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역대 퍼스트레이디 중 가장 존경받는 인물이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의 부인 엘리너일 것이다. 우아하면서 검소했고, 지적이면서 겸손했다. 1948년 UN 총회의 미국 대표로 세계인권선언을 만장일치로 이끌어냈다. 그는 “자신을 다룰 때는 머리로, 남을 다룰 때는 가슴으로 하라” 등 명언도 많이 남겼다.
린든 존슨 대통령의 부인 ‘레이디 버드’는 남편보다 더 미국인의 사랑을 받았다. 그는 의회 연설까지 해가며 고속도로미화법(일명 레이디버드법), 인권법 제정에 앞장섰다. 평생 자연보호에 열정을 쏟아 본명(클라우디아)보다 어릴 적 애칭(버드)으로 불렸다. 고향 텍사스주 오스틴에는 그가 세운 야생화센터가 있다.
하지만 퍼스트레이디가 다 이런 모습은 아니다. 케네디의 부인 재클린은 그리스 선박왕 오나시스와 재혼해 세계적인 가십거리가 됐다. 링컨의 부인 메리 토드는 까칠한 성격과 사치로 유명했다. 쿨리지의 부인 그레이스는 성심리학 용어인 ‘쿨리지 효과’로 더 회자된다. 그레이스가 수탉이 하루 12번 교미한다는 사실을 대통령에게 전해주라고 하자, 쿨리지는 “매번 같은 암탉과 교미하지 않는다고 전해라”고 되받았다고 한다.
프랑스의 퍼스트레이디들은 화젯거리가 될 때가 많다. 사르코지 대통령의 부인 세실리아는 2007년 남편의 취임 닷새 만에 정식 이혼하고 엘리제궁을 스스로 나갔다. 사르코지는 가수 믹 재거의 연인이던 슈퍼모델 출신 카를라 브루니와 재혼했다. 올랑드 대통령은 특유의 바람기로 인해 한때 퍼스트레이디 교체설이 돌았다. 전처인 루아얄을 환경부 장관에 앉힌 것도 다른 나라에선 상상하기 힘들다.
퍼스트레이디란 호칭은 1877년 헤이스 대통령 취임 때 언론을 통해 대중화됐다. 미세스 프레지던트로도 불리는데, 여기엔 국정에 지나치게 간여한다는 부정적 뉘앙스가 담겨 있다. 그래도 미국에선 1988년 오하이오주에 퍼스트레이디 도서관을 건립해 줄 정도의 경의는 표한다.
한국에서 퍼스트레이디는 영부인(令夫人)이다. 본래 남의 아내를 높여 부르는 말이 대통령 부인의 호칭으로 굳어졌다. 일본에서도 총리 부인을 영부인으로 부른다.
레이건 대통령의 부인 낸시 여사가 94세를 일기로 타계했다. 마약 퇴치운동에 앞장섰고, 알츠하이머로 투병한 남편을 헌신적으로 간호해 깊은 인상을 남겼다. 옷차림에 너무 신경쓴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장애 어린이를 접견할 때 무릎을 꿇고 안아주며 “이제 우리 키가 꼭같구나”라고 했던 일화도 있다. 고인의 명복을 빈다.
오형규 논설위원 oh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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