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향기] 메마른 땅, 하얀 회벽집, 코발트 블루 대문…미로처럼 얽힌 골목에서 문명의 속살을 만나다

입력 2016-03-14 07:02  

'찬란한 문명의' 꽃 모로코 에사우이라아르가니아

나무 위에 올라 열매 따먹는 염소 만나고…
성곽에 둘러싸인 에사우이라, 외세 침략 견디며 항구도시로 번영
향신료·토산품 가득한 시장엔 분주한 모로코인의 일상 담겨
아름다운 스카프·장식품 마다 수많은 이야깃거리가 넘쳐나




스페인 남쪽의 지브롤터 해협 너머에는 모로코가 있다. 유럽과 중동, 아프리카 문화가 만나는 모로코는 유럽인들에겐 이국적인 색채를 간직한 국가의 대명사였다. 아프리카인에게는 찬란한 문명의 꽃을 피웠던 나라였고, 중동인에게는 혼합된 아랍 문명을 지닌 이단아 같은 왕국이었다. 이제 모로코는 새로운 문화의 탐험지로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다. 모로코에서도 에사우이라(Essaouira)는 예술인에게 엘도라도 같은 곳으로 수많은 영화감독과 음악인이 산다. 아르가니아 오일과 아름다운 문양의 타일로 유명한 에사우이라는 지금도 세계 여행객을 유혹하고 있다.

모로코 에사우이라로 가는 길

모로코 마라케시(Marrakech) 공항에 내리자 후텁지근한 공기가 온몸을 감쌌다. 쉴 새 없이 부는 바람은 여기저기 심어진 올리브 나뭇잎을 흔들어 댔다. 마라케시 공항에서 서쪽의 해안도시 에사우이라까지는 약 178㎞, 차로 두 시간을 조금 더 가야 한다. 공항을 빠져나오자 택시들이 줄줄이 대기하고 있다. 손님을 끌려고 미소를 머금은 운전사들은 세상 끝까지라도 데려다 줄 기세다. 가격을 흥정하고 택시를 탔다.

창밖으로 드문드문 자갈이 섞인 언덕과 풀이 섞인 풍경이 이어지다가 어느새 고운 모래가 깔린 사막으로 변했다. 메마른 땅, 텁텁한 흙에 우뚝 솟은 나무들은 나이 지긋한 올리브 나무와 아르가니아 나무다. 아르가니아 나무 위에 올라 열매를 따먹는 염소들은 신기하지만 이 지역에서는 흔한 볼거리다. 현지인들은 염소들이 따먹은 열매의 씨가 배설물로 나오면 주워서 단단한 껍질을 깨고 작은 속살을 채집한다. 그것을 짜서 만든 기름이 아르가니아 오일이다. 화장품의 최고 원료로, 마사지 오일로, 요리 재료로 다양하게 쓰이는 아르가니아 오일은 에사우이라 특산품이다.

나무 사이로 작은 마을이 듬성듬성 보인다. 흙으로 집을 짓고 사는 사람들과 여기저기 널려 있는 알록달록한 모로코 카펫을 한참 지나면 정면에 푸른 바다와 도시가 나타난다. 코발트 블루로 칠한 대문과 하얀 회벽집, 드넓은 하늘을 떠받치고 있는 곳이 바로 에사우이라다.

옛 시간을 그대로 머금은 메디나

에사우이라에서는 베르베르족 유물을 많이 만날 수 있다. 북아프리카 토착민이던 베르베르족은 714년 스페인 그라나다 북쪽의 코르도바에 무어 왕조를 세우기도 했다. 그들이 만든 은 장신구, 날렵한 검, 섬유는 모로코를 대표하는 보물이기도 하다.

에사우이라에는 도시 전체를 성벽으로 둘러싼 메디나(Medina)가 있다. 대서양의 거센 파도와 바람 때문에 적들이 쉽게 접근하지 못한 에사우이라는 평화로운 항구도시로 번영을 누렸다. 그러나 페니키아인과 로마인이 16세기까지 에사우이라를 점령했고 1506년에는 포르투갈의 침략을 받았다. 유럽 국가의 침략이 잦아지자 이를 막기 위해 도시 전체를 성벽으로 둘러싼 메디나가 1760년부터 10년에 걸쳐 건축됐다. 현재 우리가 만날 수 있는 도시의 모습은 18세기에 지어진 메디나 구조의 유적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으며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돼 있다.

메디나 성곽은 외세의 침략으로부터 도시를 보호하는 동시에 근처의 다른 도시인 아가디르의 무역로를 폐쇄하기 위해 건설됐다. 당시 모로코 국왕 모하메드 3세가 마라케시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자리 잡은 에사우이라를 최고의 무역항으로 만들려고 했기 때문이다. 이후 에사우이라는 튼튼한 메디나 성곽 덕분에 자신들을 지켜가며 유럽과 무역업을 전개했고 독보적인 항구 도시로 번영할 수 있었다.


발길을 돌려 바닷가로 향했다. 관광객을 기다리는 낙타와 갈매기떼, 그리고 맨발로 축구하는 남자 아이들만이 보인다. 눈부신 햇살을 한껏 받은 한가로운 해변에는 거센 대서양의 물살이 끊임없이 오고갔다. 아직도 해변의 한편에는 배를 만드는 조선소의 모습이 남아 있다. 현대의 조선소에 비하면 낡고 오래된 작은 공장에 불과하지만 옛 왕국의 찬란했던 과거를 짐작하기에는 충분했다.

