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필 정치부 기자) “(정치적) 전문성을 갖춘 정당 사무처 당직자 출신이 국회에 적극 진출하는 것이 정치발전을 위해 바람직하다. 사무처 당직자들이 비례대표로 추천될 수 있도록 방안을 고민해보라.”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지난 1월 새누리당의 당 사무업무를 관리하는 사무처 당직자들의 비례대표 진출과 관련해 이같은 취지의 발언을 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당 사무처 노동조합 주관 ‘사무처의 밤’행사에 참석한 자리에서였습니다.
이번 20대 총선은 비례대표 의석 수가 지난 4년전 총선 대비 54→47석으로 7석이 줄어든 만큼 새누리당과 더불어민주당 모두 사실상 비례대표 당선 안정권 순위를 20번 이내로 잡고 있습니다. 지난 13일 접수를 마감한 새누리당 비례대표 공천신청자는 지난 18대 때보다 지원자가 200여명 더 늘어 611명의 지원자가 몰리면서 더 치열한 경쟁을 예고하고 있습니다. 이런 ‘좁은 문’속에서도 새누리당 공천관리위원회는 당의 이념에 맡는 청년과 사무처 당직자 각 1명씩을 당선 안정권 순위에 배치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습니다.
이에 따라 사무처 당직자 노동조합은 지난 3월 초, 창당 이후 최초로 7년 이상 재직한 사무처 당직자들을 대상으로 입후보자 없이 전원을 대상으로 투표를 실시했습니다. 이 결과 남녀 각 4명씩 총 8명의 국장급 사무처 당직자들이 순위에 올랐습니다. 사무처 당직자 직군을 대표할 비례대표를 투표로 뽑겠다는 첫 시도로, 투표 없이 뽑히는 비례대표를 투표로 상향식 공천을 해보겠다는 시도였습니다. 출마를 염두에 둔 일부 대상자들은 투표를 앞두고 후배 당직자들에게 “잘 좀 찍어달라”는 득표활동에 나서는 움직임까지 감지될 정도로 후끈한 열기를 보였습니다.
하지만 이같은 투표행위가 주목을 받으면서 당의 부담으로 돌아온다는 지적이 제기되자, 황진하 사무총장은 노조에 김 대표의 뜻을 전하며 “노조의 투표를 중지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당 지도부 의견을 수렴해 최종 순위에 오른 8명의 국장들은 모두 2차 결선투표를 하지 않기로 합의하면서 투표는 해프닝으로 끝났습니다. 당 관계자는 “현재로서는 많은 사무처 출신 지원자 중 누구를 뽑을지 기준이 없다”며 “이번 투표는 후배 당직자들이 생각하는 비례대표 후보 감을 추려봤다는 점에서 나름의 의미가 있는 데이터가 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비례대표 공천에서 당 사무처 당직자 배려의 필요성이 매번 제기되는 이유는 당에서 20년 이상 복무하며 생기는 고도의 정무적 감각과 정치적 노하우 때문입니다. 새누리당 사무처 당직자는 국회의원 보좌관과는 달리 새누리당의 서울 여의도 중앙당사와 국회 본청의 새누리당 당직자실, 시·도당 당사를 지키며 당의 사무업무(당무)를 처리하는 사람들입니다. 국가 업무를 담당하는 공무원을 통칭하는 ‘관료’처럼, 당무를 처리하는 관리자라는 의미에서 ‘당료’로도 불립니다.
새누리당 사무처의 경우 공무원·공기업·민간 기업과 같이 공채 시험을 통해서 입사(?)하기 때문에 안정되고 검증된 인재 풀이라는 점에서 국회의원 총선거와 지방선거 등 공천시즌이 다가오면 국장 및 부장급 인사들이 늘 하마평에 오르내립니다. 비례대표에 지원한 사무처 국장·팀장급 인사는 20명 정도로 알려졌습니다. 좁아진 비례대표 당선안정권 순위를 고려해 볼 때 내부에서도 치열한 경쟁이 시작된 셈이죠.
사무처 노조 투표에서 순위에 들었던 황규필 조직국 국장은 기자와의 통화에서 “현재 당원명부와 지방 당 조직을 관리하는 보직의 국장으로 선거 실무를 책임지고 있어 당무에 밝다는 점이 장점”이라며 “20년 넘게 당의 역사를 함께 해온 노하우가 있어 당에서 꼭 필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지난 주까지 황진하 사무총장의 보좌역을 맡았던 하윤희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수석전문위원은 “우리는 늘 준비된 사람들”이라며 “15년간 당의 입법 활동을 지원해온 전문성을 국회에서 발휘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사무처 출신 의원으로는 19대 총선 당시 비례 순번 26번을 받아 당선된 이운룡 새누리당 의원이 있습니다. 더불어민주당 역시 지난 2월 당규를 개정하면서 사무직 또는 정무직 당직자 남녀 각 1명 이상을 당선 안정권 내에 후보자로 선정해야 한다고 명시해 사무처 출신이 국회의원으로 당선될 길이 열었습니다. 당의 간판을 지켜왔던 이들이 어느 때보다도 좁아진 비례대표 등용문을 비집고 들어갈 수 있을지 관심이 모아집니다. (끝) /j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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