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의 맥] 은산분리·개인정보보호 규제 완화해야 핀테크 주권 지킨다

입력 2016-03-03 17:42  

영국 작년 핀테크 통한 매출 11.2조원, 일자리 6만개 창출
자금·기술력 중국 'BAT 3사' 글로벌 핀테크 석권 위협
한국은 굼뜬 행보, 대기업 인터넷은행 참여 허용 필요

이영환 < 건국대 기술경영 금융IT학과 교수 >



‘붉은깃발 규제’에 뜀박질 못하는 핀테크

국제은행 간 통신협회 스위프트는 최근 중국의 핀테크가 세상이 은행업에 대해 생각하는 것을 어떻게 바꿀 것인가란 제목의 백서를 발간했다. 이 백서는 ‘박쥐 3사’(BAT:바이두 알리바바 텐센트)로 불리는 중국 3대 핀테크(금융+기술) 사업자를 주목했다. 박쥐 3사는 막강한 자금력과 사용자를 기반으로 글로벌 핀테크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백서는 “이들이야말로 디지털 뱅킹에 최적화한 인터넷·모바일 플랫폼을 가진 진정한 의미의 첫 번째 디지털은행 기업”이라고 강조한다. 핀테크에 관한 한 미국의 구글이나 애플보다도 파괴력이 크다는 평가다.

핀테크 열풍이 새로운 먹거리 산업으로 떠오르면서 글로벌 금융시장을 뒤흔들고 있다. 지난주 영국은 자국 핀테크산업 현황을 공개했다. 2015년 영국에서 핀테크로 인한 매출은 65억파운드(약 11조2000억원)에 달했고, 새롭게 생겨난 일자리는 6만1000여개에 이른 것으로 나타났다.


글로벌 핀테크 시장에서 두드러진 변화는 중국 기업의 약진이다. 2015년 5월 기준, 시가총액 10억달러(약 1조2000억원)를 웃도는 핀테크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은 36개를 헤아린다. 이 중 1위는 시총 100억달러가 넘는 중국 개인 간 거래(P2P) 대출플랫폼업체인 루팩스다. 창립한 지 4년 남짓 된 스타트업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중국 텐센트의 위챗 월렛은 스탠다드차타드은행과 손잡고 남아프리카 시장에 진출했다. 그러잖아도 아프리카·아시아 국가는 저가 스마트폰을 앞세운 중국 핀테크에 빠져드는 중이다. 위오바오 머니마켓펀드(MMF)를 통해 1년 남짓한 기간에 100조원의 자금을 끌어들이며 세계 최대 MMF 중 하나가 된 알리바바는 자금력을 앞세워 인도 모바일 페이 및 이커머스 최대 기업인 페이티엠을 인수했다.

명동 환전상 사라지게 한 中 핀테크

중국 핀테크 기업 뒤에는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이 있다. 중국 정부는 인터넷전문은행을 허가하고 8개월 만에 사업 인가, 상품 인가, 시스템 보안성 심의까지 마쳤을 정도다. 2014년 3월 박쥐 3사를 민영은행 시범사업자로 선정했으며 2015년 1월 텐센트가 인터넷 전문은행 위뱅크를 개설하면서 종합금융서비스를 시작했다. 이를 기점으로 중국 내 핀테크가 폭발적으로 성장, 글로벌 금융시장의 판도를 뒤흔들 정도가 됐다.

중국 핀테크는 한국에도 진출해 금융결제 질서를 뒤바꾸고 있다. 요우커(遊客:중국인 여행객)를 상대로 알리바바와 텐센트 등이 진출한 뒤 서울 명동의 환전상이 눈에 띄게 줄었다. 명동 거리에서 법인이 운영하는 환전소는 2013년 말 32개에서 2015년 4월에는 19개로 줄었다. 요우커가 쇼핑 등을 하는 데 쓰는 결제 수단이 환전이 필요없는 스마트폰 앱(응용프로그램)으로 급격히 옮겨간 결과다.

한국은 이런 급격한 변화의 흐름에 크게 뒤처져 있다. 지난해에야 인터넷전문은행 두 곳을 예비인가했다. 그나마 본인가는 은행법을 개정해야 하는데 국회에 계류 중인 개정안이 쉽게 처리될 것 같지 않다. 은행법 개정안과 비슷한 크라우드펀딩법은 발의된 지 2년1개월 만에야 통과됐다. 그것도 대출형 크라우드펀딩은 제외되고 증권참여형만 허용된 반쪽짜리 법이다.

