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일훈의 데스크 시각] 이세돌이 보여주고 있는 것

입력 2016-03-13 18:32  

조일훈 증권부장 jih@hankyung.com


알파고의 탁월함, 인공지능의 눈부신 진화보다 더 우리를 놀라게 하는 것이 있다. 프로 바둑기사 이세돌의 투혼이다. 전체 승부를 가른 세 판의 바둑이 결과와 내용면에서 모두 완패였음에도 도무지 포기할 줄을 모른다. 대국마다 옥쇄를 각오하고 불리한 판세를 현란하게 비틀어나간다. 피를 말리는 초읽기에 몰리면서도 시간이 모자란다고 푸념하지도 않는다. 그 힘겨운 고군분투의 결과가 13일 첫 승리로 이어졌다.

이세돌이 아무리 타고난 승부사라고 하지만 요즘처럼 고통스러운 때는 없었을 것이다. 그래도 그는 복기(復棋)를 한다. 패국 후의 탈진과 무력감을 한쪽에 밀어놓고 동료 기사들을 불러 모은다. 대단한 정신력이다. 알파고가 말을 할 줄 안다면 지나간 수순을 놓아가며 승착과 패착, 기회와 위기에 대한 의견을 교환하겠지만 알파고는 그런 상대가 아니다.

딥러닝의 창시자는 인간

이세돌은 거의 밤을 새우는 복기를 통해 이미 인간 능력을 넘어선 알파고와의 대국을 지속해야 하는 이유, 바둑이 정신 스포츠로서 인간세계에 가져야 하는 의미를 찾고 있다. 알파고 식으로 표현하면 ‘딥러닝(deep learning)’이다.

딥러닝은 인간 신경망이 갖고 있는 학습체계를 컴퓨터에 이식한 것이다. 한마디로 인간의 일부 능력을 복제한 것이다. 이런 인공지능의 능력을 사람과 비교하거나 인류의 미래를 위협하는 존재로 부각시키는 것은 처음부터 가당치 않다. 인간은 누구나 백지상태로 태어난다. 부모가 아무리 뛰어난 능력을 갖고 있더라도 세상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지식과 기술을 스스로 배우고 익혀야 한다.

인간의 교육시스템은 이런 물리적·생물학적 한계를 효과적으로 극복하도록 고안됐다. 앞선 세대가 축적해 놓은 사회적 경제적 기술적 문화적 기반 속에서 보다 나은 삶을 위한 의지와 열망을 갖도록 프로그래밍하는 것이다. 대자연과 광활한 우주를 향한 기술 진보, 인류 진화의 역사는 그렇게 만들어졌다. 알파고의 등장이 과학기술적 측면에서 세기적 의미를 가진다면 이세돌의 복기는 인간이야말로 딥러닝의 창시자, 복제가 아니라 진화적 프로그래밍의 주역이라는 사실을 큰 울림으로 보여주고 있다.

'알파고 쇼크'를 대하는 자세

이세돌은 생각을 하고 알파고는 계산을 한다. 알파고는 인간 생각의 결집체인 뇌과학의 산물이다. 계산능력이 인간을 앞선다고 ‘인간의 피조물’이라는 역할과 지위가 달라질 수는 없다. 통제력을 상실한 기계문명의 폭주가 역사의 시곗바늘을 반(反)지성, 몰(沒)가치의 시대로 되돌려놓을 것이라는 일각의 우려는 공상영화 속의 시나리오일 뿐이다. 마음에 안 들면 시쳇말로 코드를 뽑아버리면 그만이다!!

이세돌은 자신을 안쓰럽게 보는 세상 사람들에 대한 위로와 격려도 잊지 않는다. “알파고를 이겨내기에는 내 능력이 부족했다. 이번 패배는 이세돌이 진 것이지, 인간이 진 것은 아니다.”(12일 제3국 직후 인터뷰)

알파고의 가공할 만한 공격과 타개, 전율스러운 승부수를 직접 경험하고서도 내면의 기세는 전혀 꺾이지 않고 있다. 비록 자신은 지더라도 우리 모두가 겁먹거나 기죽을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세돌은 사력을 다한 대국 속에서 인류의 위대한 행진을 가능케 한 도전정신과 창의적 노력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조일훈 증권부장 ji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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