조학 박사 로발트 헤프(Rowald Hepp)가 지금까지 최고경영자이자 양조가로 성을 지키고 있다.

이곳을 안내한 매니저는 “박사는 마지막 소유주의 오랜 친구였는데 안정적이던 생활을 버리고 여기로 왔다”고 말했다. 다행스럽게도 지금은 예전 이상으로 이곳의 명성을 빛내고 있다고 한다. 성안의 포도주 상점에 들러 100% 리슬링으로 만든 슐로스 폴라즈의 포도주를 맛봤다. 한 잔 술에 많은 열정과 애정이 담긴 것 같아 더욱 소중하게 다가왔다.

아이들의 꿈이 담긴 포도밭

여정을 마무리하며 라인 강의 대로로 돌아가는 길. 포도주 애호가들 사이에서 ‘라인가우의 고집 있는 양조 가문’으로 통하는 곳을 찾았다. 가보니 아담한 이층집 옆 포도밭에서 아이들이 까르르 웃으며 달아난다. 230년간 가업으로 포도주를 만들고 있는 ‘바인구트 페터 야코프 쿤(Weingut Peter Jakob Kuhn)’이다.

이곳에서는 바이오다이내믹(biodynamic)이라는 농법으로 포도를 키운다. 유기농법보다 한 단계 더 나아간 것으로, 천체의 주기에 따라 포도를 키우는 방식이다. 별의 운행에 따른 농사력에 근거해 퇴비를 주고 포도를 수확한다. 포도밭에 각종 허브를 심고, 약초를 퇴비로 주는 것도 독특하다.

양조장의 안주인 앙겔라 쿤은 “발효는 인공적으로 조절하지 않고 효모에 맡긴다. 조상의 터전을 고스란히 다음 세대에 물려 주는 방법”이라고 말했다. 시대가 흐를수록 작은 양조장들이 사라져가고 있지만 꼭 손자들에게 가업을 물려주고 싶다고 덧붙인다. 함께 방문객을 맞이하는 아이의 말간 눈이 투명한 리슬링처럼 빛났다. 마지막 잔을 부딪치며 다음 세대에 거는 그들의 희망이 오래도록 이어지기를 빌었다.

이것만은 꼭!

☞ 클로스터 에버바흐와 슐로스 폴라즈를 비롯한 라인가우의 교회와 박물관 등에서는 매년 여름 라인가우 음악축제(rheingau-musik-festival.de)가 열린다. 1월 말부터 프로그램을 공개하고 입장권 판매를 시작한다.

☞ ‘클로스터 에버바흐’ ‘슐로스 폴라즈’ ‘바인구트 피터 야콥 쿤’의 방문과 포도주 시음은 독일와인협회(germanwines.de)의 홈페이지에 잘 안내돼 있다.

라인가우(독일)=나보영 여행작가 alleyna200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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