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 왜곡 교정 위해 인내 강조한 하이에크의 조언 계속 되새겨야
안재욱 < 경희대 교수·경제학 jwan@khu.ac.kr >
이달 23일은 프리드리히 하이에크 서거 24주년이다. 그가 다시 생각나는 이유는 요즘의 세계 경제 상황 때문이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생한 지 7년이 지났다. 그동안 미국을 비롯한 각국은 불황을 치유하고자 천문학적인 돈을 쏟아부었다. 금리를 거의 제로(0) 수준으로 낮추고, 그것도 모자라 비(非)전통적 통화정책 수단인 양적 완화를 통해 통화를 대폭 풀었으며, 엄청난 재정을 투입했다. 그러나 경제는 여전히 침체 상태다.
경기가 살아나지 않는 이유는 불황의 원인에 대한 진단이 잘못됐기 때문이다. “불황의 원인이 총수요 부족 때문이고, 총수요를 진작시키기 위해서는 확장정책을 써야 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2008년 금융위기는 총수요 부족 때문에 온 게 아니다. 실제로 2008년 금융위기가 발생하기 이전 상황을 보면 세계적으로 소비와 투자가 증가하고 있었다.
하이에크는 일찍이 “불황의 원인은 잘못된 투자 때문이며 잘못된 투자는 정부의 인위적인 금리 인하로 인해 발생한다”며 “그 해결책은 잘못된 투자가 교정되도록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이에크가 주장한 경기순환이론의 내용은 대략 이렇다. 인위적인 금리 하락은 기업이 차입을 통해 장기 프로젝트에 투자하도록 유도하고, 소비자가 대출을 받아 전에 사기 어려웠던 주택이나 자동차 등을 구입하도록 이끈다. 그렇게 되면 잠시 동안 경제가 붐을 이룬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실질적인 자본 축적이 없는 상황이기 때문에 붐은 지속되지 못하고 붕괴되며 불황이 뒤따른다. 불황은 잘못된 투자로 인한 시장 왜곡을 고치라는 신호기 때문에 고통스럽지만 정부가 개입하지 말고 시장의 왜곡이 교정되도록 기다려야만 한다. 그것이 불황에서 빨리 벗어나는 길이다.
1920년대 독일의 하이퍼인플레이션을 경험한 하이에크는 1927년 루트비히 폰 미제스와 함께 경기순환연구소를 설립하고 위와 같은 경기순환이론을 발표했다. 아울러 이 이론을 바탕으로 케인스 이론에 내재해 있는 경제계획과 개입주의에 대해 비판했다.
시대 상황에 따라 자신의 입장을 바꾸는 것에 능숙했던 케인스는 이 같은 비판을 신중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대충 얼버무리면서 넘어갔다고 한다. 케인스가 1936년 고용, 이자 및 화폐의 일반이론을 출간했을 때도 하이에크는 그가 또다시 입장을 바꾸리라 믿어 이 책에 대해 체계적으로 반박하지 않았다가 나중에 크게 후회했다고 한다.
케인스의 처방을 따랐음에도 불구하고 1930년대 대공황이 14년이나 지속됐다는 사실은 많은 것을 시사한다. 하이에크의 처방을 따랐다면 대공황 기간이 훨씬 짧았을지도 모를 일이다.
1970년대 스태그플레이션(경기 침체 속 물가 상승)을 촉발시킨 것은 분명 유가 폭등이었다. 그러나 스태그플레이션의 근본적 원인은 정부의 확장정책에 있었다. 유가 폭등은 통화 증가에 따른 붐-버스트(호황-불황)를 가중시켰다는 것이 더 정확하다.
그것은 당시 미국의 통화증가율을 보면 파악할 수 있다. 1970~1980년 미국의 통화증가율은 연평균 10.99%였다. 제1차 스태그플레이션 직전인 1970~1973년의 통화증가율은 연평균 12.23%나 됐고, 1974년에 7.85%로 잠시 낮아졌다가 1975년부터 다시 증가해 1975~1980년 연평균 10.70%에 달했다.
1970년대 스태그플레이션은 로널드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과 마거릿 대처 전 영국 총리와 같은 지도자가 나와서 하이에크의 조언에 따라 시장에 대한 정부의 개입을 줄이고, 통화 관리를 엄격하게 시행하면서 해결됐다. 이는 매우 잘 알려진 사실이다.
봄이 오는 3월 하이에크는 이 세상을 떠났다. 하지만 하이에크는 경제에 봄을 가져다줄 수 있는 귀중한 유산을 남겼다. 세계 경제가 불황에서 벗어나는 길은 하이에크에게 있다.
안재욱 < 경희대 교수·경제학 jwan@khu.ac.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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