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를 대표한 이세돌 프로바둑 9단과 구글이 개발한 인공지능 알파고 간 5번기가 숱한 화제를 뿌린 채 15일 막을 내렸다. 알파고의 4 대 1 승리로 끝난 ‘세기의 대결’은 우리말과 관련해서도 여러 생각거리를 남겼다. 그중 하나가 우리말 속에 넘쳐나는 영문약어(略語) 현상이다.
반상 대결이 벌어지는 동안 화제의 핵심은 단연 ‘인공지능’이었다. 하지만 그 옆에는 늘 ‘AI’라는 영문약어가 등장하면서 자신의 존재를 알렸다. AI는 ‘인간의 지능이 가지는 학습, 추리, 논증 따위의 기능을 갖춘 컴퓨터 시스템’을 가리키는 ‘artificial intelligence’의 머리글자를 딴 말이다. 2001년 미국의 영화감독 스티븐 스필버그가 제작한 영화 제목이기도 하다. 한국에서도 개봉돼 화제가 된 이 영화는 우리말 속에 AI가 널리 퍼지고 뿌리 내리게 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AI의 우리말 대체어가 ‘인공지능’이다. 두 말은 언어세력 면에서 경쟁 관계다.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인공지능’과 ‘에이아이(AI)’를 모두 표제어로 올리고 있다. 이는 ‘인공지능’과 ‘AI’가 전문용어의 단계를 넘어 둘 다 일반적인 쓰임새를 보인다는 것으로, 우리말 체계 안에서 동등하게 단어의 지위를 얻었다는 뜻이다.
AI는 또 다른 의미에서 우리에게 낯익다. ‘조류인플루엔자’로 알려진 AI(avian influenza)가 그것이다. 이때의 AI는 닭, 오리 등 조류에서 발생하는 전염성 독감을 말한다. 초기에는 ‘조류독감’으로 불렸는데 이 말이 본격적으로 언론에 등장한 것은 1997년께다. 당시엔 인체 영향 등 검증되지 않은 가설을 언론에서 과장 보도함으로써 가금(家禽: 닭, 오리, 거위 등 집에서 기르는 날짐승)산업에 타격을 주기도 했다. 그러자 정부는 민간협회 등과 함께 ‘조류독감’이란 말 대신 ‘조류인플루엔자(AI)’를 써줄 것을 언론에 요청했다. 일종의 완곡어법으로 대체어가 제시된 셈이다. 이후 2004년께부터 ‘조류인플루엔자’ 또는 영문약어 ‘AI’가 자리를 잡았다.
영문약어는 영어 자체의 강력한 지배력에 힘입어 우리말에서 사용 빈도가 급속히 늘어나고 있다. 그런 배경으로는 말의 경제성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언어에서 경제성 원리를 이해하는 데는 ‘디지털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미국의 컴퓨터과학자 클로드 섀넌의 개념이 도움이 된다. 정보이론에 수학 개념을 도입한 그의 설명에 따르면 정보량(엔트로피)과 군더더기(리던던시)는 반비례 관계다. 군더더기를 牡見?정보량은 늘어난다. 언어에서 약어 현상이 늘어날 수밖에 없는 배경이다. 하지만 더 근본적으로는 우리말 사용에 대한 인식 부족이 큰 몫을 차지할 것이다. 좋은 우리말 표현을 찾으려는 노력이 부족한 탓이라는 얘기다. IC(인터체인지)나 서클, 리플 따위를 대체한 나들목, 동아리, 댓글 같은 말을 본보기로 삼을 만하다. 이들은 ‘영어의 힘’을 이겨낸 대표적 우리말 사례다.
