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 입 빌려 폭력적 한국 사회 꼬집어

입력 2016-03-14 17:32  

김혜순 씨 시집 '피어라 돼지' 출간

시산문집 '않아는…'도 함께 선봬



[ 박상익 기자 ] 시가 지닌 아름다움의 폭을 끊임없이 넓혀 온 김혜순 시인(61·사진)이 열한 번째 시집 《피어라 돼지》(문학과지성사)를 펴냈다. 시와 산문을 합친 독특한 개념의 ‘시산문집’ 《않아는 이렇게 말했다》(문학동네)도 함께 선보였다.

김 시인은 새 시집에서 돼지의 몸과 입을 빌려 폭력적인 사회를 고발한다. 1부에 실린 ‘돼지라서 괜찮아’는 연작시 15편을 한데 뭉친 장시(長詩)다. 그는 2011년 구제역 파동으로 돼지를 생매장하는 비극을 지켜봤다. 표제작 ‘피어라 돼지’는 영문도 모르고 ‘살(殺) 처분’된 돼지들을 위한 진혼곡이자 반성문이다.

‘훔치지도 않았는데 죽어야 한다/죽이지도 않았는데 죽어야 한다/재판도 없이/매질도 없이/구덩이로 파묻혀 들어가야 한다(…)/무덤 속에서 운다/네 발도 아니고 두 발로 서서 운다/머리에 흙을 쓰고 운다.’(‘피어라 돼지’ 부분)

그의 시는 1980년대 이후 한국 시단의 강력한 미학적 동력이었다. 이광호 문학평론가는 그의 시적 성취와 위상을 이렇게 평가했다. “김혜순이라는 이름은 하나의 시학이며, 김혜순 시학은 하나의 공화국이다. 동시대 여성 시인들이 김혜순공화국 시민이었으며, 2000년대 젊은 시인들의 언술 방식과 김혜순 시학의 상관성은 더 긴밀하다.” 그가 ‘시인의 말’에서 “아무것도 말하지 않기가, 아무것도 소리치지 않기가, 시의 체면을 세워주기가 너무도 힘든 시절이었다”고 한 것은 사회문제에 더 이상 침묵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않아는 이렇게 말했다》를 통해 시와 산문의 결합이라는 새로운 도전을 감행했다. 그는 “이것을 시라고 하면 시가 화낸다. 이것을 산문이라고 하면 산문이 화낸다”며 “두 장르에 다 걸쳐지는 사이의 장르를 설명해보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첫 글에서 자신이 발 딛고 있는 곳을 ‘애록(AEROK)’이라 불렀다. ‘KOREA’를 거꾸로 읽은 것이다. 애록과 세계를 돌며 자신이 보고 겪은 것들을 한 번씩 뒤집어 생각한 흔적이 느껴지는 100여편의 글이 실려 있다.

그의 간명한 문학론은 시인이 지닌 고민이 넓고 깊다는 것을 느끼게 한다. ‘문학은 본래적으로 솔직하지 않다. 시는 언어의 관습적인 사용에 대한 거짓말이며, 소설은 현실의 관습적인 사용에 대한 거짓말이다.’(‘솔직한 시여!’ 부분)

박상익 기자 dir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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