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페북도 가세…불붙는 애플 vs FBI '프라이버시 전쟁'

입력 2016-03-04 19:13  

[ 이상은 기자 ] 1993년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은 전화기 등 통신수단에 의무적으로 ‘클리퍼 칩’을 넣는 방안을 추진했다. 클리퍼 칩은 스킵잭이라고 불리는 암호화 알고리즘을 담은 집적회로(IC)다. 이 칩을 넣으면 메시지를 암호화해 전달할 수 있지만, 법원 허가를 받은 정부기관은 이 암호를 풀어 메시지를 읽을 수 있다. 정부기관 전용 백도어(뒷문) 칩인 셈이다.

미국 실리콘밸리의 정보기술(IT) 기업들은 정부의 이런 구상에 격렬히 반대했다. 시민단체도 가세해 정부와 ‘암호화 전쟁’을 벌였다. 결국 정부는 일종의 만능 키인 클리퍼 칩을 의무화하는 대신, 연방정부 산하기관과 같은 ‘신뢰할 만한 제3의 기관(TTP)’이 암호를 풀어볼 수 있도록 하는 타협안으로 후퇴했다. 당시 클리퍼 칩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던 기관이 애국법을 바탕으로 무차별 도·감청을 하다가 에드워드 스노든의 폭로로 크게 곤욕을 치른 미국 국가안전보장국(NSA)이다.

올 들어 애플과 미국 연방수사국(FBI)은 샌버너디노에서 총을 마구 쏘아 14명을 살해한 뒤 사살당한 테러범의 아이폰을 놓고 대립하고 있다. FBI는 아이폰 잠금해제 기능의 여러 문제점(10번 이상 틀리면 자료가 전부 삭제될 가능성 등)을 우회할 수 있는 뒷문 프로그램을 만들라고 요구하고 있고, 애플은 반대한다.

20년 전과 사건은 비슷한 양상으로 흘러가고 있다. IT 업계는 일제히 반대하고 나섰다. 지금 구도는 애플 대 FBI가 아니다. 애플 경쟁자인 구글과 페이스북 마이크로소프트(MS) 모질라 에버노트 스냅챗 드롭박스 등 10여개 인터넷 회사는 3일 애플을 지지하는 내용의 전문가 의견서를 법원에 제출했다.

법률적 정당성에 대한 논의도 기시감을 자아낸다. 미국 연방지방법원은 지난달 16일 애플에 대해 FBI에 협조하라고 명령했다. 근거는 ‘모든 영장법(All Writs Act)’이다. 1789년 조지 워싱턴 대통령이 서명한 이 법은 연방법원이 다른 어떤 방법도 유효하지 않을 때, 이 법에 근거해 명령을 내릴 수 있다는 천하무적 법안이다.

그동안 이 법이 사문화됐다는 보도가 많지만,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1977년에도 FBI는 한 번 이 법안을 써먹은 적 있다. FBI는 불법 도박모임 혐의자들의 전화를 도청하기 위해 뉴욕통신에 관련 장치를 설치할 수 있도록 강제해 달라고 요청했고, 대법원은 그 요구를 받아들였다.

물론 애플과 뉴욕통신이 완전히 같은 상황은 아니다. 우선 애플은 (1977년 상황과 달리) 모든 영장법과 충돌하는 다른 법안이 존재하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뉴욕 브루클린 연방지방법원의 제임스 오런스타인 판사는 지난달 29일 마약범 수사와 관련한 재판(샌버너디노 사건과 별개)에서 이 같은 애플의 논지를 인정하?1심 판결을 내렸다.

컴퓨터 코드의 ‘표현의 자유’ 문제도 새롭게 제기된 쟁점이다. 1999년 미국 법원은 컴퓨터 코드를 ‘발언(speech)’의 일종임을 인정했다. 표현의 자유를 가질 수 있는 주체라는 뜻이다. 이 경우 FBI의 주장대로 뒷문 프로그램을 만들라는 강요는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헌법에 위배되는 행위에 해당한다.

세계의 이목이 쏠리면서 비슷한 사건들이 잇달아 등장하고 있다. 최근 브라질 수사당국은 마약거래 관련 정보를 내놓으라며 페이스북의 남미 임원을 체포했다. 애플 대 FBI 사건에서 힌트를 얻지 않았다고 말하긴 어려울 것이다. 미국에서 지루한 공방전 끝에 애플이 표현의 자유를 획득한다 해도 모든 나라에서 똑같이 할 수 있다고는 장담하기 힘들다. 21세기판 클리퍼 칩이 부활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려워졌다.

이상은 기자 sel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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