전통시장에 가득한 상품과 이야깃거리

메디나 안의 집들은 오밀조밀 좁은 골목으로 연결된다. 현지인이 아니면 자칫 길을 잃기 쉬운 미로와도 같은 형상이다. 대신 다양한 모양과 현란한 색상의 카펫이 이정표 역할을 한다. 성의 반은 해안가를 향해 있고 나머지 반은 사막을 향해 있다. 성벽은 바다의 습기와 사막의 건조함으로부터 마을을 보호한다.

어느 집이든 코발트 블루 색깔이고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면 천장이 높은 ‘ㅁ’자 구조를 하고 있다. 건물 중앙의 정원인 파티오(Patio)에는 약속이라도 한 듯 어디서나 열대 나무를 한 그루씩 심어놓고 있다. 이는 전형적인 모로코 건축 양식 중 하나다.

1년 내내 평균 기온이 25도인 따뜻한 날씨, 사막과 바다, 산악 지대 등 모든 지형 조건을 갖추고 있는 에사우이라에서 가볼 만한 곳은 전통시장이다. 갖가지 향신료와 토산품이 가득한 시장에는 분주한 모로코인의 일상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형형색색으로 물들인 파피루스를 엮어 만든 신발과 가방, 온갖 종류의 바구니, 나무 상자, 아름다운 문양의 스카프, 대장간에서 갓 나온 철제 장식품 등 수많은 상품과 이야깃거리가 넘쳐난다.

시장 상인 중 하나가 지나가는 내게 어디에서 왔느냐고 묻는다. 한국에서 왔다고 하자 그는 자신의 어머니가 한국인이라고 했다. 너무 빤히 보이는 거짓말이라 웃음이 피식 흘러나온다. 상인들의 농담에 기분 좋게 대꾸를 해 주면 작은 선물을 덤으로 주거나 값을 깎아주기도 한다.


예술가들이 사랑한 도시

에사우이라는 많은 예술가가 사랑한 도시다. 현대 영화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오손 웰스는 인생의 끝자락을 에사우이라에서 보냈다. 영화 ‘마션’을 연출한 리들리 스콧 감독은 이곳에 작은 집을 샀다. 작품 활동을 하지 않을 때는 대부분의 시간을 이곳에서 보낸다. 또한 전설적 음악가인 지미 헨드릭스와 밥 말리 역시 에사우이라에 몇 년 머물렀다. 바닷가에는 지미 헨드릭스가 2년 동안 음악 작업을 했던, 반쯤 허물어진 집이 있다. 관광객들을 태운 낙타는 어슬렁대며 돌다가 그 집 앞에 잠시 멈추곤 한다.

어떤 사람들은 에사우이라를 새로운 천국이라고 부른다. 가장 큰 이유는 오랜 문명과 역사의 소용돌이 후 남겨진 고요함을 지금까지 원형대로 보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소박하게 살아가는 현지 사람들과 우아한 모로코의 문화가 잘 어우러진 것도 여행객을 매료시킨다. 대서양에서 막 잡아 올린 싱싱한 생선들, 사막의 오아시스물을 끌어다 만든 온천, 모로코식 대중목욕탕인 하맘 등 독특한 북아프리카의 정취를 즐기다 보면 저절로 천국이란 말이 나올지도 모른다.

■ 에사우이라 추천 숙소

아름다운 휴식의 공간, 카사릴라

카사릴라(casalila-riad.com)는 중정식 구조의 아름다운 테라스와 향기로운 차, 모로코식 하맘 스파를 즐길 수 있는 곳이다. 객실은 다양한 색으로 꾸며져 있어 이국적인 분위기를 풍긴다. 에사우이라에서 나는 모와 실크 커튼, 카펫, 각종 허브와 향신료, 아르가니아 오일 등 다채로운 상품도 만날 수 있다. 대서양을 내려다볼 수 있는 호텔 옥상은 모로코 타일로 장식돼 있는데 이곳에서 일광욕을 하며 차와 브런치를 맛볼 수 있는 것도 장점이다. +212-24-475-545

모로코 궁정의 호화로움, 에르블루

‘파란 시간’이라는 뜻의 에르블루(heure-bleue.com)는 모로코 궁전의 모습을 재현한 호텔이다. 왕실 분위기를 자아내는 건축과 조각, 모로코 스타일의 아치 등을 볼 수 있다. 객실은 주제에 따라 왕실이나 모로코 전통 주거지의 모습을 재현했다. 호텔 옥상의 수영장에서는 메디나의 전경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다. 보랏빛 노을과 모로코식 등불, 사막에서 불어오는 건조한 바람을 함께 느낄 수 있는 것도 매력적. +212-524-78-3434

■ 여행정보

한국에서 모로코로 떠나는 직항은 없다. 프랑스 파리에서 모로코 마라케시나 카사블랑카로 가는 항공편이 있다. 카사블랑카보다는 마라케시가 에사우이라와 가깝기 때문에 택시비를 절약할 수 있다. 마라케시에 도착해 야시장을 구경한 뒤 다음날 택시를 타고 에사우이라로 들어가는 방법도 있다. 마라케시~에사우이라 택시비는 약 50~60유로(약 6만6000원부터) 정도이며 흥정을 잘해야 한다.

지은경 월간 책(Chaeg) 편집장 ekj@chae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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