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별 납세실적 내년부터 제출
올 하반기 한·미 조세교환 협정도 발효돼
몰랐던 외국기업 거래내역 상세 파악 가능
[ 임원기/남윤선 기자 ]
내년부터 해외에 진출한 한국 대기업의 세무조사 부담이 크게 늘어날 전망이다. 국내에 들어와 있는 구글, 애플 등 외국 기업에 대한 한국 국세청의 조사도 정교해진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다자간 조세 협정에 서명한 국가들이 내년부터 다국적 기업의 국가별 실적 보고서(CBCR)를 제출하기 때문이다.
9일 기획재정부와 국세청에 따르면 내년 말까지 매출 1조원 이상인 한국 기업은 해외 전체 법인의 실적 및 현금 흐름, 세금 납부 기록 등에 대한 CBCR을 국세청에 제출해야 한다. 실적은 2016회계연도 기준이다.
기재부와 국세청은 연말까지 법률에 관련 근거를 마련하고 내년부터 본격적으로 시행하기 위한 입법 절차에 들어갔다. 지난해 11월 OECD 회의에서 20여개 국가가 ‘다국적 기업의 국가 간 소득 이전에 따른 세원 잠식(BEPS)’에 대한 대응으로 다국적 기업의 국가별 실적 보고서를 교환하기로 합의한 데 따른 후속 조치다.
내년 말까지 기업들이 해외 법인의 이익 및 납세 퓽?등에 관한 상세 보고서를 제출하면 한국 국세청은 이를 미국, 일본 등 다른 국가 국세청과 교환한다. 즉 한국 국세청이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등으로부터 제출받은 CBCR을 미국 국세청이 애플, 구글 등으로부터 제출받은 CBCR과 교환하는 식이다.
CBCR 교환이 시작되면 해외에 진출한 한국 대기업이 현지 세무당국으로부터 세무조사를 받는 부담이 크게 늘어날 것이라는 예상이 나온다. 다국적 기업의 해외 자산 정보뿐 아니라 소득 및 영업활동, 비용 이전 등 그동안 각국 국세청이 파악하지 못한 마지막 퍼즐 조각이 맞춰지기 때문이다.
국세청, 삼성·현대차 자료 美에 주면
미국은 애플·구글 등 경영실적 제공
물론 한국에 진출한 다국적 기업에 대한 한국 국세청의 조사도 훨씬 쉬워진다.
예를 들어 법인세율이 높은 A국가에서는 영업이익률이 2%에 불과하지만 법인세율이 낮은 B국가에서는 15%의 높은 영업이익률을 내고 있는 한 기업이 있다고 하자. 이 기업이 세금 부담을 줄이기 위해 소득이나 비용을 특정 국가로 몰아줘도 지금까지는 파악하기 힘들었다. 그러나 다국적 기업의 국가별 실적 보고서(CBCR) 교환이 시작되면 그런 세금 회피 노력을 알아내기 수월해진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CBCR을 한국과 미국이 교환하면 그동안 한국 대기업의 한국 본사 및 다른 해외법인 실적에 대해 모르던 미국 국세청이 상세내용을 전부 파악할 수 있게 된다”며 “이 회사의 소득 및 비용 이전, 국가 간 거래 실적 등을 한눈에 알게 되면 세무조사의 강도나 정교함의 수준이 훨씬 높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CBCR이 올 하반기 시행되는 한·미 조세정보교환협정이나 내년에 발효되는 CRS(OECD 자동정보교환협정)와 결합하면 더욱 강력한 힘을 발휘할 것이라는 게 국세청의 설명이다.
국세청 관계자는 “CRS 등은 각국에 흩어져 있는 다국적 기업의 계좌 및 자산 정보는 알 수 있지만 매년 발생하는 소득 정보를 알 수는 없기 때문에 세무조사에서 활용할 때 제약이 많다”며 “하지만 CBCR과 결합하면 소득과 비용, 국가 간 이전에 대한 정보까지 종합적으로 파악할 수 있게 된다”고 설명했다.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LG전자 등 해외법인이 많은 국내 대기업은 전담 팀을 꾸리는 등 CBCR 교환에 대한 대책 마련에 나섰다.
전자업계 관계자는 “사내 세무팀에서 다른 국가의 사례를 조사하는 등 준비하고 있다”며 “앞으로 해외법인의 실적 등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내부적으로 검토도 시작했다”고 전했다.
■ BEPS
다국적 기업의 국가 간 소득 이전에 따른 세원 잠식(base erosion and profit shifting).그동안 구글과 아마존, 애플 등 다국적 기업의 상당수가 세율이 높은 나라에서 수익을 얻고 낮은 나라로 옮기는 방식으로 조세를 회피한다는 지적을 받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BEPS로 인한 세수 감소분이 매년 세계 법인세수의 4~10%에 이른다. 지난해 11월 OECD 회의에서는 BEPS를 방지하기 위해 다국적 기업의 국가별 실적 보고서(CBCR)를 교환하기로 합의했다.
세종=임원기/남윤선 기자 wonki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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