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청업체 존폐 기로…대기업 협력사 발주 '뚝'
만성 인력난 업체도 감원…"덤핑 경쟁으로 버틴다"
확산되는 충격파…현대중공업 협력사 64곳 폐업
일자리 줄자 부동산 휘청…울산 원룸 '급매' 쏟아져
[ 김낙훈 / 하인식 기자 ] 대기업 부진의 충격이 중소기업과 자영업자로 확산되고 있다. 아래로 내려갈수록 파장은 더 커지는 양상이다. 대기업이 휘청거리자 소규모 하도급업체와 음식점 등 자영업체는 아예 존폐 기로에 섰다. 대기업발(發) 불황이 바닥 경기를 꽁꽁 얼게 하는 일종의 ‘역(逆)낙수효과’가 나타나고 있다.
◆일감 부족으로 덤핑 경쟁까지
40여개 도금업체들이 모여 있는 인천의 한 도금단지에는 평일 오후에도 생산설비 가동을 중단하는 기업들이 허다하다. 기계·전자부품 도금을 하는 K사장은 “오후만 되면 일감이 없어 기계를 멈춰 세운다”며 “그동안 10여명의 인력을 유지하면서 일감을 찾았지만 주문을 거의 받지 못해 올 들어 두 명을 내보냈다”고 말했다.
도금업은 사람 구하기가 어려운 업종이다. 외국인 근로자조차 도금업을 기피할 정도다. 그런데도 사람을 줄이는 것은 대기업 협력사들의 발주 감소가 그만큼 크기 때문이다. 단지 내 S사장은 “40여개 입주 기업 중 최근 1년 새 근로자를 줄인 업체가 10개를 넘는다”고 말했다.
주물이나 열처리 등 다른 뿌리산업(주조 도금 등 기초 공정사업)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지방의 열처리 업체 K사는 요즘 전기로 30여대 가운데 20대만 돌리고 있다. 송재희 중소기업중앙회 부회장은 “3년 전만 해도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양극화가 화두였는데 지금은 대기업이건 중소기업이건 모두 다 힘든 상황”이라고 말했다.
글로벌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대기업 생산라인이 대거 해외로 빠져나간 것도 일감 기근의 원인이다. 휴대폰 부품을 가공하는 반월산업단지의 한 전자부품업체는 지난해 60% 선이던 가동률이 올 들어 50% 수준으로 떨어졌다. 이 회사의 H사장은 “대기업의 해외 이전과 내수 부진이 겹쳐 휴대폰 부품업체들이 위기의식을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일부에서는 제살깎기 경쟁도 치열하다. 경기 부천의 금형업체 L사장은 “공장을 돌려야 한다는 절박감 때문에 덤핑수주 등 출혈경쟁까지 벌어지고 있다”고 했다.
◆확산되는 불황의 그림자
대기업발 불황이 가장 확연하게 드러나고 있는 곳은 조선업계다. 국내 대기업들이 줄줄이 사상 최대 적자를 기록하면서 지역 경제 전반에 충격을 주고 있다. 울산 조선협력사대책위원회에 따르면 지금까지 현대중공업 사내협력업체 300여곳 중 64곳이 燦颱煞? 하도급업체 직원 1600명이 110억원에 달하는 임금을 받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 협력업체는 대형 조선회사와 달리 마땅한 자구책을 세울 수도 없어 줄도산 우려까지 나온다.
현대중공업이 연속 적자를 내고 관련 조선 협력업체 직원들도 일자리를 잃으면서 인근 부동산 시장도 송두리째 흔들리고 있다. 현대중공업에서 가까운 일산해수욕장 일대에는 부동산 중개업소마다 원룸·주택 ‘급매’ 전단이 빼곡히 붙어 있다. A중개업소의 김태식 사장(49)은 “2년 전만 해도 웃돈을 주고도 원룸 매물 찾기가 힘든 곳이 울산 동구였는데 지금은 정반대”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인근 D공인중개소 관계자도 “조선경기가 호황일 때는 현대중공업에서 근무하는 협력업체 근로자만 1만명을 넘었지만 지금은 그때의 30%도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음식점 상가 등 인근 자영업체들은 고사 직전까지 몰렸다. 울산 동구청 관계자는 “지역 경기 활성화를 위해 올해 처음 실시한 소상공인 경영안정지원자금 15억원이 접수 시작 3시간 만에 소진됐다”며 “그만큼 지역 경제 기반이 크게 흔들리고 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인천=김낙훈 중소기업전문기자 / 울산=하인식 기자 nh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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