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대통령 작년 10월 방미 후 급진전
포괄적 협력 위한 법적 토대 마련
러시아 의존 탈피…달 탐사 계획 탄력
[ 박근태 기자 ] 한국이 미국과 수교한 지 134년 만에 우주협력협정 문안에 합의했다. 이에 따라 한국이 추진하는 달 탐사 계획이 탄력을 받는 등 전반적인 우주개발 기술 확보가 쉬워질 전망이다. 한국은 2004년 러시아 정부와 우주기술협력협정을 맺은 적이 있지만 미국과 우주개발과 관련한 정부 간 협정을 맺은 건 이번이 처음이다. 그동안 한·미 간 우주 공조에 차질을 빚은 건 국내 우주 분야 기술력이 충분히 올라서지 않아서다. 미국은 일본과 유럽처럼 우주 분야에 오래 투자해왔고 기술력이 성숙한 나라와만 협력해왔다.
박재문 미래창조과학부 연구개발정책실장은 29일 “지금까지 양국 간 우주기술 협력은 기관별, 현안별로 이뤄져왔지만 이번 협약을 통해 협력기관을 분명히 하고 공동 사업에 대한 법적·제도적 기반을 마련하게 됐다”며 “‘한·미 원자력협정’ 개정에 이어 과거 정부에서 이루지 못한 숙원을 달성했다”고 말했다. 박 실장은 협정이 발효되려면 법제처 심사와 국무회의 심의, 대 酉?재가 등 국내 절차와 미국 정부 내 서명 절차를 거쳐야 한다고 밝혔다. 이르면 6월 중 발효될 전망이다.
한국과 미국 정부 간 우주협력협정은 2010년 추진되다가 중단됐다. 지난해 10월 박근혜 대통령이 미국 순방 당시 미국 항공우주국(NASA) 고다드우주센터를 방문해 양국 간 우주협력을 강조하고 두 나라 정상 간 우주협력협정 체결 추진에 합의하면서 논의가 급진전됐다. 이번에 합의된 문안을 살펴보면 양국은 앞으로 우주과학과 지구관측, 지구과학, 항공, 우주 탐사 등 포괄적 분야의 우주 협력을 추진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했다. 한국 달 탐사는 물론 미국 화성 탐사에 필요한 심(深)우주통신 장비가 수집한 데이터를 교환하고 국제우주정거장(ISS)에서 활동할 한국 우주인 파견 등도 가능해질 전망이다.
한국과 미국은 그동안 우주기술 분야에서만큼은 거리를 유지해왔다. 현재 추진하고 있는 달 탐사 역시 정부 산하기관인 한국항공우주연구원과 NASA 간 협력의향서를 교환하는 등 협력이 산발적으로 이뤄져왔다. 굵직한 우주개발 분야에서 러시아가 한국을 도왔다. 러시아와는 2004년 우주기술협력협정과 2006년 우주기술보호협정을 맺었다. 다목적실용위성 아리랑호와 과학기술위성 등 국산 인공위성의 뿌리가 된 기술은 영국과 유럽, 이스라엘과 공조를 통해 습득했다. 첫 한국 우주인 배출과 우주발사체 분야에서도 협력이 미약했다. 첫 한국 우주인은 러시아 가가린우주센터에서 훈련을 받고 러시아 소유스 로켓을 타고 ISS로 올라갔다. 2013년 전남 고흥 외나로도 나로우주센터에서 발사한 나로호도 러시아와 공동 개발을 통해 쏘아 올렸다. 현재 개발 중인 한국형 발사체(KSLV-2)의 핵심인 엔진 기술을 비롯한 로켓 발사대 핵심 기술들도 러시아 기술과 사촌뻘이다. 우주 분야에서만큼은 친러 성향이 강했다.
황진영 항우연 미래전략본부장은 “이번 한·미 간 협력협정이 체결되면 양국 간 우주 개발사업을 추진하면서 그동안 현안별로 일일이 협약을 맺었던 데서 종합적인 법적 틀이 마련돼 물자 이전, 인력 교류 등을 위한 여러 행정 절차가 대폭 간소화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미래부는 2018년 발사할 달 탐사선과의 교신 문제 해결과 달까지 위성항법 기술 확보에 속도가 붙을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일각에선 협정 체결과 실질적 우주 협력은 별개 문제로 봐야 한다고 주장한다. 양국 간 협정을 맺어도 군수 물자로 전용 가능한 우주 발사체와 위성 기술의 해외 이전을 금지하는 미국 내 전략물자 관련법을 넘어설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또 미국과의 우주개발 과정에서 사고가 발생해도 서로 책임을 묻지 못하도록 한 것도 문제로 꼽힌다. 미국 측이 잘못해도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조항이어서 국민의 동의를 반드시 구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박근태 기자 kunt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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