이번 은행법 개정안도 ‘반쪽’이다. 61개 대기업의 참여를 불허하고 있다. 소위 ‘은산(銀産) 분리’ 원칙 탓이다. 하지만 삼성전자를 제외하면 대기업이라고 해도 애플 구글은 물론 중국 박쥐 3사와 비교해서도 볼품없이 작다. 인터넷전문은행이나 핀테크기업은 이들 글로벌 거대기업과 맞부딪쳐야 한다. 그런데도 대기업이라며 인터넷전문은행 참여를 차단한 것은 글로벌 시장은커녕 국내시장도 지키지 말라는 얘기와 다름없다.

19세기 영국에서 자동차가 처음 선보였을 때 위험하다며 운행을 제한해야 한다고 주장한 사람들이 있었다. 그래서 제정된 법이 1865년의 소위 ‘붉은 깃발법’이다. 이 법에 의하면 자동차는 붉은 깃발을 들고 앞에서 걸어가는 사람이 있어야만 운행할 수 있었다. 시내 제한 속도는 어른이 걷는 속도보다 느린 시속 3.2㎞였다. 혁신의 산물인 자동차를 몰고 나올 생각을 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이런 법 아래에서는 자동차 기술이 발전할 수 없다. 산업자본의 금융업 사유화 위험을 내세우며 공공의 이익을 위해 원천 차단해야 한다는 논리는 ‘붉은 깃발법’의 논리와 비슷하다.

이와 비슷한 규제법은 더 있다. 27개에 달하는 개인정보 관련 법이다. 이들 법은 개인정보가 유출되면 위험하다는 단순 논리에 따라 모든 개인정보의 활용을 원천적으로 차단한다. 한국은 두 가지 점에서 가장 강력한 개인정보 보호법을 갖고 있다.

대기업 제한은 손발 묶는 악수

첫째, 활용 가능한 모든 개인정보는 당사자의 사전 동의를 받도록 규정하고 있다. 사전 동의 없이 받을 수 있는 서비스는 없다. 그런데 사전 동의만 받으면 서비스 사업자는 면책받고 사용자에게 모든 책임이 전가된다. 아이러니컬하게도 강력한 법이 사업자에게는 동의만능주의를 초래하게 되고 사용자에게는 손해만 끼친다.

둘째, 개인정보를 제3자에게 제공할 때는 해당 정보의 주인공이 누구인지 알 수 없도록 해야 한다. 다른 정보와 쉽게 결합해 주인공을 알아낼 수 있다면 해당 정보를 제공한 자는 범법자가 된다. 예컨대 ‘홍길동’의 사진을 제3자에게 제공할 때 사진의 주인공이 누구인지 식별할 수 있으면 안 된다. 비식별화 방법으로는 사진을 잘게 조각 내는 방법이 있지만 그것도 완벽하지는 않다. 현재 기술로는 식별이 불가능하다 할지라도 수년 뒤 인공지능처럼 강력한 미래 기술을 적용하면 가능할 수도 있다. 기술은 우리가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더 빨리 진화하고 있다.

개인정보 활용이 경쟁력 좌우

일반의 인식과는 달리 개인 식별이 가능한 정보의 유育?위험한 것만은 아니다. 예컨대 부실대출 위험이 큰 저축은행이나 대부업체는 저신용 등급자에게 ‘약탈적 고금리’를 물린다. 이런 업체에 다양한 개인정보를 충실하게 제공할 수 있다면 중금리 시장을 확대할 가능성이 있다. 정보 분석만으로 채무자의 변제 능력을 파악해 적정 수준의 대부금액을 결정할 수도 있다. 이것이 크라우드펀딩이나 인터넷전문은행 등의 서비스에 전문가와 당국이 기대를 거는 이유다. 당연히 인터넷전문은행 예비인가를 받은 두 컨소시엄도 중금리 시장을 타깃으로 하고 있다.

문제는 현행 개인정보보호법 제도 아래에서는 중금리 시장의 안착을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이다. 개인정보 유통이 원천 차단됐기 때문이다. 한국신용정보원이 있지만 신용정보 외에 대부분의 개인정보는 유통 불가다. 인터넷은행 손발을 묶고 눈까지 가린 채 경쟁력을 키우라는 얘기와 다름없다. 이대로라면 한국 금융산업은 국내시장도 제대로 지키지 못한 채 고사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금융에도 주권(主權)이 있다면 ‘금융주권’을 심각하게 걱정해야 할 상황이다.

이영환 < 건국대 기술경영 금융IT학과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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