이들이 시사하는 점은 좋은 우리말 약어를 많이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외래어를 억지로 바꾸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고 세련된 우리말 대체어를 찾는 노력이 무엇보다 중요한 까닭이기도 하다. 별 생각 없이 당장 쓰기에 편하다고 영문약자를 남발하다 보면 어느새 우리말 입지는 더욱 좁아져 있을 것이다. 그런 토대 위에서 ‘인공지능’이 살아남을지, 또는 ‘AI’가 대세가 될지는 오로지 언중의 ‘인식’과 ‘선택’에 달려 있다.
홍성호 한국경제신문 기사심사부장 hymt4@hankyung.com
배시원 쌤의 신나는 영어여행 - 인공지능·로봇과 관련된 영어 표현들
‘인간’과 ‘인공지능’의 대결로 화제를 모은 이세돌 9단과 알파고의 대국이 드디어 막을 내렸습니다. 참고로 ‘Alphago’는 ‘첫 번째’를 뜻하는 그리스어 알파(alpha)와 ‘바둑’을 의미하는 일본어 고(go)의 합성어입니다.
알파고의 4 대 1 승리로 끝난 이 대결은 인공지능의 비약적 발전을 다시 한 번 느끼게 하는 계기가 됐는데, 그래서 오늘은 인공지능과 로봇에 관련된 표현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인공지능은 보통 artificial intelligence의 약자를 따서 ‘AI’라고 합니다. artificial이 ‘인공의’란 뜻을 가진 단어이기 때문에 ‘조화’를 artificial flowers라고 하고, ‘인공장기’를 artificial organs라고 한답니다. 그런데 이 artificial이란 단어에 ‘부자연스러운’이란 뜻도 있기 때문에 artificial tears라고 하면 ‘거짓 눈물’이란 뜻이 된답니다.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유작을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이 이어받아 완성시킨 ‘A.I.’란 영화도 인공지능, 그리고 인간과 로봇의 관계를 다룬 명작이니 보지 못한 분은 꼭 한 번 보기를 추천합니다.
로봇이라는 단어는 체코 작가 카렐 차페크의 희곡 《로봇》에서 처음 쓰였다고 합니다. 로봇(robot)의 어원은 체코어로 ‘일하다’라는 뜻의 동사 로보타(robota)라고 하네요.
‘인간을 닮은 로봇’은 안드로이드(android)라고 합니다. 프랑스의 작가 빌리에 드릴라당의 소설 《미래의 이브》에서 처음 쓰였다고 하는데, 엄격히 말해 andro는 ‘남성’을 뜻하는 단어이므로 android는 ‘남성형 로봇’을 지칭하는 말입니다. ‘여성형 로봇’은 gynoid라고 하는데 잘 쓰이지 않는 단어랍니다. man이 ‘남자’라는 뜻과 ‘인간’이란 뜻을 함께 가진 것처럼, 그냥 ‘기계 인간’은 android 혹은 humanoid라고 부릅니다.
참고로 androphobia가 ‘남성공포증’, gynophobia가 ‘여성공포증’을 뜻하는 이유도 andro와 gyno가 각각 ‘남성’과 ‘여성’을 뜻하는 단어이기 때문이죠. ‘대인공포증’은 anthrophobia라고 합니다. anthropology(인류학)에서 알 수 있듯이 anthro가 ‘인간’을 뜻하는 말이거든요.
끝으로 기계 인간의 끝판왕(?) terminator는 ‘종결자’라는 뜻입니다. terminal이 ‘끝’이라는 뜻이거든요. 그래서 ‘종점’을 터미널(terminal station)이라고 하고, ‘불치병’을 terminal disease라고 한답니다.
영화 ‘터미네이터’를 본 사람은 다 알겠지만, 결국 승리하는 것은 인간이니 오늘도 인류의 미래를 위해 열심히 공부하는 여러분이 되길 희망합니다~!!!^^*
■ 배시원 선생님
배시원 선생님은 호주 맥쿼리대 통번역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배시원 영어교실 원장을 맡고 있다. 고려대 등 대학과 김영 편입학원, YBM, ANC 승무원학원 에서 토익·토플을 강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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