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속 숨은 경제이야기] 도시의 탄생에 숨은 경제 원리

입력 2016-03-07 07:00  


UN 경제사회국(DESA)에서 발표한 2012년 유엔도시보고서에 따르면, 현재 전 세계 인구의 절반 이상이 도시에 살고 있으며, 매달 500만 명에 가까운 인구가 도시로 이주하고 있다. 이러한 추세를 감안할 때, 머지않아 도시는 인류의 보편적인 거주지역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추세는 우리나라 역시 예외일 수 없다. 우리나라의 도시화는 1960년대 이후 산업화로 농촌지역 거주민들이 일자리를 찾아 도시로 활발히 이동하면서 빠르게 진행되었다. 도시화는 점차 빨라져 1970년대 말에 50%, 1990년대의 75%를 지나 현재 90%가 넘는 수준의 도시화율을 보이고 있다. 거의 대부분의 인구가 도시에 거주하고 있는 셈이다. 그렇다면 오늘날 인류의 가장 보편적인 거주지역이 될 도시는 도대체 언제부터 어떠한 이유로 형성되기 시작했을까?

직업의 전문화 이후 잉여 생산물 교환

도시의 형성과 발달과정에 대해 구체적으로 서술하기에 앞서 도시에 대한 명확한 정의부터 살펴보자. 도시란 일반적으로 ‘일정한 지역에 정치·경제·문화의 중심이 되는 사람이 대거 함께 모여 사는 곳’을 지칭한다. 이를 보다 명확히 계량화하여 표현하자면, 우리나라의 경우 학술岵막?인구 5만명 이상이 거주하고 상업·공업 등에 종사하는 가구 비율이 50% 이상이 되면 공간을 지칭한다. 오늘날 대부분의 사람들은 바로 이러한 공간에 모여살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많은 사람이 도시에 모여 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도시가 형성된 가장 근본적인 이유에 경제원리가 숨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은 듯하다. 도시의 탄생은 생산활동의 변화로부터 기인한다. 과거 원시시대 자급자족하며 살아가던 시절에는 굳이 함께 모여 살 필요가 없었다. 엄밀히 말하면 함께 모여 살면서 도시를 형성할 경우 오히려 경제적 손실만 더 커질 가능성이 높았다. 함께 모여 살 경우 도난의 위험성도 그만큼 더 커질 뿐만 아니라 위생상의 문제도 커진다. 또한 땅값이 상승하기 때문에 거주비용이 추가로 발생하거나 농산물 생산에 투여된 비용이 높아져 오히려 자급자족마저 어려워지는 경우도 발생한다. 따라서 자신이 필요한 물건을 스스로 조달하며 살아가는 경제시스템에서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모여 사는 것은 이익보다 비용이 더 많이 유발되는 행위였던 것이다.

하지만 신분제도의 등장과 함께, 신분과 출신 지역에 따라 각각 상이한 경제활동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생겨나기 시작했으며, 그 과정에서 직업의 전문화 내지 분업화가 등장하면서 상황은 전혀 달라졌다. 개별 경제주체들은 각자 특정 생산활동에만 전념하기 시작했고, 이러한 전문화를 통해 추가로 얻은 잉여생산물을 다른 사람들과 교환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훨씬 풍요롭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이 과정에서 서로 생산물을 교환하며 살기 위해서는 함께 모여 사는 것이 훨씬 편리했다. 다시 말해 많은 사람들이 함께 모여 사는 것이 교환경제 하에서는 거래비용을 낮춰 비용보다 혜택이 더 많은 상황으로 변했던 것이다.

서로 다른 자연조건, 부족한 자원은 교역으로 해결

이런 과정을 거쳐 특정 지역에 도시를 형성하여 함께 살기 시작한 사람들은 모든 도시가 동일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각각의 도시들은 기후, 지정학적 위치, 토양 등의 차이로 인해 좀 더 수월하게 생산할 수 있는 물품들이 달랐던 것이다. 즉, 특정 도시는 농산물을 얻기 수월하지만, 다른 도시는 수산물을 얻기 수월하고, 또 다른 곳은 가축을 사육하기 수월한 것이다. 도시마다 생산활동 측면에서 상이한 비교우위 품목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자 도시는 다양한 형태로 진화·발전하기 시작했다.

가장 초창기 도시라 할 수 있는 4대 문명은 모두 비슷한 자연조건을 가진 곳에서 태동하였다. 이들 초기 문명은 넓은 평야와 식수를 쉽게 조달할 수 있는 강을 인접하고 있는 지역에서 출발했다. 하지만 이후 새로이 출범한 도시들은 전혀 다른 자연조건 속에서 출발했다. 어떤 도시는 사막 한가운데에 위치하기도 했고, 또 다른 도시는 고산(高山)지역에 위치하기도 했다. 이들 신규 도시는 4대 문명이 출범했던 비옥한 지역보다는 정주여건이 척박한 곳이었지만, 여타 도시와의 교역을 통해서 자신들이 부족한 물품을 거래로 조달하며 살아갈 수 있었다.

기원전 3000년경 페니키아인들은 염료를 생산할 수 있는 지역에 도시를 형성하고 교역을 통해 살아가기 시작했다. 도시국가로 유명한 아테네 역시 교역 없이는 도시를 형성하기 어려운 지역이었다. 아테네는 가내수공품과 올리브제품을 주로 생산했고, 기타 필요한 물품은 여타 지역과의 교역을 통해 조달했다. 이 밖에 베니스·제노바 등 역사가 깊은 고대 도시들 중에는 교역 없이는 형성되기 어려운 경우가 많았다. 결국 도시 간의 교역은 다양한 지역에 도시가 출범할 수 있게 만들어주었던 가장 큰 원동력이 되었다.

도시 간의 교역 규모가 점차 커지고, 넓어지면서 별다른 생산 기반 없이 교역 기능 내지 중개무역 기능만을 수행하는 도시들도 출범하기 시작했다. 도시 간 원거리 교역이 발달하기 시작하면서 많은 상인들은 중간에 쉬었다 갈 지역이 필요하게 되었고, 이러한 필요에 부합하여 교역 도시들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들 교역 도시는 숙박 기능뿐만 아니라 보험·대출·투자 등의 새로운 기능을 함께 수행하는 형태로 진화·발전하기 시작했다. 직접적인 생산 기반에 근거하지 않고도 도시가 형성될 수 있는 환경에 직면하게 된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도시형성 과정을 미국이라는 나라가 발달하는 과정에서 다시 한번 목격하게 된다. 초기 미국의 주요 도시는 뉴욕을 비롯한 동부 해안가를 중심으로 형성되었거나 오대호 연안지역을 중심으로 형성되었다. 이후 특정 농산물 생산에 유리한 일부 내륙지역에 도시가 형성되기 시작했고, 이들 내륙지역 도시들은 동부 해안 도시들과의 교역을 통해 필요한 물품을 조달하기 시작했다. 다시 미국이 서부 해안 지역까지 개발하기 시작하면서, 미국 중앙에는 교역 도시들이 형성되기 시작했던 것이다.

이상에서 언급한 일련의 역사적 사례들은 도시의 형성과 발달 과정에서 경제적 요인이 얼마나 중요하게 작용했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할 것이다. 어쩌면 오늘날 우리가 도시로 거주지를 이전하는 이유 또한 경제적인 이유라는 점을 떠올려보면 앞으로도 도시 형성과 발달의 가장 주된 요인은 경제적인 측면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박정호 KDI 전문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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