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 알파고가 바둑 세계 최강 이세돌 9단을 연파하면서 그 능력과 한계에 대한 논란이 많다. 논쟁의 핵심은 과연 사람의 마음까지 인공지능이 대체할 수 있을 것인가다. 예를 들면 비가 얼마나 내릴지, 습도가 얼마나 될지, 그 비가 건강에 미치는 영향은 어느 정도인지는 인공지능이 다 계산할 것이다. 그런데 봄비 속에서 파고드는 우울감을 느끼는 감정기계로까지 진화할 것인가.
인공지능이 인간같이 되려면 스스로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할 수 있어야 한다. ‘나 자신(I-ness)’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고 답할 수 있어야 연산능력 이상의 어떤 주체로서 인정받을 수 있다는 얘기다.
내가 ‘나’임을 결정짓는 마음 혹은 정신에 대한 탐구는 문학과 철학의 오랜 주제다. 셰익스피어는 ‘리어왕’에서 “내가 누구인지 말할 수 있는 자는 누구인가?”라고 물었다. 르네 데카르트는 변하기 쉽고 믿을 수 없는 감각 대신에 절대로 부정할 수 없는 무엇을 찾기 위한 ‘방법적 회의’를 계속했다. 계속 의심하는 나 자신은 절대 부정할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해 도출한 명제가 바로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이다.
1960년대 이후 인지과학연구가들은 ‘계산주의 마음이론’을 견지해왔다. 마음의 모든 과정은 결국 계산일 뿐이라는 것이다. 이 전통을 잇고 있는 스티븐 핑커 하버드대 교수는 마음은 어떻게 작동하는가(How the mind works)에서 마음은 결국 ‘소프트웨어 모듈들의 놀라운 집합체’라고 주장한다. 방대한 논거를 제시한 대단한 연구지만 반론도 적지 않다. 제리 포더 미국 럿거스대 교수는 마음은 그렇게 작동하지 않는다(Mind doesn’t work that way)를 통해 “인지과학이 마음에 대해 발견한 것이라고는 마음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모른다는 것뿐”이라고 잘라 말하고 있다.
최근 미래 영화들을 보면 인간은 기계에 꿈꾸듯 누워 있고 몸은 아바타나 서로게이트(대리 로봇)로 훨씬 자유롭게 활동하는 장면이 그려진다. 마음은 여전히 대체할 수 없는 그 무엇인 것이다. 마음은 뇌에 있다는 것이 정설이지만, 심장이식 수술을 받은 사람이 기증자의 가족을 보면 가슴이 뛰는 등 반응을 보인다는 점에서 마음을 단순히 뇌기능으로만 볼 수 없다는 주장도 있다. 김수환 추기경은 “사랑이 머리에서 가슴까지 내려오는 데 70년 걸렸다”는 명언을 남기기도 했다.
인간 스스로 마음이 어디에 있는지를 모르니, 인공지능에 마음의 기능을 부여하는 데는 더 많은 시간이 걸릴 것이다.
권영설 논설위원 yskwo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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