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의료 한류'의 현장에서

입력 2016-03-03 1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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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호주 < 한양대 국제병원장 hjyoon@hanyang.ac.kr >


무거운 병일수록 누구에게 치료를 맡길 것인지 결정하는 문제는 다른 선택과는 그 무게가 다르다. 생명 앞에서 후회를 남기지 말아야 한다는 점에서다.

20여년 전 일이다. 개인 의원을 운영하던 부부 의사의 부친이 입원했다. 환자는 수술이 불가능할 정도로 진행된 폐암으로 진단됐고, 자녀들은 고민 끝에 미국 MD앤더슨 암센터에 부친의 치료를 의뢰하기로 했다.

그로부터 8개월 뒤 그 부부로부터 미국에서 겪은 의료 통역과 보호자 숙소, 의료비 등 여러 어려움에 대해 들었다. 완치시킬 수 없는 현실에 대한 실망, “그래도 부친에게 최선을 다했다”는 생각이 글썽이는 눈물 속에 함께 담겨 있었다.

시간이 흘러 2001년 가을, 지인으로부터 한 유명 코미디언의 건강 상태를 확인해 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흉부 엑스선 사진을 검토해 보니 수술적 치료가 어려운 폐암이었다. 국내 또는 국외, 어느 병원에서 암 치료를 할 것인지가 큰 관심사였다. 그에 대해 많은 얘기를 나눴다. 환자와 보호자는 미국에서 경험을 쌓은 의사가 있는 국내 의료기관에서 진료받기를 원했다.

이제 “후회 없는 치료를 하겠다”며 萬?의사를 찾는 경우는 보기 드물다. 오히려 많은 외국인이 더 나은 의료서비스를 받기 위해 한국을 방문하고 있다.

지난해 11월 초 필자는 한양대 국제병원장으로서 카자흐스탄을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중앙아시아의 카자흐스탄은 국토 면적이 남한의 27배에 달하는 자원대국으로, 원유 매장량이 세계 17위다. 최근 국제 유가 및 통화 가치 하락 등 어려운 경제상황 속에서도 중증질환 및 암 치료 등 한국 의료에 대한 카자흐스탄 사람들의 신뢰는 대단했다. 카자흐스탄 현지 의료관광 대행사들은 이구동성으로 “한국 의료의 질이 ‘넘버 원’”이라고 했다. 다만 의료 통역 및 음식, 의료정보 제공, 의료분쟁과 의료비 등의 문제점을 외국인 입장에서 보면서 개선하면 좋겠다고 필자에게 부탁했다.

한국은 정부 차원에서 해외 의료관광을 적극 지원하고 있고, 유수 병원들이 해외 환자 유치를 위해 다양한 방법으로 노력하고 있다. 선진 의료기술을 찾아 해외로 나가던 우리가 이제 선진 의료기술을 찾아 한국을 찾은 외국인을 역지사지의 마음으로 돌봐야 하지 않을까. 그것이 치료의 기술을 넘어 치유의 공감으로 가는 진정한 ‘의료 한류’의 길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윤호주 < 한양대 국제병원장 hjyoon@hanyang.ac.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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