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GE 가치 낮게 봤지만
과감한 베팅 나선 하이얼에 프리미엄 시장 도전 받게 돼
SK, 글로벌 경쟁사들 주저할 때 OCI머티리얼즈 인수로 '성과'
미래에셋, 한투와 다른 셈법으로 대우증권 인수…업계 1위 등극
[ 정영효 기자 ] ▶마켓인사이트 3월 9일 오전 6시12분
지난 1월15일 중국 하이얼이 승리를 확정짓기 직전까지만 해도 제너럴일렉트릭(GE) 가전사업부 인수전의 승자는 아르셀릭이라는 터키 가전회사였다. 하이얼에 앞서 1월 우선협상대상자에 선정되자마자 ‘발명왕 에디슨이 세운 GE 가전사업부를 인수했다’며 내부 발표를 했을 정도다. 그때까지만 해도 아르셀릭은 물론 다른 인수경쟁사들도 하이얼이 막대한 자금력 외에 비장의 무기를 또 하나 갖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이겼다” 내부 발표까지 했지만
하이얼의 극적인 뒤집기는 세계 최대 사모펀드(PEF) 가운데 하나인 KKR 덕분이었다. KKR 최고위 관계자가 제프리 이멜트 GE 회장에게 직접 “가전사업부를 하이얼에 팔아달라”고 요청한 것이 결정적이었다. 미국 PEF인 KKR이 중국 가전회사의 손을 들어준 이유는 하이얼 지분 10%를 보유한 주요주주이기 때문이었다.
GE와 KKR의 오랜 협력 관계를 고려할 때 이멜트 회장으로서도 KKR의 요청을 무시하기 어려웠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GE는 2006년 KKR과 손잡고 제너럴모터스(GM)의 금융 자회사 인수전에 뛰어들었고, 2014년 자사 금융부문을 정리할 때는 KKR이 GE캐피털의 호주·뉴질랜드 소비자금융사업부를 인수해주기도 했다. 기업 인수합병(M&A) 세계에서 마지막 순간 결과가 뒤바뀌는 것은 드문 일이 아니다. 투자은행업계 전문가들은 GE 가전사업부 인수전에서 한국 기업이 새겨야 할 부분은 따로 있다고 말한다. ‘나에게 인수가치가 낮은 기업일지라도 경쟁사엔 엄청나게 높을 수 있다’는 것. 그로 인해 경쟁사의 강력한 도전에 직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알려진 대로 GE 가전사업부 인수전에는 삼성전자도 참여했다. 하이얼의 인수가격이 54억달러로 알려지자 국내 가전업계 반응은 대체로 “그 가격이면 안 사는 게 낫다”는 것이었다. 재무제표 등을 토대로 밸류에이션(기업가치)을 따졌을 때 5조원이 넘는 거금을 들여 살 만한 회사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지난해 말 스웨덴 일렉트로룩스가 사기로 했을 때 합의한 가격이 33억달러였기 때문에 하이얼이 무리했다는 반응이 많았다.
하지만 이 같은 셈법은 글로벌 M&A가 몰고 오는 시장의 판도 변화를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결과라는 게 IB업계의 지적이다. 인수주체가 ‘값싼 중국산’ 이미지를 가진 중국 하이얼이어서 더 그렇다.
하이얼은 전자산업의 원조 격인 GE 브랜드를 앞세워 글로벌 시장에서 단숨에 삼성·LG전자를 위협할 수 있는 위상을 확보했다. ‘싸구려 자동차회사’ 이미지였던 인도 타타자동차가 재규어와 랜드로버를 인수해 단숨에 브랜드파워를 끌어올린 사례가 전자업계에서 그대로 재현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삼성전자에는 분명 54억달러만큼의 가치가 없는 회사였는데 경쟁사, 그것도 후발주자로 한국 기업이 선점한 시장을 노리는 중국 경쟁사가 사버리니 그 이상의 가치가 될 수 있는 것이다.
한 외국계 증권사 대표는 “경쟁사가 사서 우리 시장을 잠식할 때의 가치까지 따져봐야 하는데 상투적인 밸류에이션의 산식에 갇힌 느낌이 든다”며 “기업가치를 고깃덩어리 무게를 재듯이 단순 저울에 올려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경쟁사가 살 때 가치까지 따져야
국내 화학산업에서도 비슷한 사례가 있었다. SK그룹이 지난해 11월 OCI머티리얼즈(현 SK머티리얼즈)를 인수하면서 이 회사가 재조명받은 것이다. OCI머티리얼즈는 반도체 제조에 필요한 삼불화질소(NF3)를 생산하는 회사다. 세계 삼불화시장의 40%를 점유하는 세계 1위 업체다. OCI그룹이 구조조정을 위해 M&A 시장에 내놨지만 글로벌 화학회사들이 입질만 할 뿐 좀처럼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다. 매물로 나온 뒤 주가가 두 배 가까이 뛰었기 때문이다. 다들 입맛만 다시고 있을 때 SK그룹은 OCI머티리얼즈를 전격 인수해 SK하이닉스와의 시너지 효과를 톡톡히 거둘 수 있게 됐다는 평가를 받았다.
지난해 말 KDB대우증권 공개 매각 때도 비슷한 양상이 빚어졌다. 미래에셋증권은 한국투자증권보다 2000억원가량 많은 2조3800억원대의 금액을 써내 대우증권을 품에 안았다. 2000억원의 차이는 양사가 각자 대우증권 인수 시 기대할 수 있는 시너지의 격차였다.
한국투자는 아쉬움을 금치 못했지만 “재입찰하더라도 미래에셋이 제시한 금액은 써내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인수 주체에 따라, 향후 전략에 따라 셈법이 얼마든지 달라질 가능성이 있다는 점을 보여주는 사례다.
정영효 기자 hug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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